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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석연치 않은 영장 기각…검찰 '부들부들'

[취재파일] 석연치 않은 영장 기각…검찰 '부들부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혐의는 회삿돈 200억 원을 횡령했다는 겁니다. 해외에서 중간재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대금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방식으로 만든 거액의 비자금을 빼돌렸다는 것입니다.

'원가 부풀리기'는 기업비리의 전형적인 형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르고 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백번 양보하면 기업들이 비상금을 만들기 위해 관행적으로 지금껏 해왔던 방식이죠. 늘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방식은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장 회장 본인도 검찰에서 대부분 혐의를 시인했다고 합니다.

관심 가는 혐의가 하나 있습니다. '도박'을 벌였다는 건데요, 도박의 천국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호텔에서 판돈 86억 원을 걸고 도박을 한 혐의입니다. 도박장에 가면 보통 보증금을 걸어놓는데 한 번에 미화로 50만 달러에서 많게는 100만 달러씩을 넣었다고 합니다.

한두 번 간 게 아니라 여러 차례 도박장을 갔던 모양입니다. 도박 비용은 동국제강 미국 법인이 마련한 것으로 혐의가 적시돼 있습니다. 동국인터내셔널 계좌로 빼돌린 회삿돈으로 판돈의 절반을 충당했다는 게 구속영장의 취지입니다. 장 회장은 지난 1990년에는 마카오에서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법조계 안팎에서 재벌계의 '타짜'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도박을 해서 돈을 땄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수출 말고도 도박으로 외화를 벌었으면 애국자 아니냐,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지나친 처사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법원이 외화를 벌어온 장 회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장 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습니다. 구속이 단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3심까지 이어질 재판을 앞두고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편의를 봐주려는 측면도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구속영장은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법치실현을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벌'의 1차 관문입니다.

피의자가 구속 상태냐 불구속 상태냐에 따라 피의자의 진술 태도가 달라져 수사의 성과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구속’ 여부를 이른바 '되는 수사'와 '실패한 수사'를 가늠하는 1차적인 척도로 삼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구속사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주거가 일정하지 않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경우, 또는 도주할 우려가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안이 중대할 경우'도 법원이 구속 사유에 포함시키는 추세입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금품 로비 의혹 수사 일환으로 검찰이 성 전 회장의 비서진들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모두 발부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말 그대로 대통령과 여론이 모두 주목하고 있는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검찰 안팎에서 장 회장의 구속을 의심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장 회장이 횡령하고 뒷돈으로 챙기고 도박한 돈의 액수가 검찰이 밝혀낸 것만 380억 원에 달합니다. 장 회장도 검찰 조사에서 잘못을 모두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80억 원은 로또 1등 당첨금액에 30배 가까운 돈입니다. 로또 당첨 확률이 연속해서 30번이 나올 확률, 상상해 보셨습니까? 일반 회사원들은 꿈도 못 꿀 돈입니다. 영장을 기각한 김도형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기각 사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일부 범죄혐의에 관한 소명 정도, 현재까지의 수사경과 등에 비추어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38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빼돌리거나 도박을 했다면 법원에서도 실형을 선고하는 게 상식인데 구속사유는 안 된다는 게 잘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법원의 판단이 개인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아 취재 한번 해봤습니다.

동국제강 장세주 회
● 영장실질심사 5시간 전에 105억 무통장입금…속내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피의자의 구속여부를 결정하는 영장실질심사 5시간 전에 105억 원을 법인계좌에 입금했습니다. 법원이 공개하지 않았던 구속영장 기각 사유가 여기 있었던 셈입니다. 횡령액의 일부를 변제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법원의 판단이 그럴싸하긴 한데 여전히 석연치는 않습니다. 장 회장은 105억 원을 무통장 입금했습니다.

의혹은 '무통장 입금'에 있습니다. 105억 원이라는 돈을 하룻밤도 안 돼 도대체 어디서 준비한 것일까요? 떳떳하게 만든 돈이라면 왜 무통장 입금을 한 것일까요? 은행에서 대출을 받던 자산을 매각해서 돈을 만들었다면 본인 명의의 계좌로 입금하면 될 텐데 왜 무통장 입금이라는 은밀한(?) 방법을 쓴 것일까요?

