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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총리실은 인사청문회 부처?

이완구 전 총리의 낙마를 바라보는 총리실 공무원들

[취재파일] 총리실은 인사청문회 부처?
지난 금요일(1일) 이완구 전 총리의 짐이 서울로 옮겨졌다. 정부 세종청사 총리 집무실과 총리 공관에 있던 개인 짐이다. 총리실 직원이 챙겨서 서울에 있는 국회의원실 비서관에게 전달했다. 70일 만에 사퇴했고, 절반 이상은 서울에서 보냈으니 짐은 단출했다. 짐을 서울로 옮긴 공무원은 이 일로 이 전 총리와 관련된 총리실의 일은 모두 끝났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검찰 조사 준비와 같은 일들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겪어야 한다.

● 이완구 전 총리, 이임식 후 차 안에서 대성통곡

지난달 27일 이 전 총리는 이임식을 마친 뒤 마지막으로 총리실 직원들을 돌아보면서는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울음을 가득 머금은 채 승용차에 올랐다. 승용차에 타고 문이 닫힌 뒤 이 전 총리는 30여 분을 대성통곡했다. 같이 차에 탔던 수행원들은 말도 걸지 못하고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자택에 다다를 무렵 이 전 총리는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내가 알아서 혼자 잘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차 안에는 사무관급 운전기사와 과장급 수행비서, 최민호 비서실장이 같이 타고 있었다.

일주일 전인 20일, 이 전 총리는 오후 5시쯤 일찍 서울청사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일찍 퇴근한 것을 두고 이때부터 자진 사퇴 결심을 정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측근들은 전혀 그런 느낌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몸이 너무 안 좋았다고 했다. 대상포진이나 혈액암 재발은 아니고 단지 심신이 피곤하고 정신이 멍했다고 한다. 그래서 강남성모병원에 가서 수액 치료를 받았다. 혈액암을 극복하면서 다녔던 병원이고 평소에도 몸이 안 좋을 때 자주 진료를 받았다. 그리고 삼청동 총리 공관에는 밤 9시쯤 돌아왔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행원들은 일찍 퇴근시켰다. 

그리고 2시간쯤 뒤인 밤 11시쯤 총리실은 비상이 걸렸다. 사의 표명 결심을 언론에 알리라는 총리의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집에서 잠을 자거나 주변에서 지인을 만나던 공무원들은 급히 서울청사와 공관에 출근해 자정쯤 언론에 사의 표명 소식을 알렸다. 최민호 비서실장은 침울한 목소리로 "맞습니다. 사의 표명이예요"라고 사실을 기자들에게 확인해줬다. 이 전 총리의 사의 결심에는 "이제 내려놓자"는 부인의 설득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수액치료 뒤의 피곤한 심신 상태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총리실 직원들은 저녁 9시부터 11시 사이의  두 시간 동안에 대통령과의 교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최민호 비서실장도 곧바로 사표 제출

최민호 비서실장은 다음날 바로 사표를 제출하고 세종시로 내려왔다. 총리실의 인사권은 국무조정실장에게 있고, 차관급인 비서실장은 결국 청와대 결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워낙 이완구의 사람으로 알려져 비서실장으로 낙점된 만큼 거취를 함께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최 비서실장은 세종시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총리의 사퇴를 안타까워했다. 자신을 비서실장으로 부르면서 이 전 총리가 당부한 말 두 가지를 전했다. "사심 없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총리가 될 수 있도록 보좌해 달라"와 "비서실장이라고 총리를 수행하지만 말고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고 한다. "총리실을 비롯해 공무원들이 너무 일을 안 한다"며 "확 고치겠다"는 말도 했다고 했다. 최 비서실장은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낙마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대응을 놓고 미시적으로 볼 때는 '말 바꾸기', '거짓말'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인간 이완구를 평가할 때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봐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도 했다.
 
● "언론에 대한 트라우마 해소 못해"

다른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이 전 총리가 인사청문회 기간 언론에 가졌던 트라우마를 끝내 해소하지 못한 것  같다는 평가도 했다. 언론을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회사 선배나 고위층을 안다며 은근히 압박하는 것인데 이른바 '녹취 파문'은 그런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전임 정홍원 총리의 경우,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 내용을 모두 타이핑하면 많아도 석 장을 넘지 않았다. 이완구 전 총리는 한번 세종공관에서 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이때 한 발언 내용을 타이핑한 결과 20장이 훨씬 넘는 분량이었다. 자신의 언론관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장광설부터 충남 도지사 시절 자랑까지 참 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추진력이 대단했다는 데는 이견은 없다. 특히 공직 기강은 눈에 띄게 강화됐다. 오전 11시 반 쯤 시작돼 2시까지도 가능했던 세종청사의 점심시간은 1시간으로 줄었다. 세종청사를 잘못 지었다는 비판은 정홍원 전 총리의 경우처럼 말로만 끝나지 않을 태세였다. 총리 집무실 옆의 필요 없는 대기 공간, 불필요한 회의실을 모두 없애라고 지시했다.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는 역대 총리들이 기념식수한 나무가 공관 정면을 가리고 있다. 이 나무들을 모두 공관 주변으로 옮기라는 지시도 있었다.

● "총리실은 인사청문회 부처" 자조하기도

이 전 총리가 퇴임한 지 일주일이 지나면서 총리실은 이른바 '멘붕' 분위기를 벗어나고 있다. 이제는 새 총리로 누가 지명될지가 더 관심사다. 고위 공무원들은 벌써부터 인사청문회룰 걱정하고 있다. 총리실은 인사청문회 부처라는 자조석인 말도 나오고 있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금요일 세종청사에서 국장급 이상 전원이 참석한 확대간부회의를 열었다.  "긴장감을 갖고 맡은 업무를 빈틈없이 챙기라"고 지시했다. 빈틈없이 챙기라는 지시가 나온 배경은 당연히 빈틈이 생길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2달 동안 이완구 전 총리의 지시에 따라 각종 대책을 만들던 공무원들은 한 숨을 돌리고 있다. 공무원들은 새 총리가 오면 새롭게 시작하자는 생각일 것이다. 출장이 많은 공무원들로부터 받은 6개월 동안의 행적 기록에 대한  조사 결과도 어떻게 조용히 마무리 하나를 고민하는 눈치다. 추 실장은 기획재정부의 이른바 '김 과장'처럼 파렴치한 간부 공무원이 몇 명 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에 공개해 일벌백계하자는 주장에는 당치도 않다는 반응이다. 그러면서 총리실 공직복무관리팀은 지방공무원 비리나 촌지 받는 초등학교 교사를 적발하는 일을 격에 어울리지 않게 자랑하고 있다. 이완구 전 총리의 사퇴로 총리실은 한 템포 쉬어가려는 분위기다.

새 총리가 지명되고 인사청문회까지 통과하려면 빨라야 또 한 달이 걸린다. 그러면 어느새 올해도 하반기로 돌아서고 이후 의원 출신 장관들의 관심은 내년 총선이 될 것이다. 먼 훗날 현 정권을 생각하면 '세월호'와 '총리 인사파동' 밖에 없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걱정이 현실화 될 수도 있다. 총리실의 쉬어가는 분위기가 그래서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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