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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은 검찰을 '정치 검찰'로 만들려 하나?

[취재파일] 대통령은 검찰을 '정치 검찰'로 만들려 하나?
● 검찰이 본래 정치적인가? '정치'가 검찰을 정치적으로 만드나?

검찰을 출입하면서 고민하게 되는 질문 중 하나는, "검찰이 본래 정치적인가? 아니면 '정치'가 검찰을 '정치 검찰'로 만드는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기소독점권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검찰이 무엇을 수사하고 누구를 기소할지를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검찰은 본래적으로 정치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검찰로 하여금 특정한 대상을 수사하고 기소하라고 지시 혹은 요구하는 '정치'의 작용 때문에 검찰이 더 정치적으로, 이른바 '정치 검찰'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후자의 경향을 가속하는 일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여의도에서 여야 정치권이 말싸움을 벌이다가 갈등이 격화하면 해당 사안을 무시로 서초동 검찰청사로 던져버리곤 합니다. 지난 대선 당시 NLL 대화록 유출 사건이 그러했고, 지난해 말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둘러싼 논란 역시도 검찰로 던져졌습니다. 정당 내 분란부터 정치인들을 둘러싼 명예훼손 사건까지, 어느새 검찰이 '정치의 해우소'가 돼 버린 것 같습니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하고 있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도 넓게 보면 이런 범주에 들어가지 않나 싶습니다. 리스트 사건 자체가 검찰 수사를 받던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불거진 것이긴 하지만, 엄청난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되면서 외부에서 검찰로 또다시 공이 떠넘겨진 셈이니 말입니다.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즉각적인 검찰 수사를 촉구했고,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은밀한 돈거래 관행 등을 정치 개혁 차원에서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 여야 모두의 과거 정치 자금까지 수사하라고 '판'을 키웠습니다. 검찰이 속한 행정부의 수반이 누구를, 무엇을 수사하라는 '수사 가이드라인'을 지시한 셈입니다. 이러면서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사실상 '정치 수사'가 됐습니다.

지난 9일 성 전 회장이 숨진 뒤 검찰 특별수사팀이 구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검찰 내부에서는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 대한 수사에 회의적인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본디 진행하던 자원개발 비리와 직결된 내용도 아닐뿐더러, 돈을 줬다는 사람은 숨지고, 남은 '증거'라고는 55글자짜리 메모와 경향신문과의 48분짜리 인터뷰 내용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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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수사'된 성완종 리스트 수사…그러나 아직 지지부진

그럼에도 다시 공을 떠안은 검찰은 지난 12일 전격적으로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와 인터뷰 외에, 정치인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물적 증거와 진술 증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줬다는 사람이 숨진 상황에서 수사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모양새입니다. 경남기업과 성 전 회장 관련 인물들의 집을 뒤지고 또 뒤져도, 성 전 회장 측근들을 부르고 또 불러도, 아직까지 의미있는 주요 증거를 확보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수사팀 관계자는 "증거를 아직 찾지 못했다"면서, "귀인(貴人)이 나타나 도움을 주기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해 말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심지어는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제보가 있으면 꼭 좀 알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할 정도입니다. 검찰 안팎에선, 성 전 회장 메모에 적힌 8명을 넘어 여야 정치인들의 과거 정치자금까지 수사가 확장되기는커녕, 그나마 돈을 줬다는 구체적인 시점과 장소, 또는 전달자가 특정된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만 기소할 수 있어도 검찰로선 '다행'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직 그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검찰에게, 어제 또다시 엄청난 무게의 부담 하나가 더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 의혹까지 밝히라고 사실상 또 하나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린 겁니다. 혹자는 대통령이 "고 성완종 씨의 연이은 사면에 대해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제도적으로 고쳐져야 한다"고만 했지,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만, 행정부의 수반이 "진실을 밝히라"고 한 말을 검찰이 무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성완종 전 회장 측

● 검찰이 특별사면 수사하면? 문재인 대표를 바로 겨눌 수밖에 없어

그런데, 성완종 리스트 수사도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2005년과 2007년에 있었던 특별사면 건까지 수사하라고 하니, 검찰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일 겁니다. 게다가 어제 대통령의 메시지는 사실상 야당을 정조준하라는 말이어서, 검찰은 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성 전 회장의 두 차례 특별사면 의혹에 적용할 수 있는 법리를 조금만 살펴보면, 대통령의 메시지는 사실상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쪽을 수사하라는 이야기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특별사면 과정의 실체가 아직 불분명하지만, 검찰이 수사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돈'이 오간 사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또 만일 돈이 오간 단서가 있다고 해도, 공소시효 문제 때문에 지금은 대부분 경우 수사와 처벌이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특별사면 의혹에 적용 가능한 법조항은 뇌물죄나 알선수뢰죄, 알선수재죄, 직권남용죄 등을 우선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당 죄목의 공소시효가 대부분 5년이어서, 2005년 특별사면은 당시에 어떠한 일이 있었더라도 수사와 처벌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2007년 두 번째 특별사면도 한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설령 무슨 비리가 있었다 하더라도, 검찰이 처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알기 쉽게 간단한 질의 응답식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Q : 만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나 참여정부 민정라인에서 성완종 회장을 특별사면 명단에 추가하라고 법무부 쪽에 압력을 넣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 수사와 처벌이 가능한가?

