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영호, 장성택, 그리고 현영철
김정은 집권 이후의 대표적인 숙청 사례인 리영호, 장성택, 현영철의 거세는 모두 김정은의 권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요 직위에 있는 파워엘리트들을 전격적으로 숙청함으로써 김정은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히 도전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리영호, 장성택의 숙청과 현영철의 숙청은 조금 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리영호 전 총참모장의 경우 김정일 위원장이 아들인 김정은 제1비서의 안정적 집권을 도와주기 위해 후견인으로 선택한 사람이었다. 어린 왕을 보좌하기 위해 경험많은 원로에게 역할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로는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리영호는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손이 발이 되도록 움직이는 단순한 하수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영호의 숙청은 기존 군부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김정은의 1인 권력을 강화시킨다는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현영철의 처형에서는 리영호, 장성택의 숙청에서 내포됐던 정치적 의미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영철은 주요 군간부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김정은의 단순한 하수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북한 권력구도에서 현영철이 있음으로 해서 김정은의 권력이 제약을 받았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동일한 맥락에서 현영철이 죽었다고 해서 김정은의 권력이 더욱 강화됐다고 볼 근거도 없다는 얘기다. 현영철의 전격적인 처형을 통해 김정은에게 조금이라도 밉보이는 사람은 언제든지 처단할 수 있다는 경고를 준 측면은 있겠지만, 그것은 단순한 권력의 남용일 뿐이지 권력 강화를 위한 고도의 정치투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 비운의 희생양 현영철
민간 뿐 아니라 군 조직까지 감시망이 촘촘히 짜여져 있는 북한의 상황에서 조직적인 반항이 일어나기는 힘들다. 북한군에서 쿠데타가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북한의 이런 특수성에 기인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공포정치와 이로 인해 최고지도자와 파워엘리트 그룹간의 균열이 심화된다면, 어떤 미래가 전개될 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힘들다. 역사의 상상력은 항상 인간의 사고를 뛰어넘어 펼쳐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