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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로 벌줄 수 없어"…한전비리 연루자 재판 판사의 고뇌

"추리로 벌줄 수 없어"…한전비리 연루자 재판 판사의 고뇌
"이곳은 추리가 아닌 증거에 의지해 재판하는 법정입니다."

한전 직원들에게 뒷돈을 준 혐의로 기소된 전기공사 업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의 고뇌에 찬 발언입니다.

광주지검이 한전 뇌물·입찰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를 수개월째 지속하면서 직원과 업자들 사이에 오간 뒷돈, 관련자 규모와 처벌 수위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장 먼저 기소된 전기공사 업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광주지법 형사 10단독 김승휘 판사는 오늘(15일) 제3자 뇌물교부 또는 제3자 뇌물취득 혐의로 기소된 전기공사 업자 4명 가운데 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나머지 1명에 대해서도 공소사실 일부만 유죄로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재판장인 김 판사는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엄벌을 요구한 동종 업자들의 탄원에 어긋난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김 판사는 선고 전 "선고 외 이야기를 하는 게 적절한지 고민했지만, 말씀 드리겠다"며 "피고인들과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구형(3명 집행유예·1명 실형)에 의구심을 품고 엄벌을 탄원했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15년 판사생활 동안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많은 탄원서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라고 밝힌 김 판사는 "그만큼 (부정·비리로 동종 업자들이 겪은) 고통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는 이어 "나도 법대에서 내려서는 순간 (탄원인들과) 같은 눈으로 사건을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법정 밖에서는 누구보다 열렬히 의견을 개진하는 편"이라며 피고인들의 행위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남겼습니다.

김 판사는 다만 "이곳은 추리가 아닌 증거에 의지해 재판하는 법정"이라며 "안타깝게도 탄원서를 제출한 취지에 들어맞는 증거가 보이지 않았다"며 "탄원에 어긋난 판결을 하게 돼 한없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습니다.

역설적으로 검찰이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공소사실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돼 검찰의 대응이 주목됩니다.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고 부정한 사람은 실패하는 풍토가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노력으로 정착됐으면 한다"는 바람으로 발언을 마친 김 판사는 '탄원 내용과 정반대의' 선고를 했습니다.

피고인들은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공사비용의 일정액을 모아 한전 직원들에게 건넨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법리적으로 제3자 뇌물취득 또는 교부죄의 주체인 제삼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항소할 것으로 예상돼 탄원인들이 반발한 구형, 공소사실의 입증 정도, 1심 재판장 고뇌의 결과 등에 대한 평가는 항소심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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