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퇴소한 예비군 "조교가 일주일 전에도 총기 사고 있었다고…"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작성 2015.05.17 15:03 수정 2015.05.18 09:3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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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퇴소한 예비군 "조교가 일주일 전에도 총기 사고 있었다고…"
<SBS는 서울 내곡동 동원훈련장의 예비군들이 전원 퇴소한 지난 14일 오후, 총기 사건 당시 현장을 목격했던 예비군 4명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다음은 취재를 맡았던 류란, 손형안, 민경호 기자가 어제(16일) SNS에서 나눈 대화입니다.>

● 퇴소한 예비군들…"사건도 사건이지만 군 대처에 분노"

[류란] 먼저, 우리 지난 목요일 나간 기사와 관련해서, 모니터단의 지적도 있었지만 퇴소 직후의 예비군들과 인터뷰한 게 옳은 일인가 하는 말들이 있었어. 사실 난 그 친구들이 우리보다 더(?) 적극적이고, 크게 분노한 상태에서 언론에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너희는 어땠어? 그날?

▶ [8뉴스] "피범벅 돼서 구급차 대기…" 참혹했던 현장

[손형안] 인터뷰할 의지가 없었으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응할 리 없겠고, 오히려 4명 모두 저희가 던지는 질문에 조금이라도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했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 보였어요.

[류란]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였지. 특히 군의 사후 대처에. 나 역시 그랬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 곳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하룻밤 더 묵게 할 수 있지 싶더라.

[민경호] 저도 그건 이해가 안 됩니다. 예비군 훈련은 사정이 생기면 나중에 추가로 훈련 받아서 채워 넣거나 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군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서 남겨놓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나머지 사람들은 판단의 영역 밖에 있었던 것 같아요. 남겨 놓을지, 남겨 놓으면 어떻게 관리할지, 아니면 일단 내보낼지 아예 생각조차 못한 것 같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보내는 것(퇴소) 보다는 일단 안에 두자는 것이 최소한의 판단이었겠죠.

취재파일
[류란] 그날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던 것 같고. TV도, 휴대폰도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오전에 일어난 일이 어떻게 된 것이라는 설명도, 정보도 전혀 없이 만 하루를 감금 비슷하게... 하루 종일 가만히 있어야 했다는 게...

한 예비군이 그런 표현을 했지. 사건 일어난 직후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생활관에 들어가 있는 사실이 별안간 공포스럽게 여겨졌다고. 옆 사람이 날 공격하는 건 아닌가, 머리를 감으면서도 서늘해서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되고, 분홍색 페인트 자국에도 흠칫 놀라고.. 만 하루 지나도록 식사도 못한 채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버텼다고. 밤에 조교한테 불이라도 켜고 자게 해달라고 간청했다는 이야기는 참....

[민경호] 뭘 요청할 때마다 군 조교나 장교가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말한 게 전부라고 했는데요, 그런데 말 그대로 정말 지침이랄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 누구도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것 같아요.

[류란] 우왕좌왕이었지. 밖에서 걱정하고 있는 가족한테 생사만 알리라고 오후 2시 되어서야 잠시 폰 나눠준 것도 그래. 어떻게 '엄마, 아빠 저 살아 있어요!' 이 말만 하고 끊겠어? 조교들이 옆에서 들으면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면 바로 통제했다는 것도...

[인터뷰 中]

(예비군 1)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엄마한테 설명하고 싶은데 그것 조차 못 하게. 그런 얘기는 지금 뉴스에도 많이 나오니까 하지 마십시오, 그냥 안부만 딱 전하십시오. 지금 정황 얘기를 하면 핸드폰을 다시 주셔야 한다, 들고 나가겠다.

-핸드폰은 몇 분이나 나눠줬다가 가져갔어요?
(예비군 1) 사람마다 다른데 5분?

-사고에 대해 설명해준 사람은 없고?
(예비군 1) 그러니까 어떻게 뭐 앞으로 될지도 모르고, 조교한테 물어봐도 자기는 모른다.

(예비군 3) 그냥 말 그대로 그냥 너희 알아서 가만히 있어라. 수습하기 바쁘다. 식사하러 가라고 방송 나오는데 못 먹죠. 그것도 어이가 없더라. 그 상황에서 무슨 식사...

(예비군 4) 저희가 뭘 먹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인원만 체크하고 다시 생활관에 대기하고. 훈련장 나올 때까지 거의 못 먹었죠. 다들 거의..
 

