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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라인 - 배재학의 0시 인터뷰] 목숨 걸고 구호임무 완수…'코리안 에볼라 파이터'

네, 치명적인 바이러스죠. '에볼라'가 창궐하던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그곳에서 의연히 환자를 돌본 용감한 대원들이 있습니다.

군의관 고광범 대위, 또 간호장교 김영아 대위, 이 자리 함께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두 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먼저 고 대위는 최근에 입국하셨죠?

[고광범 대위 : 네, 저는 3월 23일 날 입국을 했습니다.]

예, 기간은 어느 정도 계신 거예요?

[고광범 대위 : 시에라리온에서는 5주를 있었고, 시에라리온 가기 전에 영국에서 1주간 교육이 있어가지고, 총 6주간 이제 머물다가 온 것입니다.]

김영아 대위는 그것보다 좀 앞에 갔고요?

[김영아 대위 : 네 저는 2진으로.]

예, 근데 귀국하자마자 바로 가족들 만나고 그러는 거 아니라면서요?

[김영아 대위 : 네, 그렇습니다. 3주간 격리기간 거치고 그 뒤에 가족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참 창궐하던 시에라리온 그 지역에 가는 거, 참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고 대위는 어땠습니까?

[고광범 대위 : 에볼라 바이러스가 점점 퍼져가지고 이게 미국으로도 가고 영국으로도 가고 해서. 아 막연히 이제 우리나라에도 곧 오겠구나, 그러면은 내 가족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뭔가 조치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에 정부에서 파견대를 보내겠다, 해가지고. 그러면 내가 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마땅히 또 해야 된다, 라는 생각에서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아, 그렇군요. 김 대위는 어떻게 자원하게 되셨나요?

[김영아 대위 : 저는 그 전에 이라크 파병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경험이 저한테 어땠냐면 항상 저희 환자를 보다가 현지분들 돌보면서 아, 제가 여기서도 이렇게 많은 도움을 줄 수가 있구나, 나중에 이런 일이 생기면 또 한 번 더 지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 대위는 결혼도 한 지 얼마 안 됐고, 애기도 있다 그러는데 가실 때 유서라고 그러기는 좀 그렇고, 애기한테 남긴 글이 있던데. 갖고 오셨는데 정말 이때는 비장했을 것 같아요. 좀 한 구절 여기서 읽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고광범 대위 : 예. 건우야, 군인으로서 죽음의 위험이 있는 곳이라도 아빠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정이었어. 그래서 아빠는 의사로서 또 군인으로서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간 것이란다.]

네. 정말 이곳에서 읽게 돼서 정말 다행인데, 이거 쓰실 때는 비장했을 것 같아요. 어땠습니까?

[고광범 대위 : 애기가 그 당시 5개월이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잘못되면 아버지에 대한 어떤 기억도 없기 때문에 그래도 뭔가 아들한테 아빠의 존재에 대해서 좀 알려줘야겠다, 라는 생각에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네, 그렇군요. 도착한 건 몇 월이죠?

[김영아 대위 : 도착한 건 1월에.]

그때 처음 시에라리온 도착했을 때 그쪽 상황은 어땠나요?

[김영아 대위 : 거기 주민들, 현지인들조차도 이제 이게 위험한 건 알고 있고, 손 씻기나 아니면 감염 관리를 잘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괜찮았는데, 여전히 계속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저희가 환자를 보면서도 사망률이 되게 높았습니다. 높아서 현지 의료진들이랑 같이 일을 했는데 현지 의료진조차도 환자를 직접 볼 때 약간 두려움을 가지고 보는 게 있었습니다.]

고 대위는 어땠습니까? 거기 가서 정말 심각한 순간도 있고 그랬을 텐데 얘기 좀 해주시죠.

[고광범 대위 : 에볼라 환자들이 있는 곳을 저희가 '레드존'이라고 부르는데, 레드존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저희가 보호복이라고 우주복처럼 입는 게 있는데, 아무리 그걸 입더라도 결국 바깥과 날 경계 짓는 것은 특수한 비닐, 얇은 비닐 하나밖에 안 되거든요. 혹시 이게 구멍이 나거나 잘못되면 정말 감염될 수 있구나, 하는 그런 두려움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 5주 동안 현지에서 있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일은 뭔가요?

[고광범 대위 : 중환자실에 투석을 돌리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 투석을 돌리려면 필터도 필요하고, 수액도 있어야 되고 그런 제반장비들이 필요한데, 현재 시에라리온 전국에 하나도 없다고. 그래서 결국 그 환자는 48시간 정도 버티다가 사망을 했는데 그 동안 참 환자 옆에 있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고, 단지 그 환자 분이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난 것 때문에 최선의 치료를 못 받으니까. 그게 너무 참 안타깝고 해서 심적으로 참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그리고 김 대위님, 마지막으로 이라크도 갔다 오셨지만 시에라리온은 워낙 위험한 지역이고 전 세계적으로 모든 관심이 몰려 있는데. 그게 다녀오신 후에 느낌이 좀 다를 것 같아요. 어때요? 말씀 좀 해주시죠.

[김영아 대위 : 네, 그렇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되게 많이 생각을 하게 됐고, 현지 의료진 그리고 인터내셔날 국제 간호사들 같이 일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넓게 된 것 같고. 그전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국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제가 나가서 다른 일도 할 수 있겠구나, 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네, 정말 두 분 다 수고 많으셨고요. 앞으로도 멋진 의료활동 또 기대하겠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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