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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들은 왜 '사적복수'에 나섰나

● 층간 소음에 대한 '사적 복수'…그 뒤에 찾아온 '쾌감'

이사온 뒤 5년간 층간소음에 시달려 온 대학생 김 모 씨는 요즘은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윗집에서 들려오는 '쿵쿵' 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층간소음이 덜 들리는 베란다에서 자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는 덜합니다.

김 씨에게 이런 '안정'을 찾아준 것은 우퍼 스피커. 두 달 전 김 씨는 천정에 진동이 큰 우퍼 스피커를 붙여서 설치했습니다. 발 쿵쿵 소리와 의자 끄는 소리, 벽치는 소리 등 그동안 자기가 들었다고 생각되는 모든 소리를 모아서 스피커를 통해 위로 올려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란다 밖으로 윗집 부부가 스피커 소리 때문에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쾌감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층간 소음이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우퍼 스피커를 틀어놓으면 평소 30데시벨이던 김 씨의 방 소음 수치가 60데시벨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나 윗집 사람도 소음 고통을 겪을 거라 생각하니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습니다. 관리사무소, 경찰서, 상담센터에서 해결해주지 못한 문제지만 스스로 '복수'를 한 것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고 했습니다.

● 사적 복수가 '복수 상품' 개발로까지

층간 소음 전용스피커가 인터넷에서 대 인기입니다. 출시 6개월 만에 1만 대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이 제품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업체 대표 이원덕 씨를 어렵게 섭외해서 만났습니다. 그는 원래 무역업자라며, 자신도 층간소음 피해자였다고 말했습니다.

"이 제품은 음악감상용이 아닙니다. 경량화에 중점을 둬서 천정에 가볍게 붙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구조물 투과율 향상에 중점을 뒀습니다. 소리가 벽을 뚫고 나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위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는 방이라면, 방 천정에 이 스피커를 붙여놓고 작동시키면 윗층에서도 분명히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는 '보복 상품'임을 인정하면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관점의 차이입니다. 윗집 입장에서 보면 이게 보복 상품입니다. 그런데 아랫집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괴로워하던 소음을 윗집에게 간접 체험을 하게 해주는 상품이죠. 윗집에선 보통 '내 일 아니다. 법대로 해라' 이래요. 그런 사람들에게 이 스피커를 쓰는 게, 그게 심각한 걸까요? 아랫집에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복수의 쾌감을 맛본 사람들은 더 큰 쾌감을 위해 갖가지 복수 방법을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8개, 10개 이렇게 패키지로 사시는 분들이 많아요. 방에다 다 붙이는 겁니다. 윗집 사람이 도망다니면 그 곳마다 다 스피커를 설치해요. 도망갈 공간이 없게 만드는 거죠. 거실, 부엌, 작은방, 큰방 이렇게 달아놓죠. 거의 도배죠."

또 다른 사례도 소개했습니다.

"음란물 음성을 다운받아서 윗집에 일주일을 틀어댄 사람도 있어요. 그 전에 윗집 사람이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었대요. 그냥 경찰에 신고해라..이렇게요. 그런데 일주일 음란물 음성을 틀어대니까 바로 내려와서 '모든 조건 다 들어주겠다, 그만하자' 그러더래요."

그는 이 제품이 층간소음을 해결해주진 못해도 사람들의 응어리는 풀어줬다고 주장했습니다.

"해결이 됐다면서 울면서 전화하시는 고객도 있어요. 너무 감사하다고. 자기는 이제 살 것 같다고. 이제는 윗집에서 쿵쿵대고 걸어다녀도 예전같이 예민하지 않다고요."

●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사적 복수'

법이나 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 자력구제, 즉 사적 보복입니다. '층간 소음' 문제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 조정에 나선 2002년이후 12년이 넘도록 가해자에게 배상 결정이 내려진 것이 단 한건도 없습니다. 피해자에겐 아무런 도움이 안 됐던 겁니다. 실제 법적으로 아랫층 사람이 윗층을 향해 소음을 내는 것은 봐줍니다. 그러나 그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피해자들이 스스로 방법을 찾은 겁니다. 스피커 보복입니다.