● 목격자 "당일 3시간 동안 6번 이동하며 조사…같은 이야기 반복"

[손형안]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까진 아니더라도 지휘부가 한 번쯤만 객관적으로 판단했다면 상식의 영역에서 나올 수 없는 조치였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자기네들이 어떻게 상부에 보고하고 언론에 덜 깨질까 고민하느라 시간 보낸 것 아니었겠어요?

[민경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손형안] 특히 현장검증에 불려가고 군 감찰기관 상대로 조사 받았다는 목격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몇 번이나 다시 떠올리면서. 어차피 같은 말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끌려 다녔다는 게. 피해자들의 심리 상태는 안중에도 없었던 거죠.

[류란] 맞아. 사건 현장을 본 예비군이 그날 밤 3시간 동안 6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러 여기저기 불려 다녀야 했다고 했지.

[인터뷰 中]

-X사로 부사수라면 직접 목격자인데 그 일 있고나서 바로 나머지 사람들이랑 똑같이 생활관으로 돌아간 건가요?
(예비군 2) 네, 오히려 밤새 조사만 더 받았죠. 계속 여기저기 다른 장소로 불려 다니고.

-총 몇 번?
(예비군 2) 5번에서 6번 정도 이동하면서 조사한 것 같아요.

-뭘 물어보던가요?
(예비군 2) 계속, 그냥 계속 했던 말 계속 똑같은 질문요. 뭘 봤냐, 이것만.

-조사 가면 거기 누가 있었어요,  장교?
(예비군 2) 그렇죠.  그런 사람들.  양복 입은 사람들도 있고. 다른 장소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어요. 계속 그 뭐 어떤 일 있었느냐, 제가 목격한 게 뭐냐, 이런 거. 계속 똑같은 질문이었어요.


[민경호] 같은 질문을 사람과 공간만 바꿔 가면서 한 셈인데요. 전형적인 취조 방식이거든요. 가장 효율적으로 정확한 기억을 받아내려는, 반복 진술하도록 시켜서 사실에 접근하려는.

[손형안] 그저 경과 보고의 양식에 맞게(자기네들이 원하는 답은 가지고 있으면서) 마치 소모품처럼 끼워 넣고...

[민경호] 이 사람들은 지금 피해자인데, 군은 마치 '소환'된 피의자나 참고인 대하듯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찰도 소환조사한 사람들 새벽에 집은 보내주는데...

[류란] 사건 다음날 현장검증 때 목격자로 지목된 사람이 자기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지금은 힘들다고 말했는데도 군에서 '의무'라는 식으로 강제로 참여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었지. 사실 그런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에 대해선 직후에 각별히 배려가 필요한데, 혜경(사건팀 정혜경 기자)이가 인터뷰한 전문가도 그 부분에 대해 우려하는 이야기를 했더라고. 

전홍진 -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 그 상황이 자꾸 회상이 되고, 보통 그것과 관련 없는 자극에도 그 생각을 떠올리거든요. 흔히 밤에 잠을 잘 못자고 깜짝깜짝 놀라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죠."

"예비군들을 바로 집으로 보낼 순 없었겠죠. 그렇다면 충분히 안심을 시키고 조사했어야 합니다. 사고의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한다든지. 아직 현장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누구나 또 그 상황이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거든요. 반드시 현장에서 분리하고, 바리케이트를 친다든지..."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중에 심각해질 수 있어요. 초기에 대응을 잘 하는 게 필요합니다. 두려움에 대해 스스로 자유스럽게 이야기하고 또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마다 그 상황이 지금 종료됐고 괜찮다는 걸 (다른 사람한테) 들어서 안심하는 게 중요하죠. 그래야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지지 않거든요. "


● "일주일 전에도 같은 훈련장에서 총기 사고 있었다"

[류란] 그런데 우리 그날 인터뷰에서 참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지. 사건이 일어나기 전 주에도 같은 훈련장에서 총기 사고가 있었다는. 형안이가 다시 정리 좀.

[손형안] 네. 우선 이 부분에 대해선 저희가 취재를 시도하니까 국방부가 "그런 일 없다"고 답을 했어요. 그럼에도 상당히 신빙성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군대에선 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밤 10시에 취침을 하는데 한 시간 전 쯤, 저녁 점호라는 시간을 가집니다. 내일 일정이나 군 내의 공지사항 등을 이야기하는 시간인데요.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X중대 생활관으로 밤에 조교가 들어와 "지난 주에 총기 사고가 있었으니 내일 사격에 유의해 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중대 전체 인원이 73명 정도였다고 하니 당연히 들은 사람도 여럿이고요.
취재파일
[류란] 어떤 사고였지?

