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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5천리 장성'을 쌓는 나라

[월드리포트] '5천리 장성'을 쌓는 나라
우크라이나가 거대한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동부 지역에 철조망을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50km 정도 철조망 공사가 이뤄졌다. 철조망뿐 아니라 감시탑, 탱크 함정도 만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의 장갑차를 숨길 시설도 건설하고 있다. 이웃 나라 러시아를 겨냥한 조치다. 중국의 만리장성에 빗대 ‘우크라이나 장성’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두 나라 사이 국경선이 2,300km이니, 완공되면 5천리 장성쯤은 된다.  
          
옛 소련이 붕괴한 뒤 두 나라 사이에 국경선이 그어졌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국경선은 큰 의미가 없었다.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러시아가 국경을 넘어 친 러시아 반군에 병력과 장비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러시아가 두렵고, 자유로운 국경 통행이 겁난다.

또 키예프에 있는 중앙정부는 국경 통제를 위해 물리적 장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야체뉵 우크라이나 총리는 장벽 건설에 4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비용은 5억 2천만 달러(5천554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그래서 장벽 건설에 유럽연합의 동의와 재정 지원을 받고 싶어한다. 야체뉵 총리는 “장벽은 유럽의 동부 국경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러시아 봉쇄에 유럽이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으로 들린다.
[월드리포터] 철조
장벽을 쌓고 있는 하리코프 지역의 여론은 엇갈린다. 민족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친 키예프 쪽 주민들은 장벽이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 장치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러시아계는 장벽 건설에 회의적이다. 하리코프에는 140만 명이 사는데,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로 한 시간이면 러시아 국경에 닿는다. 러시아 땅에도 친인척이 살고 있어서 평소에도 왕래가 잦다.

러시아계 주민들은 장벽 건설은 돈 낭비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지역 주민인 마랴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침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장벽이 무슨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러시아계 주민들은 경제 위기가 지속되면서 키예프 중앙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 러시아와 친했다 쫓겨난 야누코비치 대통령 시절이 더 좋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럽을 선택한 중앙정부가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면, 예전처럼 그럭저럭 살았던 때가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장벽은 세워지고 나면 시각적으로 상징성이 크다. 정치인에게는 국가 안보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바라는 게 그런 정치적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벽은 세우는 게 능사가 아니라 유지할 힘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장벽은 이쪽과 저쪽이 강력한 통제력을 갖고 있을 때 유지된다. 베를린 장벽이 버티고 있던 시절엔 동서독이 팽팽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자 베를린 장벽은 자연스럽게 붕괴했다. 유럽연합이 도와주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가 장벽 저편에 있는 러시아에 맞설 능력이 있다는 보는 사람은 없다. 우크라이나는 겨울 난방에 필수인 가스대금도 러시아에 치르기 어려울 정도로 나라 살림이 어렵다. 남의 나라 얘기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보태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정치인의 생존 비법은 어쩜 이리 비슷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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