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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5만 원 상속 위해 8개 기관 맴돌이에 "내가 졌다!"

[월드리포트] 5만 원 상속 위해 8개 기관 맴돌이에 "내가 졌다!"
우리도 드물지 않게 경험했습니다. 특별하지도 않은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관공서를 순례하고 수십 종의 증명서를 떼는 일 말입니다. 마치 탁구공을 치듯 이리 저리 가라하는 통에 분통을 터뜨린 적 있을 것입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전산화 덕에 많이 나아졌습니다. 과거 몇 곳의 관공서를 돌아야 했던 일을 이제는 집에서 인터넷으로 손쉽게 처리합니다. 공무원들의 서비스 마인드도 한결 강화됐습니다. 되도록 일을 간단하게 처리하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만.

중국은 하지만 이런 점에서는 여전히 낙후돼있습니다. 사소한 일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수많은 관공서를 찾아가야 합니다. 관공서 전산망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일도 일일이 증명서를 요구합니다. 올 1월 밀린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해 10여 군데 관공서를 2년 넘게 맴돌고 있는 중국 근로자들의 사연을 전한 바 있습니다. 밀린 임금이야 상대방이 있는 문제니 쉽지 않아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언론에 화제가 된 이 사연을 보고 꽤나 심각한 고질병이구나 싶었습니다.
중국 관료주의

쓰촨성의 성도 청두시에 거주하는 저우모 여사가 겪은 일입니다. 저우 씨는 지난 달 모시고 살던 아버지를 향년 70세에 여의었습니다. 유품을 정리해보니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라고는 모두 합해 310위안, 우리 돈 5만 5천8백 원이 들어있는 예금 통장 몇 개가 다였습니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은행에 인출하러 갔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유품이니 찾는 것이 맞다 생각해서입니다. 이 몇 푼을 찾는 일이 끔찍한 고역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은행 측은 해당 예금을 찾으려면 저우 씨가 부친의 유일한 상속인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관할 공증처에서 '계승권(상속권) 공증서'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뭐, 그럴 줄 알았다. 쉽게 내줄 리가 없지!' 수준이었습니다. 공증처에 '계승권 공증서'를 뽑으려고 갔더니 부친의 결혼 상황 자료를 가져오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부친에게 다른 혼외 자녀가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필요한 서류를 모아왔더니 이번에는 30년 전에 작고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망증명서를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됐습니다. 계속 새로운 증명서를 요구했습니다. 때문에 저우 씨는 아파트 관리 사무소, 동사무소, 파출소, 지역 민정국, 부친이 생전에 일했던 회사, 공증처 등을 맴돌아야 했습니다. 이리저리 분주히 뛰어다니느라 꼬박 일주일을 썼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공증서를 발부받을 조건을 갖추고 나자 어이없는 사실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공증료로 400위안을 내야 했습니다. 이미 여기 저기 찾아다니느라 쓴 차비만도 상속 재산 310 위안을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400위안의 비용을 더 들여야 하다는 말에 저우 씨는 공증서 발급을 포기했습니다.
중국 관료주의2

그리고 그때까지 모은 서류를 들고 은행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동안의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관련 서류들을 제출할 테니 부친의 예금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돌아온 대답은 단 한 마디. "규정상 '계승권 공증서'가 있어야 합니다." 이 말에 저우 씨는 그만 폭발했습니다. "그래! 내가 졌다. 은행 당신들이 이겼어. 그 돈 당신들이 다 가져."

아직 관공서 전산망이 정비되지 않은 탓이 큽니다. 너무 넓은 국토에, 어마어마한 인구를 가지고 있다 보니 효율적인 관리 체계를 갖추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결국 뿌리 깊은 관료주의입니다. 행정이 서비스라는 관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공무원은 국민보다 높은 위치에서 혜택을 준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질적인 형식주의입니다. 뭔가를 적극적으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민원인의 사정을 고려하기보다 책임을 가능한 한 떠넘기고 지지 않으려 합니다. 한없이 복잡한 형식을 만들어놓고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실제 필요한 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중국 관료주의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반부패 개혁을 얘기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른바 사풍(四風)으로 관료주의, 형식주의, 향락주의, 사치풍조의 네 가지 악습입니다. 중국의 발전을 가로 막는 대표적인 구태입니다. 그 중에 저우 씨가 겪은 일은 4대 악풍 가운데서도 무려 2가지와 관련됐습니다. 중국 정부가 타도의 기치를 높이 들었으니 저우 씨와 같은 사연은 곧 옛 일이 될까요? 아니면 중국 정부가 척결 대상 1, 2위로 꼽아야 만큼 깊은 사회병이니 제2, 제3의 저우 씨가 계속 나올까요? 관심 있게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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