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씨가 자살방조범으로 누명을 썼다가 24년만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는 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엇갈린 필적감정 결과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국과수는 1991년 유서의 필체가 숨진 김기설씨의 것과는 다르고 강 씨의 필적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2013년 국과수는 김 씨가 작성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노트와 유서의 필적이 같다는 결론을 내놨습니다.
24년 전 강 씨에게 자살방조죄의 올가미를 씌운 필적감정이 강씨의 누명을 벗긴 셈입니다.
사건은 김 씨의 친구가 2007년 김 씨의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제출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습니다.
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은 1997년 발견됐기 때문에 1991년 첫 국과수 감정 당시에는 제출되지 않았던 자료입니다.
진실위는 2007년 이 자료를 토대로 유서의 필적을 다시 감정해 달라고 국과수에 의뢰했고, 국과수는 '같은 필적'이라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유서를 강 씨가 아닌 김 씨가 직접 썼다는 결정적인 단서였습니다.
강 씨는 이를 근거로 2008년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재심에서도 검찰의 신청으로 국과수 감정이 한번 더 이뤄졌습니다.
이번에는 검찰이 압수한 김 씨의 이력서 같은 개인적 자료와 전대협 노트·낙서장, 유서의 필적이 한꺼번에 감정됐습니다.
국과수는 2013년 12월 "전대협 노트·낙서장은 유서와 필적이 같고, 이와 김 씨의 다른 자료도 필적이 동일하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결론 내렸습니다.
유서에는 '효도라는 것을 해보지 못했지요'라는 문구가 있다.
이 중 '보'자는 '오'자로 오인될 수 있을 만큼 휘갈겨져 있습니다.
이런 습관은 김 씨가 작성한 다른 문서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었습니다.
강 씨는 'ㅂ'을 쓸 때 상자모양에 가깝게 쓰기 때문에 김씨와 필적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1991년 국과수는 그러나 '보'자를 '오'자로 잘못 분석한 뒤 유서의 필적이 강씨의 필적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김 씨는 'ㅆ'을 쓸 때도 첫 번째 'ㅅ'은 첫 획만 쓰고 두 번째 획은 생략해 쓰는 습관이 있었지만 강 씨는 두 번째 획까지 모두 쓰는 차이를 보였습니다.
당시 국과수 감정인은 혼자서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 심의했다고 위증했습니다.
서울고법은 이런 점들을 토대로 유서는 강 씨가 아니라 김 씨가 작성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유서대필' 누명 씌웠다 벗긴 엇갈린 필적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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