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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은 '되고' 있어요. 이제 시작이에요."

-두려운 것은 '엔저' 뿐이 아니다

올들어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엔저 현상을 취재하기 위해 엔값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계 관계자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얘기하며 공통적으로 느낀 건, 엔저 그 자체 뿐 아니라,  "아베노믹스가 '되고' 있다"는 두려움과 부러움이었습니다.

대대적인 양적 완화를 동반한 아베 정권의 경기 부양책이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고, "앞으로가 시작"이라고 느낀다는 겁니다.

[관광회사 직원 :  아베노믹스가 돈만 뿌리는 게 아니라, 외국 관광객 유치를 활성화해서 일본 내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목표로 공격적으로 유치를 해요. 중국인들 입국 절차도 수월하게 해주고, 일본 관광청 차원에서 해외 마케팅을 활발히 하더라고요.

사실 지난해까지는 일본에 입국하는 외국인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이 더 많았어요. 그렇게 된 지 꽤 됐거든요? 그런데 올해 1~3월은 일본에 들어가는 외국인이 더 많아요. 역전됐어요.

중국인 관광객도, 아직은 우리나라 오는 사람이 더 많지만, 일본 가는 숫자 증가율이 훨씬 더 높아요. 사실 일본 인프라가 엄청나거든요. 골프장이 2천 개가 넘고, 스키장이 2백 개가 넘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각종 테마파크도 굉장한데….

그동안 관광업을 제대로 활성화를 못 시키다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하니까 살아나고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와 일본은 사실 아시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경쟁 관계예요. 지금까지는 우리가 우위인데, 솔직히 요새 "위험하다"고들 얘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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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 입국 외국인(재외국민 포함)은 1천 4백 20만 명, 2014년 일본 입국 외국인은 1천 3백 41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올 1~3월 수치를 보니, 우리나라 입국자가 320만 명인데, 일본은 이미 400만 명을 넘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한류 열풍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입국하는 중국인이 엄청나게 늘고 있는 게 인상적입니다. 2013년 130만 명에 그쳤던 일본행 중국인은 지난해 240만 명으로 급격히 늘었습니다. 2013년 일본과의 외교마찰로 입국자가 줄었던 효과도 있긴 하지만, 이를 빠르게 만회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중국인 입국자는 2013년 245만 명에서 지난해 275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증가세가 훨씬 완만하고, 일본 입국자와의 격차도 많이 줄었습니다.

[일본 수출 기계제조 회사 직원 : 일본 출장 가서 거래처 사장님한테 들은 얘기가, 정부가 투자 지원에도 굉장히 적극적이래요. 시설 투자를 하겠다고 예산을 잡으면, 그 잡은 금액만큼 정부에서 투자를 지원해 주고….

그런 정책들을 많이 쓴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적극적으로 기업을 밀어주는 분위기라고. 그동안 오랫동안 경기가 침체됐던 거, 그런 거 탈피하겠다는 노력이 확실히 느껴진대요.

그런데 우리나라나는 투자 지원 같은 거 해준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받아보려고 하면  여러 가지 제도적 요건 같은 게 실제 그걸 받기까지가 너무 어려워요. 투자는 투자대로 어렵고 환율은 환율대로 떨어지고….

중소기업은 정부의 지원과 환율에 대한 방어 같은 게 솔직히 절실히 필요하거든요. 일본이 사실 기술은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일본업체들이 우리 걸 수입해 가는 게, 저희가 금액을 맞춰주고 밤샘작업을 해서 납기를 맞춰주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면서도 필리핀이나 중국, 이런 데보다 한국이 우수하니까. 그런데 그동안 엔이 계속 싸져도 값을 안 내리고 수익을 챙기던 일본 경쟁업체들이 점점 가격을 내릴 조짐을 보이고 있거든요. 일본업체들과 가격경쟁이 시작되면 한국업체들은 정말 당장 설 땅이 없어져요.]


일본의 엔저와 경기 부양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합니다. 저렇게 과도하게 양적완화를 하다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일단 일본의 경제지표들은 거의 전 부문에서 살아나고 있습니다. 제일 덜 살아난 게 내수라고 하는데, 일본 대기업들은 올해 거의 20년만에 가장 큰 폭의 임금인상도 단행합니다.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 지 아직 미지수지만, 아무튼 일본이 뭔가 달라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양적완화를 공격적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투자와 수출, 내수 활성화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잃어버린 20년'이 끝나가나 하는 얘기도 조금씩 나옵니다.

그동안 일본 시장은 우리에게도 점점 그 비중이 작아졌습니다. 미국, 중국, EU보다 비중이 더 작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동안 엔저의 영향이 일본과의 교역에 국한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엔이 떨어져도 일본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가격을 낮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엔저 기조가 시작된 지난 3년 동안, 일본 기업들은 수출 전선에서 가격을 낮추는 대신 수익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1달러가 1엔쯤 하다가 2엔으로 뛰었다고 쳐 보겠습니다. 미국에서 팔던 1달러짜리 물건을 계속 1달러에 팔 경우, 일본으로 전엔 1엔을 가져가던 걸 2엔을 가져가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일본 기업들이 그런 식으로 수익성을 높이면서 투자와 마케팅에 쓸 수 있는 실탄을 장전해 온 시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일본 외의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과 가격경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 EU 시장 등에서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 확대폭은 일본 업체들보다 더 컸습니다.

문제는 일본 기업들이 이제 실탄 장전을 어느 정도 해놓고, 가격 경쟁에 들어가 시장 점유율 확대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1달러로 팔기를 그만두고 0.85달러로만 내려도, 비슷한 물건을 0.9달러에 팔아온 우리 업체들에겐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는 거죠. 일본 시장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싸워야 하는 겁니다.

참 많은 말들이 쏟아지고 있는 우리 경제정책에 대해 여기서 한 마디 더 보태지는 않겠습니다. 우리와 일본의 경우가 똑같다고 보긴 어렵기도 합니다. (엔저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여기선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도 정말 어려운 상황이고, 일본이 그런 우리에게 또 하나의 위협으로 점점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이 세계시장에서 점점 '전보다는 덜 보이는' 플레이어로 작아지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현장의 많은 분들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 모두, 일본이 무서워지고 있는 건 단지 엔이 계속 싸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우리 정부가 느끼는 위기감은 아직 현실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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