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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전투에서 이길 것인가? 전쟁에서 이길 것인가?

[월드리포트] 전투에서 이길 것인가? 전쟁에서 이길 것인가?
이라크군이 라마디 탈환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IS에 라마디를 내준 지 열흘 만입니다. 시아파 민병대에 친정부 수니파 부족까지 2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알 아바디 이라크 총리까지 나서서 4.5일이면 라마디를 되찾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이라크 군이 라마디를 어이없이 내줄 때처럼 졸전을 펼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IS의 공세에 변변치 못한 대응으로 수도 바그다드까지 위협받는 이라크 정부가 과연 주도적으로 IS와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이라크의 명운이 걸린 승부입니다.

● '전투'와 '전쟁'

라마디 탈환작전은 군사적으로 표현하자면 '전투'입니다. 전투는 분명 전쟁의 중요한 요솝니다. 전투의 승리가 쌓이고 쌓여서 전쟁의 승리를 낳게 됩니다. 그렇다고 전투를 늘 이겼다고 전쟁에서 꼭 이기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늘 전투에서 지다가 단 한번의 전투에서 이겨 전쟁에서 승리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고증된 사실입니다.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가 대표적이죠. 전투는 단기적이고 즉흥적인 상황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지만 전쟁은 장기적 전략과 전술이 동반되어야만 최후에 웃을 수 있습니다.

이라크 정부는 어떨까요?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눈 앞의 전투에만 급급해 있을까요? 지난 티크리트 탈환작전과 라마디 전투의 전후 상황을 볼 때 아니라는 데 한 표를 던집니다.
[월드리포트] 전투

라마디를 IS에 내준 원인을 두고 미국과 이라크 정부의 입장이 엇갈립니다. 이라크군은 IS의 자살폭탄 공격으로 이라크군의 방어선이 붕괴됐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은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이 "이라크군은 싸울 의지도 보이지 않고 라마디에서 철수했다"며 이라크군의 전투의지 상실을 비판했습니다. 전투와 전쟁의 개념을 놓고 따지면 이라크 정부는 전투의 패배 원인만 찾고 있고 미국은 전쟁의 전략적 문제점을 지적한 듯합니다.

● "주민을 끌어안아라"

지난 3월 이라크군이 한 달에 걸친 전투 끝에 티크리트를 탈환했을 때 나온 중동 전문가들의 조언을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언은 대체로 1. 당장의 승리에 도취할 지 말라. 2. 티크리트의 주민을 이라크 정부 편으로 끌어들여라. 3. 새로운 전투보다 도시의 재건에 힘써라로 압축됩니다.

티크리트는 사담 후세인의 고향으로 수니파가 오랫동안 뿌리 내려온 지역입니다. 이들은 사담 후세인 시절 나름 우대를 받다가 알 말리키 총리 시절부터 시아파 정부가 들어선 뒤 심한 박해와 홀대를 받아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정부가 티크리트를 손에 넣어도 주민의 마음을 내 편으로 돌리지 못하면 이긴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수니파 주민을 이라크 정부로 돌리기 위해선 우선 자치권과 참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도시 재건을 통해 떠난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하고 지역 주민과 부족에게 지방정부의 운영 관리를 맡기라고 충고합니다. 또한, 도시 치안과 경비도 지역민에게 더 많은 권한과 참여를 부여하자고 주장합니다. 정규군과 치안부대에 지역 주민을 되도록 많이 편입시켜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중앙정부는 대신 정보와 첩보. 사찰 업무를 강화해서 부패와 부정, 종파적 차별을 없애는 정화업무를 담당하라고 조언합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회복과 향토 방위에 대한 의무를 안겨서 IS가 다시 비집고 들어온 틈을 주지 말자는 겁니다.