[손형안] 전 주에 입소한 예비군이 사격장 6사로에서 사격을 하다 어깨에 탄이 박히는 사고가 났다는 거예요. 엎드려 쏴 자세에서 총을 쏘려면 총을 거치대에 걸친 뒤에 쏴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거치대에 총을 걸쳐놓고도 총구를 앞으로 쑥 내밀어야 안정적인 사격이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6사로 사격 주체가 총구를 걸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걸치는 것도 아니고, 대충 조치한 뒤에 총을 쏜 것 같아요. 이건 제 추측입니다. 총을 쏘다 보니 반동도 있고 총구가 위아래로 흔들리다 보니 한 발이 총기 거치대를 때려 탄이 쪼개지면서 어깨에 박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조교가 한 말을 정리해 보면 '총을 대충 걸치고 쐈다 + 탄이 어깨에 박혔다' 인 건데요, 사실이라면 사격 통제가 얼마나 형편없었으면 이런 사고가 바로 전 주에도 있었을까 싶은 거죠. 전부터 예고된 셈이죠.

[류란] 그런데 니 말처럼 국방부가 우리가 확인을 요청했을 때 '그런 적 없다'고 답변했단 말이야. 조교가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ㅎ

[손형안]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조교가 예비군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죠. 솔직히 조교가 겁준다고 해서 예비군들이 눈 하나 깜빡할 일도 없고요.

● 군화 떨어지게 혼비백산…"엠뷸런스 없어 땀 흘리며 심폐소생술만"

[류란] 최 씨가 자살한 이후에야 교관이 대피 명령을 내리고, 또 부상자들을 이송하는 아비규환의 상황에 대한 설명 들으면서도 힘들었어. 한 대 밖에 없는 구급차에 부상자 한 명이라도 더 실으려 말다툼하는 조교라든지, 얼굴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들것이 없어 제대로 옮겨지지 못한 채 마냥 다음 구급차 오길 기다리고 있는 부상자 모습 같은 것. 끔찍하더라고. 이건 나중에 맞춰 보니 국방부가 발표한 사건 개요와도 정확히 일치하더라. 앰뷸런스가 드나든 시간과 이송한 인원 같은 것.

[인터뷰 中]

(예비군 1) 그게 앰뷸런스가 한 대, 거기 한 대 밖에 없었어요. 한 대가 태우고 가고 나니까 다음 앰뷸런스가 없어서 피, 얼굴에 피 범벅 된 사람이 수송이, 이송이 돼야 되는데 앞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고 다음 차 올 때까지. 들것조차 없어서 그거 뭐야

(예비군 2) 심폐소생술.

(예비군 1) 네, 일단 급하니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고. 그 나중에 들것이 와가지고 이렇게 내려와서 보니까 이미 그 때는 팔, 팔에 힘이 아예 없어서 축 늘어진 상태고 얼굴에는 핏기가 없어가지고 아예 그냥 초록색으로.

(예비군 2) 그냥 부축해주고 말 걸어주고. 정신 잃지 말라고 계속 말 걸어주고. 안와, 아무도 안와. 막 위에서는 들것 빨리 오라고 들것, 들것, 막 소리 치는데

(예비군 1) 거의 한 10, 10여 분을 계속 심폐소생술만... 땀 흘리면서.


[류란] 대피 명령을 듣고 예비역들이 혼비백산하며 이동하는 것도. 백 마디 말보다 그날 인터뷰했던 친구의 군화가 많은 이야기를 해 주더라고. 뒤에서 실탄 장전한 사수가 사람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았으니, 정말 얼마나 놀랐겠어. 군화가 그렇게 밑창이 다 떨어져서 맨발이 보일 정도로 거의 굴러서 내려왔다고.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이었던 거지.
취재파일
[류란] 경호야, 니가 최 씨가 밤에 유서 쓰는 모습 본 목격자 인터뷰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 이야기 좀 해주라.

[민경호] 밤중에 불침번 교대하러 복도에 나왔는데, 누군가가 복도 계단에 걸터앉아 무릎에 종이를 놓고 펜으로 무언가를 쓰더랍니다. 그래서 지금 불침번 서고 계신 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고,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물으니 편지를 쓰고 있는 중이라고. 군대도 아니고 2박 3일 예비군에 와서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별 의심은 안 했다고 합니다. 그날은 그렇게 교대만 하고 별 특이사항 없이 마무리 됐다고 합니다. 그게 사건 전날 밤이었고요.