A : 특별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다. 법무부는 대통령의 결정에 필요한 업무를 지시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다. 법무부에 특정 인사 사면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해서 처벌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만일 대통령 또는 청와대에서 법무부 쪽에 부당한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적용을 검토해볼 수는 있겠지만, 이 죄목은 공소시효가 5년이라, 현 시점에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Q : 만일, 성 전 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 쪽 인사들에게 돈을 건네고 사면 로비를 했다면?

A : 뇌물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받을 때 성립하는데,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 있던 인사들은 특별사면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뇌물죄 적용이 어렵다. 다만 이들이 당시 참여정부 청와대에 사면을 부탁해 준다면서 돈을 받았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한데, 이 죄목도 공소시효가 5년이어서 지금은 혐의가 확인된다고 해도 처벌이 불가능하다.

Q : 만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성 전 회장의 사면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면?

A : 해당 인사가 특별사면 직무와 직접 관련된 공무원이 아니라면, 역시 알선수재 혐의 적용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역시 공소시효 5년이 지난 것이다.

Q : 그럼 어떤 경우에 처벌이 가능한 건가?

A : 역시 가정이지만, 당시 특별사면 직무와 관련이 있던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이었던 전해철, 이호철 전 수석, 법무비서관이던 박성수 전 비서관 등이 특별사면에 대한 '대가'로 성 전 회장으로부터 3천만원 이상의 돈을 받았다고 한다면, 이 경우는 처벌을 검토해볼 수 있다. 형법상 뇌물죄는 공소시효가 5년이지만, 액수가 3천만원이 넘으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적용을 받아서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난다.

결국 2007년 특별사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전해철 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이호철 씨, 또 법무비서관이었던 박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법률지원단장 등 특별사면 직무를 직접 담당했던 인사들이 성 전 회장에게서 3천만 원 이상의 뇌물을 '사면을 대가로' 받았을 때만 검찰 수사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즉, "사면에 대해 진실을 밝히라"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법리적으로 따져보면, 사실상 현재 야당 대표를 축으로 하는 이른바 친노 인사들을 검찰이 빨리 수사하라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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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사면 수사하면, '정치 검찰' 논란 불가피"

그래서 한 부장급 검사는 "검찰이 특별사면을 수사하겠다고 받으면 큰일 난다. 정치의 격랑 속으로 검찰 스스로 눈 가리고 들어가는 격이 될 것이다. 도대체 특별사면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인지 없었다는 것인지, 만일 문제가 있었다면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청탁했는지에 대해 지금은 아무 것도 밝혀진 게 없는 것 아닌가? 검찰은 범죄 혐의를 보고 수사를 하는 것인데, 돈이 오갔다는 어떠한 정황과 단서도 없이 여당의 정치 공세 논리와 그에 따른 대통령의 지시만 따라서 어떻게 야당 대표를 수사한단 말인가? 현재 상황에서 특별사면 과정을 검찰이 수사한다면, 아마도 '정권의 X', '정치 검찰'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또 다른 검사는 "사면권은 법치주의의 예외로, 대통령에게 부여한 고유 권한이자 통치행위이다. 그래서 사면할 때 보면,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재계, 노동계, 시민사회 등 각계 각층의 요구를 들어서 정무적으로 결정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만일 이 사면 과정을 검찰이 수사하게 되면 그것이 과연 이번 한번 뿐으로 그치게 될까? 현 대통령이든 미래 대통령이든 사면을 했는데, 반대당 쪽에서 '사면 과정에 의혹이 있다'라고 주장하면, 한 번 수사했던 전례가 있는 검찰이 어떻게 수사를 못하겠다고 버티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모든 사면 과정을 검찰이 잠재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대통령에게 헌법상 사면권을 부여한 취지와 어긋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누가 검찰을 '정치 검찰'로 만드는가?

이런 검찰 내부의 깊은 고민은 불러온 건,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일 겁니다. 이젠 검찰을 검찰답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검찰이 모든 의혹을 해명해줄 수 있는 '만능 해결사'라는 생각은 바꿔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검찰 관계자의 말마따나, 검찰은 범죄 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하는 기관이지, 정치권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골치 아픈 논란들을 대신 떠맡아 처리해주는 '해우소'는 아닐 겁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들을 검찰로 떠넘겼던 관행들이 오히려 검찰을 '괴물'로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이 본래적으로 정치적인 것은 맞지만, 그런 검찰을 그야말로 '정치 검찰'로 만드는 건 역설적으로 대통령과 정치권이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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