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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남편에게 8천만 원대 교통 범칙금 물린 아내

일부다처제의 현실

[월드리포트] 남편에게 8천만 원대 교통 범칙금 물린 아내
최근 아랍 네티즌 사이에 단연 화제가 된 영상이 있습니다. 화면은 한밤에 사우디아라바아의 한 사거리, 정지선 앞에선 픽업트럭을 비춥니다. 2분가량의 정지 신호 동안 이 픽업트럭은 정지선에서 전진과 후진을 무작정 반복합니다. (사우디에선 과속과 신호위반이 교통사고의 주범이기에 정지 신호에서 정지선을 넘는 차량을 무인카메라에 찍어 차주에 범칙금을 부과합니다.)

픽업트럭이 왔다 갔다는 반복하는 사이 무인카메라도 리듬에 맞춰 플래시를 연신 번쩍입니다. 덩달아 벌금 액수도 택시 미터기처럼 째깍째깍 올라가겠죠. 이런 식으로 하루 밤 사이 픽업 트럭 차주에 부과된 범칙금이 자그마치 30만 리얄, 우리 돈 '8천 7백만 원'이 넘습니다. 장난이라고 하기엔 유희 대비 비용이 너무 큰, 그러기에 무모해 보이는 일을 누가 한 것일까요? 보기 드문 벌금액수에 경찰도 놀라 수사에 나섰고, 그 차에 탔던 사람은 다름아닌 차주의 아내와 처남으로 드러났습니다. (▶ 황당 정지선 위반 유튜브 영상)

● "나 말고 다른 아내는 안 돼"

수사결과 이 일을 꾸민 주모자는 차주의 아내로 밝혀졌습니다. 사우디에선 여성 운전이 금지된 관계로 자기 오빠를 운전대에 앉혀서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쇼를 벌인 겁니다. 자기 남편에게 벌금이 부과될 걸 뻔히 알면서 왜 이런 짓을 한 걸까요? 남편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을 당한 걸까요?

아내와 처남이 자기 차를 몰고 온종일 정지선 위반 쇼를 벌이던 그날 밤 남편은 결혼식장에 있었습니다. 누구의 결혼식? 바로 본인 결혼식입니다. 둘째 아내를 맞이하는 날이었죠. 그러니까 아내는 자기 말고 새 아내를 들이는 남편이 미워 '범칙금 폭탄'으로 복수를 한 겁니다. 사우디는 잘 아시다시피 일부다처제, 남자가 4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남편은 잘못이 없겠지만 아내로서는 분명 서운한 마음이 많이 들었을 겁니다. (아랍의 결혼관에 대해선 지난 해 11월 쓴 글이 있습니다. '내 돈 주고 한 결혼, 이혼도 내 멋대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면서 네티즌 사이에선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대부분 아랍 여성은 고소하다는 반응입니다. 남편은 자기한테 벌금이 싸이는 줄도 모르고 결혼식장에서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았을 거라면서 아내의 복수가 통쾌하다는 입장입니다. 반면에 남성들은 아내가 남편에 대한 복수를 고민하기 전에 남편이 왜 새 아내를 들이게 됐는지 자기 성찰이 먼저 필요했다고 반박합니다. 일부는 남편이 벌금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남편이 차를 몰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고 당시에 남편이 혼례 중이었다는 걸 증명할 사람이 많으니 죄가 없다는 거죠. 남편에 복수하려고 의도적으로 꾸민 짓이기에 아내와 처남이 범칙금을 물어야 하고 심지어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 달라진 결혼관, 증가하는 이혼율
[월드리포트] 남편

남편이 새 아내를 들이는데 반발한 아내의 소심한(?) 복수처럼 가부장적인 사우디 사회에서도 여성의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자연히 결혼생활에 대한 가치관도 달라집니다. 이러면서 생기는 사회문제가 '이혼 증가'입니다.

이슬람에선 이혼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행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여깁니다.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도 알라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혼이라고 했을 정도로 무슬림에게 이혼은 되도록 피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도 아랍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승인수가 3만 3천여 건으로 전년 대비 32%가 증가했습니다. 대략 하루 30쌍이 결혼하고 10쌍이 이혼하고 있는 셈입니다.

걸프 국가에서 가장 개방적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경우 이혼율이 5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이혼의 절반 이상이 결혼 후 5년 이내에 벌어진다는 겁니다.

걸프국의 학자와 전문가들은 나름 이혼율 증가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가부장적인 사고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파경의 원인과 책임을 여성 탓으로 돌리기 일쑵니다. 어떤 학자는 젊은 아내들이 드라마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라고 주장하고, 어떤 전문가는 여성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너무 많이 접하면서 배우자에 대한 불신을 배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 이혼 부추기는 '위자료 계약서'

이와 관련해 제 3자의 입장에서 한국외국어대의 서정민 교수가 쓴 글이 있어 간추려 보겠습니다. 서 교수는 걸프국의 이혼율 증가 원인으로 먼저 결혼시 맺은 위자료 계약을 꼽았습니다. 지난 해 11월 제가 쓴 글에도 다뤘지만 이슬람에선 남편이 결혼할 때 아내에게 이혼 시 어떻게 보상하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이혼을 어렵게 하고 혹시 이혼 당한 아내가 경제적 궁핍에 처하지 않기 위한 관습인데, 이제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겁니다.

쿠웨이트의 경우 법으로 이혼시 아내가 위자료는 물론 주택과 자동차에 가정부 채용 비용까지 남편에게 받을 수 있게 해놨습니다. 아내가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이혼을 결심할 수 있게 한다는 거죠. 사우디의 경우 이혼소송의 80%가 아내 쪽에서 제기하는데 이런 이유가 바탕에 깔려 있을 수 있습니다. 남성들 역시 이혼시 '보상을 하면 끝인데'라는 생각에 아내와 헤어지는 데 별 다른 도덕적 고민을 하지 않게 되는 거죠.

● '사랑 없는 결혼, 유리알 같은 인연'
[월드리포트] 남편
신랑은 결혼할 때 신부 쪽에 지참금을 지불하는 게 이슬람의 관례입니다. 금액은 천차만별이지만 사우디의 경우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호가해, 결혼 못하는 남성이 늘어나는 사회 문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아내를 사고' '딸을 파는' 현상도 벌어집니다. 가난한 집에선 돈을 보고 신랑이 어떤 사람인지 상관없이 딸을 시집 보내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실제로 2007년 사우디에선 110살 노인이 30살 신부를 들여 화제가 됐습니다.

금전 관계로 맺어진 결혼생활이 행복할 가능성은 적겠죠. 비슷한 경우지만 집안끼리 '거래'로 결혼이 성사돼 신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결혼식장에 들어섰다가 막상 신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자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선언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최근엔 휴대전화 보급과 함께 아무렇지 않게 이혼을 문자나 SNS로 통보하는 이른바 '문자 이혼'까지 성행하고 있는 게 걸프국의 현실입니다.

일부 다처제는 본래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과 고아를 가난에서 구제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결혼 지참금과 위자료 지급도 일부 다처제에서 생길 수 있는 무분별한 결혼행위를 막기 위한 보완장치입니다. 하지만, 석유자원으로 갑작스럽게 부를 거머쥐게 된 걸프지역에선 물질 만능주의가 일부다처제 본연의 취지와 결혼에 대한 가치관까지 덮어버렸습니다. 결혼과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부부끼리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잊게 만든 거죠. 그 결과 이혼율 증가라는 골칫거리가 찾아왔습니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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