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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전 옆에서 못 살겠다" 길천마을 한 달째 시위



"세계 어디에도 원전이 이렇게 마을과 가까운 곳은 없습니다."

오늘(30일) 오전 8시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발전소 입구 도로.

주민 100여 명이 인도에서 장송곡을 틀어놓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라고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원자력발전소 앞 길천마을 주민으로 '원전 때문에 이곳에서 더는 살 수 없다'며 집단이주를 요구했습니다.

거리로 나선 지 벌써 한 달째.

고리원자력본부 담벼락을 사이에 둔 길천마을에는 허름한 슬레이트집도 있고 현대식 원룸 건물과 상가건물도 들어서 있습니다.

21만㎡ 면적의 길천마을에는 지난 3월 기준으로 856가구 1천673명이 살고 있습니다.

길천마을 이주 요구는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동안 한국수력원자력과 주민이 집단이주 문제를 놓고 협의를 벌였으나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원전과 인접한 주민 일부는 마을을 떠났습니다.

길천마을에서 다시 집단 이주를 요구한 것은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계기가 됐습니다.

2011년 7월 주민대표, 고리원자력본부, 기장군 등 3자가 마을 이주와 관련한 용역을 전문기관에 의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용역 의뢰를 받은 부산대 산학협력단은 2013년 9월 '집단이주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최종 용역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고리원자력본부는 객관적인 주민 피해 내용과 원전·이주사업 간 인과관계 등이 용역에 반영되지 않았고 주민 다수가 이주를 원한다는 설문조사를 반영한 용역결과가 객관성을 잃었다며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양측 협상이 평행선을 달린 끝에 길천마을 주민은 지난달 30일부터 거리로 나왔습니다.

김명복(55) 마을 이장은 "고리원전이 생기면서 주민 논밭을 강제수용하고 재산권과 생계 기반을 박탈했다"며 "일본 원전사고 이후에는 땅값도 하락해 매매도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씨는 "정부와 한수원이 집단이주를 약속해놓고 지금 와서 책임지지 않아 거리로 나왔다"며 "주민이 최소한의 안전구역 밖에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집단이주 사업을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박갑용 고리원전안전협의회 위원은 "정부와 한수원이 법령이 없어 집단이주를 못해 준다는 것은 직무유기다"며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커진 만큼 이제는 정부가 국민 안전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원전 주변에 안전구역을 설정하고 주민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현행법과 제도에서는 길천마을 전체를 이주하는 사업을 실현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집단이주는 장기과제로 해결하는 대신 길천마을의 발전방안을 논의해보자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한수원은 그동안 길천마을 발전을 위해 많은 지원을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수원은 "집단이주를 위해서는 이주사업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객관적인 피해 사실과 사업의 당위성이 제시돼야 한다"며 "(고리원자력본부, 주민 대표, 기장군 등) 3자가 협의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마을발전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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