돈의 출처에 대한 장 회장의 해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떳떳한 돈이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내역을 공개하는 게 낫습니다. 의혹은 의혹을 낳을 뿐입니다. 혹시 검찰이 밝혀내지 못한 또 다른 비자금으로 횡령액을 메운 게 아니냐는 의혹을 검찰이 갖는다면 장 회장은 더욱 골치 아파질 겁니다.

장 회장이 입금한 시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장실질심사가 이뤄지기 불과 5시간 전이었습니다. 105억 원이라는 거금이었습니다. 수년 동안 회사에서 조금씩 빼돌린 것으로 조사된 순수 횡령액이 200억 원 입니다. 아무리 재벌이라도 100억 원대의 돈을 급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하룻밤 사이에 만들었을까요?

갚을 돈이 있었다면 횡령을 하지 말든가, 변제 의사가 있었다면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횡령액을 갚았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검찰도 구속영장을 청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본인의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영장심사를 앞두고 100억 원이 넘는 돈을 한 번에 갚았다?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밖에는 해석되지 않습니다.

'횡령·도박' 장세

● '이광범'과 '김도형' 사법부의 카르텔 의혹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습니다. 법조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관예우 논란도 불거지지 않았습니까? 판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검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수사나 재판 단계에서 편의를 봐주는 법조계의 오랜 문화에 대한변호사협회가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사실관계만 살펴보겠습니다. 장 회장의 변호인은 이광범 변호사와 판사 출신인 이 모 변호사입니다. 이광범 변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을 담당한 특별검사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으로 이른바 잘나가는 판사 출신 변호사입니다. 이 모 변호사도 법원행정처 출신으로 이른바 그 기수에서는 잘나가는 엘리트 판사 출신이죠.

그런데 주목할 부분은 김도형 영장전담판사와의 관계입니다. '이광범-이 모-김도형' 이 세 분은 2006년 대법원 사법정책실에서 함께 근무했습니다. 특히 이광범 변호사는 당시 사법정책실장이었습니다. 판사가 아무리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사법정책 책임자와 실무자라는 상하관계, 그리고 조직의 역학관계를 미루어 봤을 때 본인이 믿어달라고 해도 주변에서는 그 판사가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을 내릴 거라고 믿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장 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유가 석연치 않은데 알고 보니 영장 담당 판사와 장 회장의 변호인이 대법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관계였더라는 겁니다. 

팩트를 어쭙잖게 연결해서 공연히 있지도 않은 의혹을 부추긴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김도형 판사는 소신껏 내린 결정으로 논란에 휩싸이는 게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례들이 계속해서 반복됐던 게 지금의 전관예우라는 '괴물'을 만든 것 아니겠습니까? 어느 판사와 어느 변호사가 잘 아는 사이라더라, 어느 변호사가 어느 검사의 부장검사 출신이라더라는 식의 인맥 관계가 사건을 수임하는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라는 게 법조계의 공공연한 비밀 아닙니까? 지금 그 적폐를 깨자는 변협의 움직임 때문에 '전관'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오해받을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일반인들은 만져보지도 못할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의 사주입니다. 기업을 매개로 개인적으로 수백억을 착복한 '재벌' 범죄 혐의입니다. 무통장 입금으로, 그것도 영장실질심사 5시간 전에 일부를 메웠고 돈의 출처도 불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횡령 사건에서 변제할 의지가 있어도 갚을 돈이 없는 피의자는 구속하실 건가요? 법원이 명확한 입장을 밝혀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해받을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국민들이 사법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 법원과 변호인이 장 회장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입장을 보내와 반론 차원에서 실어드립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변호인의 과거 근무관계 역시 영장 발부 여부에 일절 고려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형사소송법이 정한 구속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엄정한 판단을 내린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기 때문에 피의자의 구속이 필요한가를 신중하게 판단했다는 취지입니다.

이광범 변호사는 장 회장이 영장실질심사 직전 입금한 105억 원 실체와 관련해 자금의 출처를 알지만 답변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문제 있는 돈은 아닐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김도형 영장전담판사와의 관계로 인해 제기되는 이른바 '전관예우' 논란에 대해 이런 일로 판사가 소신껏 판결을 하지 못한다면 판사로서 일할 수 없다며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사법부의 책임으로 매도하는 안이한 검찰의 인식이 문제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영장전담판사와 접촉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화 가까이에 가본 적도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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