대리운전 기사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돈 안주고 진상부리는 손님을 그냥 놓고 내렸다는 글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는 술취한 손님이 운전대를 잡으면 음주운전으로 신고해 복수했다는 글들이 가끔 눈에 띕니다.

요금 실랑이가 붙으면 대리운전 기사를 보호해 줄 법적 장치는 없습니다. 대리기사하면서 몇천 원, 몇만 원 때문에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술마신 차주와 시비가 붙었다가 그냥 내린 경우, 그 차로 교통이 방해되거나 음주운전자가 사고를 내게 되면 대리기사도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엄격히 따져보면 대리기사 입장에선 엉뚱한 피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차주의 '음주운전'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리기사에게 사적 보복을 부추기는 분위기입니다.

학교는 더욱 심합니다. 지난 달 7일, 전북의 한 중학교에선 학교 폭력 피해자 일가족이 학교를 직접 찾아 가해학생을 집단 폭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일은 쉽게 목격됩니다. 이렇게 학교에서 '사적 보복'을 가하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학교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6개월간 같은 반 아이들에게 사이버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이 여학생은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여학생 부모는 학교 측에 여러번 진상 조사를 요구하며 가해학생들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반년 뒤 학교 측은 가해학생들을 옆반으로 옮겼다고 통보했습니다. 한 학년에 3개 반뿐인 학교에서 옆 반으로... 그리곤 피해학생 부모에겐 '서면사과문' 1장 보낸 게 전부였습니다.

교육 당국과 학교를 믿고 참고 기다리던 여학생 부모는 결국 법대로 처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이정엽 학교폭력 전문 행정사의 말입니다.

"가해자 아빠가 지역 농협 이사장이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농협 역할이 어떨까요. 학교가 행사를 하면 매번 협찬하고 오시죠. VIP란 말입니다. 그럼 학교에선 가해자를 처벌하는게 유리할까요? 아니면 그냥 넘어가면서 그 애 아빠한테 잘 보이는게 유리할까요?"

또 다른 사건입니다. 부산에 사는 고3 여학생은 학교폭력 가해자와 반년째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가해 학생이 힘깨나 쓰는 집안이다보니 학교가 내린 전학조치에 대해 집행정지 처분을 받아내고, 오히려 피해학생과 부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뀐 상황이 돼 버린 겁니다.

학교나 교육당국을 믿고 기다리기 보다는 부모가 나서서 큰소리치고 폭력을 행사해야 그 뜻이 제대로 받아들여지는게 현실이라고 이정엽 행정사는 진단했습니다.

"부모가 나서서 '누가 우리 아이 건드렸어? 너희들 가만히 안 둔다' 그러면 학교에선 일단 시끄러운 것부터 조용하게 해야 하는게 1차 목적입니다. 사실관계 따져서 '이렇게 저렇게해라' 하는 것은 없어요. 피해자가 분명히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행동하는 이유는 그만큼 자기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강하게 안하면 해결이 안 된다고 믿는 겁니다.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거죠."

최근 개봉한 '살인의뢰'라는 영화부터 지난해  '방황하는 칼날', 그 전에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 등등..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사적 복수'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행을 심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의 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답답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겁니다. 참 흥미로운 것은 법이나 제도가 잘 정비돼 있고, 정부나 힘을 가진 권력기관과의 소통이 잘 보장돼 있는 사회에선 복수극들이 잘 먹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수극들이 잘 먹히는 사회거든요."

사람들을 이런 사적 복수로 밀어넣는 사회에선 법과 제도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보기 어려울 겁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로 이어지며 부메랑이 돼서 나 자신에게 언제든 돌아올 수 있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힘의 논리, 목소리의 크기에 따라 누구나 복수가 가능하다면 힘없는 사람이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가 되는 겁니다. 법과 시스템이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회, 사적 복수를 정당화하지 않는 사회, 복수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정의롭고 믿을 수 있는 사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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