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 순자, 미자처럼 어느 여성의 이름이 아니라, '장애자'를 줄인 일종의 은어다. 초등학생들이 많이 썼던 말인데 꼭 장애인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말이 어눌하거나 신체적인 약점이 있거나 하는 식으로 놀리거나 공격할 구석이 있는 아이를 욕하듯 표현한 말이 '애자'였다. 아이들이 흔히 쓰는 '애자'라는 표현의 속뜻을 알고 나서 말 그대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요즘 초등생들도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주변의 대학생에게 물어보니 자신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썼다고 한다.)
2007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고 1년이 지나 2008년 4월부터 시행됐다. 이 법에서는 32조 <괴롭힘 등의 금지>에서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학교, 시설,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집단따돌림을 가하거나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 '장애인 비하 용어' 퇴출 시작, 그런데…
법 시행으로부터도 6년이 지나 '장애인 비하 용어'를 퇴출시키기 위한 당국의 조치가 시작됐다. 법제처는 2014년 장애인단체와 함께 선정한 장애인 비하 법령용어 9개를 사용하고 있는 법령을 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용어는 아래와 같다.
● 조사를 어떻게 했기에…
그런데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법률만 놓고 추가 조사를 해보니, 이런 용어를 쓰고 있는 법률이 6건 더 나왔다.
국민투표법은 59조 기표절차에서 " 맹인 기타 신체의 불구로 인해 자신이 기표를 할 수 없는 투표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정한 사람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원조하게 할 수 있다."라 하고 있고 형법은 11조 농아자에서 " 농아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또 258조 중상해, 존속중상해에서 "신체의 상해로 인하여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 형사소송법,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군형법까지 6개 법률이다.
헌법도 있었다. 헌법은 제34조에서 "신체 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에서 '장애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를 바꾸기 위한 법 개정안은 지난 3월에야 국회에 제출됐다. 큰 이견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우선 순위에서는 크게 밀려 언제 개정될지 기약이 없다. (헌법을 바꾸기는 훨씬 더 어려울 것 같다.)
● 굳이 이런 표현까지 바꿔야 하나?…"법부터 바꿔야"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 일반의 정서와는 조금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굳이 이런 표현까지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언어는 시간이 지나고 사회가 바뀌면서 함께 변한다. 과거에 문제 없던 표현이라고 해서 지금도 그렇지는 않다는 말이다. 맞춤법이 그렇듯이.
'장애자'라는 말 역시 1980년대까지는 공식적으로 쓰던 말이나,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 하여 1989년 법을 개정해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장애인복지법'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그때부터 '장애인'이라고 정의하게 됐다.
처음에 언급했던 '애자', 아이들이 '애자'라는 말을 그냥 썼을 것 같진 않다. 장애인에 대해 깔보고 비하하고 공격하고 따돌리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의 공격적이고 무례한 언어 표현에까지 영향을 줬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왕따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언중에게 남아있는 습관적인 표현까지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더라도, 법률이나 시행령 같은 이 사회의 공식 용어에서는, 그리고 바른 말 고운 말을 써야 하는 방송 등 언론에서는 개선하는 게 맞다고 본다. 어떤 법률은 개선하고 어떤 법률은 빠뜨리는 그런 허술함도 없어야겠다.
그래야 '애자' 같은 말의 사용도 줄어들 것 같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 장애에 관한 잘못 쓰이는 관용구와 대안
장애인 단체들은 또 이외에도 장애에 관한 잘못된 관용구와 그 대안에 대해서도 제안하고 있다. 참고를 위해 옮겨둔다.
장애를 앓고 있는 -> 장애를 갖고 있는
: 장애는 질환이 아니라고 국제적으로 합의됨.
꿀먹은 벙어리 -> 말문이 막힌, 말을 못하는
눈먼 돈 -> 관리 안되는 돈
벙어리 냉가슴 앓다 -> 말도 못하고 혼자서 가슴만 답답하다
외눈박이의 시각 -> 왜곡된 시각
외눈박이 방송 -> 편파 방송
절름발이 인재, 절름발이 지성인 -> 부족한 점이 있는 인재, 결격사유가 많은 인재
너 장애인이냐? -> 똑바로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일하지 못해?
눈깔이 멀었냐? -> 똑바로 봐라, 제대로 판단해라, 그것도 못 보냐?
병신 육갑을 떨다 -> 어리숙하게 행동하지 마라, 상황판단을 잘 해라
지랄한다 -> 함부로 행동하지 마라, 가볍게 굴지마라, 생떼 쓰지 마라
장애에도 불구하고 -> 사회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불구가 되다 -> 장애를 갖게 되다
정상인 못지 않게 -> 일반인 못지 않게, 비장애인 못지 않게
눈 뜬 장님 -> 보고도 판단을 못하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 전체를 모르면서 어리석은 판단
장애를 극복하고 -> 장애를 잘 받아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