● 민심을 외면하는 이라크
[월드리포트] 전투

이라크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요? 라마디 상황을 되짚어보면 이라크 정부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귓등으로 들은 듯합니다. 라마디에선 IS를 피해 수만 명의 주민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이라크 정부는 이들에 식량과 보급품을 지급하기는커녕 피난길을 막아버렸습니다. IS가 숨어들 수 있다는 우려라고 말합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 피난민들은 사막의 태양아래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물과 식량 부족에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대우를 받은 주민들이 나중에 이라크 정부를 지지할까요? 민심을 얻지 못하면 승리자가 아닌 점령자가 될 뿐입니다.

IS가 라마디로 들어올 때 많은 주민들이 IS를 도왔다는 증언이 잇따릅니다. 이들은 IS에게 정부군의 기지와 규모를 알려줬고 길안내를 했습니다. 이들이 단지 IS와 같은 수니파이기 때문일까요? IS는 라마디를 비롯해 안바르 주 지역에 오랫동안 기반을 다져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IS에서 이라크 출신의 주력은 안바르 주 출신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이 사담 후세인 시절 공화국 수비대에 있던 이들이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라마디가 정부 관리 아래 있더라도 지하 점 조직 형태로 주민 동화 작업을 펼쳐왔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결국 라마디 주민들은 이라크 정부군을 그저 점령자로만 인식했다는 분석입니다.

자살폭탄 공격 라마디 패배의 중요한 전술적 원인이겠지만 패인을 깊숙이 파고들면 민심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라크군의 전투의지 상실도 이런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은 정부에 대한 충성심과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부족한 것인데 민심이반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이라크 정부는 알 말리키 총리시절 극에 달했던 수니파에 대한 적의를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티크리트 탈환 작전에서 전적으로 시아파 민병대의 힘에 의존했습니다. 이라크 정부 편에 선 수니파 부족에겐 끝까지 무기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라마디를 빼앗기고 바그다드까지 위협받는 처지가 되니 다급한 마음에 이제서야 친정부 수니파 부족에게 무기를 공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입으로는 '종파간 화합'을 외치지만 몸은 따로 가는 모양새입니다.

● '모술'의 환호가 주는 교훈
[월드리포트] 전투

얼마 전 IS가 공개한 영상을 보고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이 든 적이 있습니다. 라마디 함락 다음 날 이라크 모술의 풍경입니다. 주민의 환호성이 넘쳤습니다. 밤거리에 몰려나온 주민들이 IS 깃발을 흔들고 경적을 울리는 모습이 마치 월드컵 우승을 거머쥔 나라의 풍경 같았습니다. 모술이 수니파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IS의 점령지 아니었나? IS의 공포 정치로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외신 보도와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IS 지지자들의 열광하는 표정은 '라마디의 해방'을 자축하는 진심으로 보였습니다. '아, 이제 모술은 이라크가 아닌 IS의 도시가 됐구나'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이라크군과 국제동맹군이 어느 훗날 모술을 탈환한다 한들 내부의 적에 시달리겠다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모술 주민이 모두 IS와 같은 극단주의자라고 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적어도 모술 주민들은 이라크의 시아파 정부에 당한 학정과 홀대보다는 가혹하지만 수니파를 우대하는 IS 정권에 적응해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점만 놓고 보면 장기적인 전쟁의 전략에서 IS가 분명 이라크 정부보다는 한 수 위인 듯합니다.

라마디의 새로운 주인은 누가될 지 아직은 모릅니다. 아마도 긴 싸움이 될 겁니다. 이라크군은 이번 작전의 초점을 라마디 탈환을 넘어 안바르주 탈환으로 넓혀 전개하고 있습니다. 안바르주는 이라크 최대 주입니다. 또 전통적인 수니파의 본산입니다. 그 절반을 현재 IS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안바르주 전투가 앞으로 이라크내 IS 격퇴 작전의 성패를 가늠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이라크 정부가 이번 만큼은 땅을 되찾는 전투가 아닌, 주민의 지지를 되찾는 전쟁을 펼치는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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