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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 국내 초연 45주년

[취재파일] '고도'를 기다리며…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지난 주말을 끝으로 국내 초연 45주년 기념공연을 마쳤습니다. 이번 공연은 2달여 동안 진행됐는데, 정동환, 송영창, 한명구, 박용수, 안석환, 박상종 등 기라성 같은 역대 출연 배우들이 총출동해 펼친 기념공연 형식이어서 더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취재파일] 곽상은
이런 쟁쟁한 배우들이 한 무대에 릴레이 출연할 수 있었던 건 지난 반 세기 동안 한국 연극계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 작품에 대한 배우들의 애정과 연출자인 임영웅 선생에 대한 믿음 덕분이 아닐까 생각됐습니다. 덕분에 30대 젊은 배우로 이 작품에 처음 출연했을 여러 배우들은, 정말 극 중의 주인공들처럼 머리가 희끗희끗 센 50·60대가 되어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되었습니다.
 
언제 다시 이런 배우들의 조합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또 볼 수 있을까란 생각에, 관객의 입장에선 다양한 배우들의 연기로 여러 번 공연을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한 번 밖에는 이번 공연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노장의 연출가가 만들어낸 유려한 극의 흐름 속에 4명의 주요 배역이 뿜어내는 강렬한 에너지는,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왜 우리 연극계의 고전이 되었는지 단 한 번의 관람으로도 직관적으로 이해시켜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취재파일] 곽상은
공연을 보며 10여년 전 학부 수업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희곡의 텍스트로 처음 접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두 주인공을 비롯해 주요 등장인물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그게 서로 의미가 통하는 듯 하면서도 통하지 않고, 각각의 문장들은 무의미한 듯 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보이기도 하고, 여하튼 무척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난해한 희곡이었습니다.
 
무대는 ‘부조리극’이라 불리는 이 희곡의 난해함을 크게 줄이면서도 매력은 그대로 살려냈습니다. 여전히 비극적인데 무척이나 재미있기도 합니다. 임영웅 연출가는 더하지도 빼지고 않고 베케트의 원본을 충실히 살렸다고 하는데, 왜 희곡은 무대에 올려졌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하는지, 텍스트로서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공연으로서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둘 다 접하신 분들 가운데는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독자의 상상력이 제한을 받는 건 본질적으로 피할 수 없지만, 희곡의 빈 틈이 재능 있는 배우들의 연기로 단단하게 채워지는 걸 지켜보는 건 분명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취재파일] 곽상은

공연이 끝난 뒤 잠시 임영웅 연출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음 속에 맴돌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은 고도(Godot)가 누구라고(혹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누구도 정답을 줄 수는 없겠지만, 45년이나 같은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려온 노장 연출가의 답이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임영웅 연출가의 답은 역시나 ‘모르겠다’이었습니다. 관객의 다양한 해석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 말을 아꼈을 수도, 혹은 작가의 의도를 보다 적확하게 살리기 위해 일부러 ‘고도’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니면 45년의 세월 동안 그 대상에 대한 생각이 계속 바뀌어 지금의 답에 이르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뜻밖의 답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10여년 전 수업시간에서도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고도가 과연 누구(무엇)일까?’란 질문이었는데, 결론은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됐던 걸 기억합니다. 실제로 사무엘 베케트 역시 고도의 정체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을 보며 ‘고도는 누구(무엇)인가’란 오래된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고도는 누구(무엇)인가요? 답은 다를지라도, 그 답에 이르는 과정에서 느끼는 부조리함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취재파일] 곽상은

[취재파일] 곽상은


부조리극 탄생의 배경이 됐던 제2차 세계대전은 많은 이들에게 이제 역사 속의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희곡사에서 부조리극은 이미 유행이 지난 사조일지 몰라도, 그 속에 담긴 인간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가 가져다 주는 슬픔과 공포는 우리 세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제는 고전으로 자리 잡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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