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쏟아져 나온 은화에 마을 '발칵'…최종 승자는?

우상욱 기자 woosu@sbs.co.kr

작성 2015.05.20 14:22 수정 2015.05.27 16: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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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성 카이화현의 한 조용한 시골 마을이 무대입니다. 지난해 이 마을의 가장 큰 사건은 집 나간 강아지 한 마리가 끝내 돌아오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순박하고 안온한 농촌입니다. 그런데 올해 초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잔물결 하나 없던 연못에 별안간 바위가 떨어져 격랑이 발생한 꼴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왕 노인은 슬하에 자녀가 없었습니다. 늙고 병든 왕 노인을 촌 위원회가 보살폈습니다. 10년 전 숨진 왕 노인의 장례를 모신 것도 촌 위원회였습니다. 위원회는 왕 노인의 유산을 정리하는 책임도 맡았습니다. 남긴 재산이라고는 숨질 때까지 살던 다 쓰러져가는 집 한 채였습니다. 위원회는 이 집을 왕 노인의 손자뻘 되는 먼 친척 왕씨에게 넘겼습니다. 왕씨는 이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7년 전 이웃 잔모씨에게 헐값에 넘겼습니다.

올해 초 잔씨가 건물을 새로 지으려고 인부를 동원해 왕 노인의 집을 철거할 때였습니다. 집 담을 허물자 조그만 공간이 드러났고 그 안에서 철제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자물쇠를 뜯어보니 상자에서는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 위안스카이의 얼굴이 새겨진 주화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중화민국 초기에 발행된 1 위안짜리 은화였습니다. 1백28 개나 됐습니다.

소식은 빛의 속도로 마을에 퍼졌습니다. 발 빠르게 발견된 은화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해당 은화는 중화민국 건국 후 3년과 5년, 8년, 모두 세 차례 주조됐습니다. 발행량이 많지 않아 전문 수집가들 사이에서 매우 희소성이 높습니다. 중화민국 3년에 제작됐고 '간쑤'라는 명문까지 새겨져 있는 '위안스카이 은화'는 지난 2007년 1 개에 무려 6천백60 위안에 팔린 적도 있었습니다. 백28 개의 '위안스카이 은화'는 어림잡아도 20여만 위안, 우리 돈 3천5백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 은화가장 먼저 잔씨에게 달려온 사람은 집의 원주인 왕씨의 아내였습니다. 잔씨에게 은화의 일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원래 왕씨의 집에서 나온 보물이니 자신도 절반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잔씨는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습니다. 하지만 왕씨 아내가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자 은화 14개를 마지못해 내줬습니다. 왕씨의 아내는 '너무 적다'며 반발했지만 잔씨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결국 잔씨 집안과 왕씨 집안 사이에 큰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아니, 온 촌민이 은화의 소유권을 놓고 핏대를 올렸습니다. 얼마 뒤에는 이 다툼에 촌 위원회까지 끼어들었습니다. 은화는 자신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중국 은화이쯤에서 각 측의 주장을 정리해보죠.

먼저 왕씨. "잔씨가 철거하려던 집은 원래 왕 노인의 것이었습니다. 내가 잔씨에게 판 것은 왕 노인의 집이었을 뿐 그 속에 숨겨진 은화는 아닙니다. 따라서 새로 발견된 은화는 원 집 주인 왕 노인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왕 노인은 타계했고 그렇다면 왕 노인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본인이 그 소유권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이를 반박하는 잔씨. "이미 정당한 대가를 주고 왕 노인의 집과 땅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받았습니다. 집 내부에 보관된 일체의 물건 역시 내가 소유하게 됐습니다. 따라서 벽 속에서 나온 은화 역시 내 것입니다. 게다가 내가 벽을 허물지 않았다면 은화는 그 존재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내가 찾아낸 셈이죠. 소유권이 더더욱 내게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뒤늦게 소유권 다툼에 끼어든 촌 위원회. "왕 노인의 말년에 그를 부양하고 장례까지 치른 것은 우리 촌 위원회입니다. 관련 법규에 의하면 말년에 부양비와 장례비를 부담한 측은 일정한 상속권을 갖게 돼있습니다. 따라서 금화 전체, 혹은 일부에 대해 촌 위원회도 소유권이 있습니다."

3파전은 치열했습니다. 어느 쪽도 양보를 하지 않아 결국 법정 소송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왕씨는 잔씨에 대해 '자신들의 은화 1백14 개를 불법 취득해 돌려주지 않는 만큼 이를 빼앗아 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잔씨는 왕씨측에 '권리도 없이 은화 14개를 강압에 의해 가져갔으니 이를 돌려 달라'는 반소를 냈습니다. 촌 위원회는 법정 다툼까지 일어나자 부담스러웠는지 소유권 주장을 포기했습니다.

카이화현 사상 유례없는 세기의 소송전이 순회법정에서 벌어졌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2시 순회법정의 방청석은 촌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치열한 법리 공방을 예상하며 왕씨와 잔씨 중 누가 승자가 될지 내기까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세기의 대결'은 전혀 엉뚱한 결말과 함께 싱겁게 끝났습니다. 결론적으로 왕씨도 잔씨도 모두 패배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은화의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법원의 판단은 이렇습니다.

"은화는 은닉 물품입니다. 은닉 장소인 집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든, 누가 발견했든 은화의 소유권과 상관이 없습니다. 은화는 최초 해당 물건을 숨겼던 사람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그가 없으면 그 은닉자의 상속자에게 돌려주도록 판결합니다."

그렇다면 은화는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일까요? 은닉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한다면? 그럴 경우 원 집주인인가요, 발견자인가요? 이에 대한 중국 법률 전문가들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중국에는 이렇게 숨겨진 은화가 발견되는 일이 많아서중국 은화인지 이미 최고인민법원에 관련 '판례'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과거의 땅 주인이 파묻어 놓은 은화의 소유권에 대한 규정'에는 출토 은화의 소유권을 매장한 사람, 또는 그 상속자에게 주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은닉한 사람의 정체가 불분명할 경우 국고에 귀속하도록 했습니다.

법원이 판결문에서 밝혔듯이 잔씨는 은닉 장소인 건물의 소유주이지만 은닉한 물품인 은화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왕씨는 해당 집의 원 소유주이지만 은화를 은닉한 사람이 왕 노인, 또는 왕 노인의 아버지라는 점을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역시 은화의 소유권을 계승할 근거가 없습니다. 왕씨가 집에 그런 은화가 은닉돼있던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봐서 은닉자가 왕 노인이라는 법적 증거를 찾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경우 은화는 모두 국가의 소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은화가 쏟아져 나왔을 때 잔씨와 왕씨, 촌 전체가 횡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분란의 불씨였을 뿐 결과적으로 아무도,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웃 사이에 사이만 틀어지고, 순박했던 인심만 망가지고, 감정의 앙금만 남았습니다. 살다보니 많은 일이 그렇습니다. 행운인 줄 알았더니 불행의 씨앗이고, 불운이라 여겼던 일은 알고 보면 귀중한 인생의 선물이었습니다. 1백여 년 만에 나타난 ‘위안스카이 은화’는 촌민들에게 그런 진리만 확인해주고 국고로 들어가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