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국의 멍에를 벗고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행보가 안보 체제와 역사 인식을 두 축으로 삼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14일 집단자위권 행사의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을 정한 11가지 관련 법률의 제·개정안을 확정해 전후 70년간 이어진 전수방위(專守防衛)의 경계선에 발을 디뎠다.
아베 정권은 전후 70년을 맞아 발표할 담화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명시하지 않고 사죄 없이 모호한 반성을 표명하는 수준에서 역사 문제에 관한 일본의 채무를 적당히 덮고 보통국가 만들기를 정당화할 것으로 보인다.
◇ 해석 바꿔 헌법 흔들고 집단자위권 손에 넣어 2012년 12월 아베 총리가 재집권한 이후 일본 정부는 군대를 보유하고 필요에 따라 무력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변화한 국제 정세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불을 지핀 안보 법제 논의는 2014년 7월 헌법 해석을 바꾸는 초유의 각의 결정으로 이어졌다.
공격당했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하며 이를 최소한의 범위로 제한하는 전수방위 원칙을 바꾸려면 전쟁·무력행사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를 바꿔야 한다.
개헌이 전후 70년간 이어온 평화국가의 틀을 훼손한다는 강한 반발을 의식해 아베 정권이 차선으로 택한 것이 바로 헌법해석 변경이다.
'일본도 집단자위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행사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역대 내각의 견해를 부정하고 일본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지키는 데 필요하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공식 채택한 것이다.
사실상의 해석 개헌에 따른 후속 작업이 안보 법제 정비이며 14일 제출한 법안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가결되면 일본은 미국이나 여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공격당했을 때도 무력을 사용해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또 한반도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유사상황이 발생했을 때 미군이나 다른 국가의 군대를 후방지원하게 된다.
이들 법안은 크게 일본의 안전을 지키는 것과 국제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표방하고 있으며 결국에는 자위대의 활동 범위와 내용을 기존보다 대폭 확대한다.
이들 법안이 성립하면 일본은 전수 방위 국가와 전쟁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의 경계에서 줄타기하게 된다.
아베 정권은 새로운 안보체계가 자국의 안전 및 국제 평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홍보하며 개헌의 발판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집권 자민당 핵심 인사들은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했는지 긴급사태 조항, 환경권, 재정 규율 등 거부감이 적고 공감하기 쉬운 내용을 중심으로 일단 개헌을 하고 이후에 재차 개헌을 하며 헌법 9조를 고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내년 7월 예정된 참의원 선거 이후 개헌안이 국민 투표에 부쳐질 것으로 전망되며 헌법 9조를 수정하면 일본은 머지않아 명실상부한 군사대국의 반열에 오른다.
◇ 전후 70년 맞아 평화국가·국제 공헌 강조하며 과거사 빚 털기 안보 법제 정비와 개헌은 제도적으로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드는 작업이며 역사 인식을 수정하는 시도가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재집권 이후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헌법은 점령군의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는 등의 발언으로 전후 일본의 국제사회 복귀의 기반이 된 질서나 역사 인식을 부정하는 듯한 인식을 내비쳤다.
그의 측근은 일본의 A급 전범을 처벌하도록 판결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보다 수위가 높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 본인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인정하고 사죄한 무라야마(村山)담화 등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역사 수정주의자라는 의심을 자초하는 언행을 이어왔다.
그는 재집권 1년째인 2013년 12월 26일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으며 최근에는 8월에 발표할 전후 70년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 무라야마담화의 핵심 표현을 그대로 쓰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아베 총리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고 표현해 강제 연행을 우회적으로 부인했고,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면서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이 타국에 가한 피해에 대해 사죄의 뜻을 표명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의 측근이나 일본 내 우익 세력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나 난징(南京)대학살 등 과거 일본의 잔학행위를 반성·사죄하는 것을 이른바 '자학(自虐)사관'에 따른 행위라고 비방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아베 정권은 전후 70년간 일본이 정부개발원조(ODA) 등으로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고 국제 평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일본이 앞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논리는 과거의 잘못에 연연하지 말고 국제사회에서 더 목소리를 키워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일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 노동의 현장 7곳에 포함된 자국 내 23개 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면서 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에서 보듯이 이런 담론은 역사 윤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베 정권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진출해 일본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각국을 상대로 한 로비도 계속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 등이 이를 비판하며 파열음이 나고 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이웃 국가와 공존하라는 요구와 경제·외교력을 앞세워 역사에 덧칠하고 보통국가를 만들려는 아베 정권의 시도가 전후 70년을 맞아 더욱 팽팽하게 대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일본, 패전국 멍에벗기 시도…안보·역사 양축으로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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