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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억의 벽, 기다림의 등대…팽목항 방파제는 지금

[취재파일] 기억의 벽, 기다림의 등대…팽목항 방파제는 지금
다시 찾은 팽목항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평온한 듯 보였지만, 팽목항에는 참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참사의 흔적을, 이제는 기억으로 새기기 위한 노력들이 응집된 공간이 팽목항 방파제가 된 듯 했습니다. 방파제 모습을 옮겨봅니다.

팽목항 방파제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는 노란 리본이 새겨진 빨간 등대가 가장 눈에 띕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초입에서부터 찬찬히 시선을 옮기다보면, '낚시 금지' 팻말이 보입니다. 이곳에서는, 낚시 금지 팻말도 그냥 흘려 볼 수 없습니다.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팽목항 방파제는 세월호 사고로 인해 희생된 분들을 위해 추모 행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는 낚시 행위를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팻말 옆으로는 바로 ‘기억의 벽’이 시작됩니다. '기억의 벽'. 벽이라고 해서 측면을 가득 채우는 넓은 면적의 벽을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벽은 일반적인 건물의 벽과 비교하면, ‘낮고 작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만큼은 어떤 벽보다도 넓고 높습니다. '기억의 벽'은 방파제길 왼쪽 난간 아래에 마련돼 있습니다. 알록달록 고운 색의 타일 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기억의 벽에 대한 설명으로 전국 26개 지역에서 모인 4656장의 마음들이 모여 기억의 벽을 완성하게 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팽목항을 찾은 방문객들은 이 기억의 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당시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실종자 가족들과 시민들이 쓴 타일 속 문장을 옮겨봅니다.

(뱀 그림과 함께) 뱀을 너무 좋아했던 나의 아들. 이제 그만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좋겠다.
영원히 사랑해- 아빠, 엄마, 동생

아들아, 사랑한다. 보고 싶다. 미치도록...

아빠의 심장 속에 깊이 새기고 엄마의 두 눈 속에 가득 담을 영원히 간직할 딸! 사랑한다. 보고 싶다.

“엄마, 저 없으면 어떡해요” 애써 태연한 목소리 그렇게 이별할 줄이야“

바닷물을 다 퍼내서라도 세월호를 어머니들 가슴에 띄우라 - 화수분 바가지

돌아오라, 돌아오라고 말만했어...정말 미안하구나. 정말...


몇 걸음 더 걷다보면, 세월호 모양을 한 조형 배, '기다림의 의자'라고 적혀 있는 벤치, 노란 리본 모양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보입니다. 조형물에는 간식, 초콜렛이며 과자, 음료수가 놓여있습니다. 희생자, 실종자들을 위한 것들인데, 이날은 비가 내려 초콜릿 상자에 빗물이 흥건했습니다. 간식 아래로는 가족을 돌려달라는 유족들의 울분섞인 외침이 고스란히 글로 남았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시선을 내려, 석조 조형물을 바라봅니다. 돌 위에는 한글 자음 3개씩 새겨져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무엇을 뜻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초성으로 새긴 것입니다. 실종자 ‘허다윤’양의 이름을 'ㅎㄷㅇ'으로 새기는 방식입니다. 다윤이 엄마는 다윤이 초성이 적힌 돌을 어루만지다, 오늘도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방파제 끝으로 이동하다 보면, ‘기다림의 등대’가 있습니다. 방파제 초입부터 3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노란 리본이 눈에 띄는 빨간 등대, 저희 뉴스에서도 여러 번 보여드렸기 때문에 많이들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등대에는 304개의 계란 모양 조명이 늘어져 있습니다. 304개는 희생자 숫자를 의미하고, 노란 계란은 어린 꿈나무를, 흰 계란은 성인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등대 앞에는 하늘나라 우체통이 설치됐습니다. 희생자들에게 적는 부칠 수 없는 편지들이 여기에 담깁니다. ‘기억하라 416‘ 글자가 새겨진 부표 모양의 구조물도 마련됐습니다.

난간을 돌아 나오다보면, 난간에 달린 종이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노란리본과 함께 난간 곳곳에 달린 이 종은 한 청년 단체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단 ‘기억의 종’입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바라본 팽목항 방파제에는 노란 리본, 노란 현수막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팽목항 방파제를 돌아 나오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9명을 다시 마주했습니다. 단원고 2학년 조은화, 허다윤양, 남현철, 박영인군, 단원고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일반인 권재근, 권혁규씨와 아들 혁규군, 이영숙씨. 이들 9명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곳곳에서 펄럭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파제 한쪽에서는 이들의 사진이 담긴 팻말을 들고, 고개를 숙인채 1인 시위를 이어가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어느새 1년이 흘렀습니다. 그날의 상처, 아픔이 온전히 실종자 가족들만의 몫으로 남아있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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