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후 대학에서 본 광주의 5월은 '불순세력 색출' 명령을 받고 갔던 그 때의 광주와 전혀 달랐다."
이상일(60)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장은 30년간 매해 경남에서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아와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씨가 처음 광주에 오게 된 것은 부사관으로 군 복무 중이던 1980년 5월 19일.
정보사령부 소속이었던 이씨는 "광주시민들의 동요를 일으키는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불순세력을 색출하라"는 상부 지시를 받고 강원도 인제에서 급파돼 광주 현장의 사진을 찍어 보고했다.
20일부터 22일까지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시위하는 시민들을 촬영했고 27일 낮에는 민간인으로 위장해 시민군에 섞여 '채증사진'을 찍었다.
이씨는 "광주에 도착해 20일 오전 처음으로 금남로 현장에 투입됐을 때 군인들도, 시민들도 모두 격해 보였다. 아무래도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 아닌 '임무 수행'이어서 계엄군 입장에서 사태를 보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인간의 선입견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군경은 방패로 밀어내고 곤봉을 휘둘렀고 시민들은 돌멩이를 던져댔다.
이씨는 주도적으로 시위에 나서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시민들에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었고 계엄군 사이에 있을 때는 휴식을 취했다.
필름은 제3자를 만나 전달하거나 상부 지시에 따라 특정 장소에 묻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 후 1983년 대구의 한 대학에 입학해 보게 된 광주의 기록은 자신이 알던 광주와 너무 달랐다.
축제가 있던 그 해 5월, 이씨는 거리에 나선 시민들이 돌멩이에 이어 총을 들기까지 국가가 어떤 폭력을 자행했는지, '폭도'라던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 치안을 유지하고 서로 도왔는 지를 담은 영상과 사진으로 보고 조용히 광주를 찾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2∼3번씩 망월동 묘역을 찾아 사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처음 3년간은 차마 낮에 갈 수가 없어 밤에만 묘역을 찾았다.
시민군 사이에 끼어 활동했던 자신이 사실은 계엄군이었음을 광주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완성한 연작 '망월동'은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돼 최우수기획전으로 선정됐다.
이씨는 "그 때 참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나는 가해자인데 참회록을 쓴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사진들로 작가로서의 인지도를 얻게돼 내가 광주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들었다"며 "그래서 언젠가 내가 한 것들을 광주에 전부 기증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소회했다.
또 "광주는 기억해야할 일이다. 빨리 잊을수록 같은 폭력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며 많은 사람들이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길 소망했다.
그는 이 연작 사진으로 2011년에는 일본의 저명한 사진상인 이나노부오상을 수상했고 이중 총 3세트를 인화해 일본의 사진미술관과 자신이 운영하는 고은사진미술관, 광주 5·18 기념재단에 기증했다.
이씨의 사진은 5·18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로서 광주의 참상을 찍은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의 사진과 함께 오는 15일부터 6월 14일까지 한 달간 5·18 기념문화관에서 특별 전시된다.
(연합뉴스)
"속죄하려…밤마다 망월동 묘역 희생자 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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