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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납득 되는 중국인의 '견사불구(見死不求)'

[월드리포트] 납득 되는 중국인의 '견사불구(見死不求)'
무협지를 좋아하시는 분에게는 대단히 익숙한 사자성어입니다. '見死不求(견사불구)'.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을 충분히 구해줄 수 있는데도 외면하는 경우를 일컫습니다. 냉혈한을 묘사하는 일종의 관용어입니다. 인간의 탈을 썼지만 양심에 털이 난 악인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현대의 중국은 이런 '견사불구'가 흔합니다. 차에 치여 죽어가는 3살 아기를 모두 본체만체합니다. 시장에서 갑자기 쓰러진 할아버지를 대부분 피해갑니다. 우리는 중국인의 무정함에 혀를 찹니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사건을 보면 중국인들의 그런 태도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됩니다.

얼마 전 안후이성 수청현의 관할 경찰서 교통계는 한 대로에서 장 모 할머니가 자전거에 치여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교통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피해자라는 장 할머니는 이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근처 중학교에 다니는 샤오허라는 학생이었습니다. 주변 상인들이 신분 보증을 서줘 일단 등교했습니다.

경찰관은 먼저 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장 할머니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내가 길을 건너려는데 그 학생이 타고 온 자전거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어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자전거에 밀려 쓰러지면서 뼈를 크게 다쳤습니다. 분명히 그 학생이 나를 자전거로 쳤어요."

하지만 샤오허의 설명은 전혀 달랐습니다. "어스름 새벽에 자전거를 몰고 학교로 등교하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자전거를 천천히 몰아요. 그런데 그 할머니가 길에 쓰러져 있는 게 보여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할머니를 일으켜 드렸습니다. 하지만 많이 다치셨는지 서지를 못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길 밖 인도 쪽으로 부축해서 앉혀드렸는데 할머니가 제가 자신을 쳤다고 오해를 하세요. 저는 분명히 치지 않았는데요."
견사불구

담당 경찰관은 난감했습니다. 마침 폐쇄회로 카메라도 없는 구간이라 두 사람의 말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실인지 확증하기가 곤란했습니다. 그래서 현장 주변을 샅샅이 탐문했습니다. 결국, 목격자를 찾아냈습니다. 마침 당시 차를 몰고 사고 현장을 지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길을 건너려고 인도에서 자전거 길로 나오더라고요. 저는 혹시 제 차를 보지 못할까 봐 천천히 몰고 지나가려 했죠. 그런데 이 할머니가 찻길만 보고 자기 쪽으로 오는 자전거는 미처 보지 못했나 봐요. 자전거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깜짝 놀라 제풀에 넘어지더라고요."

경찰이 장 할머니에게 다시 찾아가 재차 추궁했습니다. 처음에는 완강히 충돌이라고 주장하더니 목격자의 진술을 들이대자 그제야 실토했습니다. "자전거랑 부딪히지는 않았어요. 치료비가 1만 위안(약 180만 원) 나와서 도저히 낼 방법이 없어 그랬어요. 배상을 받으려고."

장 노인의 가족들은 그제야 실상을 알고 샤오허의 부모를 찾아가 싹싹 빌었습니다. 샤오허가 무고죄로 문제를 삼으면 오히려 샤오허에게 배상을 해줘야 할 판이니까요.
견사불구

중국에서 선의로 누군가를 도와줬다가 이렇게 봉변을 당하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얼마 전 허난성 푸양시에서는 물에 빠진 자매를 구해주고 자신은 끝내 숨진 대학생이 억울한 누명을 썼습니다. 생명의 은인에게 줄 보상금이 아까웠던 자매의 어머니는 오히려 숨진 대학생이 자매를 물에 빠뜨렸다고 몰아갔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수사 끝에 진상을 밝히자 실토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쓰러진 노인을 부축하거나 병원으로 데려다줬다가 가해자로 몰려 거액의 배상금을 물고 심지어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하는 사건도 잇따릅니다.

급기야 중국 위생부는 '쓰러진 노인을 부축하는 법'이라는 40여 페이지짜리 가이드북을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무조건 부축하지 말고 의식이 있는지를 따져 달리 대처하라'고 안내합니다.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가해자로 몰리지 않도록 덮어놓고 도와주지 말라는 말입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런 일들은 중국인의 심성이 특별히 악해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저는 중국 근대사의 질곡이 낳은 슬픈 유산이라 생각됩니다.

중국은 1840년 아편 전쟁 이후 전 국토에 걸쳐 각종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서양 세력의 끝없는 침략과 침탈, 청나라의 붕괴에 따른 각 세력의 군웅할거, 그로 인한 내전, 일본과의 길고 참혹했던 전쟁. 그런 엄혹한 세월을 견뎌내야 했던 세대는 '오직 살아남는 것이 미덕'이라는 인식을 뼈 속 깊이 각인했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선의는 허약함이고 선행은 사치였습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호의를 짓밟는 행위조차 용인됐습니다.

그런 아픈 기억을 통해 체득한 생존법이 현재의 '견사불구', '부관셴스'와 같은 슬픈 풍속일 것입니다.
견사불구

하지만 중국에서 이런 악습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더 상식적이고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앞서 장 노인의 모함을 경험한 샤오허는 '앞으로 나도 견사불구 해야지.'라고 결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장 노인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되자 부모님을 설득해 일가친지로부터 장 노인의 치료비를 모금했습니다. 그리고 퇴원 수속을 밟는 날 자신을 가해자로 몰았던 장 노인을 찾아가 1천 위안(약 18만 원)의 성금을 전달했습니다.

샤오허와 같은 젊은 세대가 중국의 주류를 이루면 사회 분위기는 분명히 바뀔 것입니다. '견사불구'와 같은 끔찍한 사자성어는 다시 '무협지'에서나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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