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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 외교'(外交)의 실종? 문제는 '내치'(內治)!

[취재파일] '한국 외교'(外交)의 실종? 문제는 '내치'(內治)!
요즘 한국 외교가 국내에서 집중 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 4일 국회 외통위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윤병세 장관 능력으로는 안 된다"면서 외교장관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각 언론에서는 지난주 연휴 기획으로 한국 외교를 비판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만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외교가 '갑자기' 엄청난 위기에 봉착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저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물론, 우리 외교가 문제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지금 쏟아지는 비난이 모두 정당한 것인가", "외교장관만 바꾸면 해결되나"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겁니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안들을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우리 외교 현실은 '기울어진 운동장'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가 처한 외교 현실입니다. 최근 재보선에서 야권의 패배를 분석할 때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지형 자체가 보수진영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아서 웬만한 지지율 차이가 아니면 실제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승리하는 것이 힘들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지형 자체도 '기울어진 운동장'같아 보입니다. 사실 정부와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미국, 중국, 일본 등과 대등한 관계에서 주도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처럼, 그럴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대등하거나 공평한 장기판이 아닙니다. 2013년 12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방한해 박 대통령에게 "반대쪽(중국)에 베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던 사실을 굳이 복기하지 않더라도, 국력의 차이는 그만큼 엄연한 것입니다.

따라서 무슨 국가대표축구팀 한일전처럼, 모든 외교전에서 우리가 일본에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현실과는 크게 동떨어진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전제를 인정해야, 비로소 한국 외교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대미외교 실패 맞나?
아베 총리 캡쳐_6
아시는 것처럼 최근 한국 외교에 대한 비난 여론은 '일본발'입니다. 크게 보면,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부터 아베 총리의 첫 미의회 연설까지, 이른바 '미일 신밀월시대'가 열리는데 우리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골자입니다. 이 비판에 따르면, 아베가 미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하지 않은 것도 한국 외교의 실패입니다.

그러나 미일의 밀월 관계는 지금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닙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강력한 파트너였습니다. 아시아지역에 대한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유지해준 ADB는 설립 당시부터 일본이 주도해왔습니다. 여기서 주도했다는 건 상당한 돈을 투자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 이전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일본은 상당한 돈과 사람을 지원해왔고, 그것도 모라자 워싱턴에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로비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의 이번 의회연설은 그런 투자의 한 결과물일 따름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그런 일본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외교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일본에 비한다면 우리의 대미 투자나 로비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국력의 차이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 격차를 감안한다면, 미 의회 내에서 아베 연설 반대 의견이 나오고, 세계 역사학자들이 아베에게 위안부 문제를 사죄하라는 서한을 보내는 등의 현 상황은 우리가 선전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명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와 민간이 물밑에서 부단히 움직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미 의회 연설에서 아베가 한국 위안부 문제를 사죄하지 않은 것을 한국 외교의 실패로 볼 것인가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사실 사죄를 하려면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와서 해야죠.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미국과 일본 양자 간 행사인데, 거기서 벌어지는 일까지 우리 외교당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몰아갈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밖에 AIIB 가입 시점 문제, 사드의 도입 여부에 대한 모호한 태도 등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주변국과의 관계까지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실패라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 '외교'(外交) 아닌 '내치'(內治)가 문제

말씀드린 것처럼, 전투 하나하나에 있어서는 우리 국력을 감안할 때 선전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개별 전투의 승패에만 초점을 맞춘 비난은 그리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문제는 '전투'가 아니라 '전쟁'에서 우리가 이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입니다. 진짜 난맥은 바로 여기에 존재합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아시아 회귀, 그 틈바구니에서 무장하는 일본,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바로 한일관계와 남북관계에 대처하는 '원칙외교'입니다.

이 '원칙외교'는 박근혜 정부 집권 초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등 다수의 국내 이슈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지지율을 받쳐주는 데는 기여했죠. 당시 강경한 대일·대북 원칙론은 국내 정치적 난맥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으로 분석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원칙론은 우리 외교의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하는 남북관계와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가로막는 부메랑이 됐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외교적 문제는 외교 자체가 아니라 내치(內治)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외교는 정치적인 다툼에 이용되고, 조직간 엇박자에 찢기고, 기강이 해이해진 공무원의 출세욕심에 짓밟혀, 보기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사드 도입 분란은 청와대와 여당의 엇박자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때 시작된 여당과 보수언론의 윤병세 외교부장관에 대한 공격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 공격은 집권 3년차 당청간 주도권 다툼 와중에 벌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독도 입도 지원시설 건립 문제는 정부 내 엇박자 사례입니다. 지난해 11월 총리 주재 회의에서 건립 보류하기로 했는데, 유기준 신임 해수부 장관이 지난 3월 "적극 검토"라고 딴 소리를 했었죠.

일본 강제징용 시설 세계유산 등재 건은 어떤가요. 유네스코 등재가 임박한 상황에서 교육부 출신인 주 유네스코 대사가 임기 중에 기관장 공모 신청을 이유로 귀국하면서 외교부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치를 도맡아 당청간 조율을 하고 공무원들의 기강을 잡아야 할 국무총리는 벌써 2주째 후보도 뽑지 못하고 공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 외교'는 외교관들이 하는 것이지만, ' 외교력'은 한 나라의 국력과 정치수준이 결정합니다. 내치의 총체적인 난맥에서 비롯된 현 외교 문제는 외교장관이라는 한 외교관의 교체 만으로 바로잡을 수 없다고 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지혜로 정부와 국회정치가 먼저 바로 선다면, 우리 외교도 자연스럽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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