그런데 사고가 난 뒤 조교에게 최 씨가 불침번 언제 섰는지를 물으니 그 때 그 사람이 최 씨였다는 거예요. 쓰고 있던 종이 역시 방송에 나온 것처럼 손바닥만한 종이였다고 하고요.

[손형안] 그런데요, 선배

[류란] 응

[손형안] 전 이런 접근도 최 씨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는... 그러니까 군이 아닌 최 씨, 이놈아가 문제야! 이렇게요.

[류란] 맞아.

[손형안] 아젠다가 넘어가는 것 같아요.

[민경호] 네, 저도 최 씨가 샌드백이 되는 느낌이에요. 최 씨도 분명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 최 씨의 돌발행동을 막을 수 있어야 했죠, 그게 군의 역할이죠.

[류란] 그치.

[손형안] 맞는 말입니다.

● 관심병사 기록 활용, 대안될 수 있나?

[류란] 군대 다녀와 본 너희가 봤을 때엔. 이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는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던 것 같아?

[민경호] 애초에 사격 용으로, 사로에 묶여있는 총을 제공했더라면 싶어요. 개인 총을 지급했다더라도 고정시킬 수는 있었을 겁니다. 제대로 묶여 있는지 확인할 수도 있었을 거고요. 관심병사 기록을 확인해서 최 씨를 보다 신경 써서 관리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류란] 사회에 나온 예비역들의 관심병사 기록이 계속 전달되고 이게 예비군 훈련장에서까지 활용돼도 괜찮은 걸까?

[손형안] 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관심병사라는 존재가 꼭 '하자'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예컨대 조금 예민한 사람들, 폭압적인 위계 문화를 못 버텨 조금 삐걱거리는 사람들, 소위 남자답다는 이데올로기(거창하네요)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 돌아갔는데도 낙인을 찍고 차별을 한다?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생각해요. 설사 서류를 뒤져 확인을 한다고 한들 그다음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관심사병 일거수일투족 감시? 사격배제? 잘 모르겠습니다.

총기를 고정시킬 수 있는 안전장치도 분명 그 훈련장에 있었어요. 사수가 끼우고 또 사수가 언제든 뺄 수 있는 구조였죠. 끼우는 척 하면서 빼면 현장 통제관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경호 말대로 사격용 총을 따로 분류해 두고, 확실한 장치로. 그러니까 현장 간부 외에 손을 못 대게 한다던지 이런 시스템이 안 갖춰져 있었으니.

[류란] 이 일 터지고 많은 예비역들이 하는 말들이, 대부분 사로 당 조교가 한명 씩 사수 바로 뒤편에 서 있다가 사수가 조금만 이상 행동을 해도 제지한다고 하던데. 그건 실제 어때? 사고가 난 좌측 10개 사로에 배정된 건 조교 2명뿐이었어. 나머지 조교들은 언덕 아래에서 대기자들을 관리하고 있었고.

[민경호] 네, 맞습니다. 이번 같은 특수한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훈련하다 보면 총이 고장 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군에서 사격할 때는 항상 1대 1로 조교가 붙어 있어요.

총에 문제가 생겨서 그걸 조교가 봐주러 갈 때면 조교가 다른 사로를 전혀 신경 쓰지 못 하게 됩니다. 총소리도 워낙 크니 부르거나 할 수는 없는 거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로마다 조교 한 명씩 있어요. 그런데 이건 정식으로 훈련받을 때 얘기고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사실 주의 깊게 보지 않아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1대 1까지는 배치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류란] 실탄을 사용하는데, 그럼 정말 위험천만한 것 아닌가.

[민경호] 위험하죠. 공익근무요원들이 기초 군사훈련을 받을 때엔, 조교들이 일일이 총구가 묶여져있는지 확인하고, 수류탄 훈련 때도 연습용만 던지게 합니다.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예비군은 4급 판정을 받은 사람들까지 섞여 같이 훈련 받는데, 안전 기준은 현역들이랑 비슷해요. 현역들처럼 '군기'가 잡힌 상황도 아닌데요.

(2편에 계속 ▶ [취재파일] 4사로 부사수 "자살 장면 목격하고 통제관에게 직접 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