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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마취가스…잠자는 동안 지구는 뜨거워진다

[취재파일] 마취가스…잠자는 동안 지구는 뜨거워진다
데스플루레인(desflurane), 이소플루레인(isoflurane), 세보플루레인(sevoflurane). 병원이나 의학·제약 관련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람들이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다. 하지만 비록 이름은 모르고 있어도 효과를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은 많다. 들이마시면 10초도 채 안 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된다. 수술할 때 사용하는 흡입 마취가스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 수술실 곳곳에서 마취가스가 사용되고 있다. 환자 한 사람을 마취하는 데 많은 양의 가스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만큼 그 양은 무시할 수 없는 양이 될 수 있다. 특히 마취가스를 사용하면 그 마취가스가 인체 내에서 대사과정을 통해 다른 물질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거의 같은 양이 환자의 호흡을 통해 공기 중으로 그대로 배출된다. 수술시 사용하는 마취가스의 양 만큼 공기 중에 그대로 쌓이는 것이다.
 
문제는 흡입 마취가스가 매우 강력한 온실가스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미국과 노르웨이 공동연구팀은 공기 중으로 배출된 마취가스가 이산화탄소와 비교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계산했다(Ryan and Nielsen, 2010). 마취가스의 지구온난화지수(Global Warming Potential)를 계산한 것이다. 계산 결과 마취가스가 공기 중으로 배출돼 20년 동안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데스플루레인의 경우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보다 3,714배나 강력하고 이소플루레인은 이산화탄소의 1,401배, 세보플루레인은 이산화탄소보다 349배나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덴마크 공동연구팀은 흡입 마취가스가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을 100년으로 늘려 지구온난화지수를 다시 계산했다(Andersen et al., 2010). 계산 결과 데스플루레인의 지구온난화지수는 1,620, 이소플루레인의 지구온난화지수는 510, 세보플루레인의 지구온난화지수는 210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 중으로 배출된 마취가스가 100년 동안 지구를 뜨겁게 하는 정도는 같은 양의 이산탄소보다 200배에서 최고 1,600배나 더 강력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특히 평균적으로 1명을 마취하는데 사용하는 마취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이산화탄소 22kg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측면에서만 보면 환자 1명을 마취할 때마다 이산화탄소 22kg이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특히 전 세계에서 시행하고 있는 흡입 마취를 고려할 경우 마취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승용차 100만 대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지속적으로 돌아다는 것과 같다고 연구팀은 주장하고 있다.
 
한번 공기 중으로 배출된 마취가스가 공기 중에 머무는 기간이 긴 것도 문제다. 마취가스가 수술실 부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스위스 공동 연구팀이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도시지역뿐 아니라 수술실에서 멀리 떨어진 남극의 공기를 조사한 결과 남극에도 마취가스의 농도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사용한 마취가스가 수술실 부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구 전체로 퍼져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최근 미국 지구물리확회지에 실렸다(Vollmer et al., 2015).
 
논문에 따르면 2014년 현재 대기 중 흡입 마취가스의 지구 평균 농도는 데스플루레인의 경우 0.30ppt로 가장 높고 이어 세보플루레인이 0.13ppt, 이소플루레인은 0.097ppt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2014년 현재 공기 중에 있는 마취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할 경우 310만 톤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마취가스로 인해 31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에 추가로 배출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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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 마취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자 마취가스 관련 분야에서는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마취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아직 그 영향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고 계산 방법에 문제가 있고 심지어 거짓에 불과한 것으로 진짜 재앙은 이런 연구 결과가 환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서기도 했다(Mychaskiw II, 2012).

데스플루레인(desflurane), 이소플루레인(isoflurane), 세보플루레인(sevoflurane). 인류가 오랫동안 사용해 오고 있는 마취가스로 의학적으로 꼭 필요하고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마취가스가 지구 대기에 계속해서 쌓이고 있고 아직 크지는 않지만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앞으로 계속해서 마취가스 사용량이 늘어나고 사용한 마취가스가 모두 지구 대기에 그대로 쌓일 경우 마취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인류는 냉장고와 에어컨의 냉매로 사용하던 프레온가스와 같은 오존층 파괴 물질을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로 대체한 경험이 있다. 인류가 파괴되는 오존층을 살려냈듯이 흡입 마취가스 역시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나 물질은 없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구는 단지 이산화탄소 하나 때문에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온실가스의 종합적인 영향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참고문헌>
 
* Susan M. Ryan and Claus J. Nielsen, 2010: Global warming potential of inhaled anesthetics: application to clinical use. Anesth. Analg., 111(1), 92-98, DOI:10.1213/ANE.0b013e3181e058d7
 
* M. P. Sulbaek Andersen, S. P. Sander , O. J. Nielsen, D. S. Wagner, T. J. Sanford Jr and T. J. Wallington, 2010: Inhalation anaesthetics and climate change. British Journal of Anaesthesia, 105(6), 760-766, DOI:10.1093/bja/aeq259
 
* Martin K. Vollmer, Tae Siek Rhee, Matt Rigby, Doris Hofstetter, Matthias Hill, Fabian Schoenenberger, Stefan Reimann. 2015: Modern inhalation anesthetics: Potent greenhouse gases in the global atmosphere.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42 (5), DOI:10.1002/2014GL062785
 
* George Mychaskiw II, 2012: Anesthesia and global warming: the real hazards of theoretic science. Medical Gas Research, 2:7, DOI:10.1186/2045-9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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