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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연아는 돌연변이?…맞다 vs 아니다

[취재파일] 김연아는 돌연변이?…맞다 vs 아니다
박세리 선수는 1996년 19살의 나이에 한국 여자프로골프에 데뷔해 첫해부터 3주 연속 우승을 비롯해 4승이나 거둡니다. 쟁쟁한 선배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상금왕, 신인왕, 다승왕까지 석권하며 대형 스타의 탄생을 알립니다. 국내 무대가 좁아진 그녀는 1997년 미국에서 세계적 레슨코치인 데이비드 레드베터로부터 지도를 받습니다.

미 LPGA 데뷔 첫해인 1998년 메이저대회인 LPGA 챔피언십과 US오픈을 차례로 제패하며 ‘골프 여왕’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US오픈 연장전에서 보여준 이른바 ‘맨발의 투혼’은 당시 ‘IMF 사태’로 힘들어하던 국민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 장면을 TV로 지켜본 뒤 골프채를 잡기 시작한 어린이들이 ‘세리 키즈’입니다.

김연아 선수도 박세리와 행보가 비슷합니다. 박세리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지 꼭 10년 뒤인 2006년 11월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한국 피겨 사상 첫 시니어대회 우승을 차지합니다. 한 달 뒤에는 러시아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정상에 오르며 ‘피겨 여왕’을 향한 시동을 겁니다. 이듬해인 2007년에는 캐나다 토론토로 건너가 세계적 코치인 브라이언 오서로부터 지도를 받습니다. 김연아가 ‘피겨 요정’으로 혜성처럼 등장하자 너도나도 피겨를 배우겠다고 나선 어린이들이 ‘연아 키즈’입니다.        

 ‘세리 키즈’의 대표 주자는 1987~88년생인 박인비, 최나연, 신지애입니다. 이후 김효주, 김세영, 백규정 등 ‘리틀 세리 키즈’까지 등장하면서 박세리 이후에도 미국 LPGA무대를 사실상 한국 선수들이 석권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LPGA에서 우승을 너무 많이 하자 "LPGA가 한국 여자프로골프의 미국 지부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가 됐습니다.
[취재파일] 박소연
'세리 키즈'의 눈부신 활약상과 달리  ‘연아 키즈’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연아의 뒤를 이을 것으로 평가되던 선수들이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현재 ‘포스트 김연아’의 선두 주자로 불리는 박소연과 동갑내기 김해진도 세계 톱10 진입에 실패했고 그 뒤를 이어줄 최다빈, 안소현은 아직 시니어 무대에 진입이 안 된 상태입니다.

그럼 여자 골프는 되고 여자 피겨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종목 특성의 차이 때문일까요? 아니면 선수 저변과 훈련 지원 등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자연스레 나오는 게 이른바 ‘김연아 돌연변이론’입니다. 김연아가 돌연변이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국내 체육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돌연변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논리를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김연아가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인 것은 맞다. 하지만 돌연변이는 아니다. 김연아에게 이뤄졌던 국민적 관심과 각종 물질적 지원이 뒷받침되면 그녀에 버금가는 선수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현재 피겨 선수들은 전용 경기장이 없어 국가대표가 되기 전까지는 훈련을 주로 새벽이나 늦은 밤에 한다.

그리고 1년에 평균 5천만 원이나 드는 돈도 선수가 대부분 부담한다. 김연아처럼 세계적 코치의 지도를 외국에서 받는다면 그 비용은 수억 원이 된다. 이것을 개인이 부담할 수 있겠는가? 국가대표가 된 뒤에도 태릉빙상장을 쇼트트랙 선수들과 나눠 써야 한다. 그런데 쇼트트랙과 피겨는 얼음의 최적온도가 다르다. 태릉빙상장의 빙판 온도는 쇼트트랙에 적합한 영하 5-6도로 설정돼 있다. 국가대표들도 이런 상황에서 훈련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전문가들은 여자 골프와 피겨의 저변 차이를 거론합니다. “여자 골프의 경우 중-고등학교 아마추어 선수가 250명 정도이고, 프로선수도 500명에 이른다. 여자 피겨의 경우는 초등학교부터 성인선수까지 다 합쳐도 541명에 불과하다. 당연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들의 주장은 피겨가 골프만큼의 운동 환경과 저변을 갖춘다면 ‘제2의 김연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김연아가 한국 스포츠에는 다시 나오기 힘든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많습니다. 이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김연아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이던 10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환경이 열악했다. 피겨를 하는 선수도 그리 많지 않았고 국민의 관심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김연아 개인의 재능과 노력으로 극복한 것이다. 지금 다른 선수들에게 비슷한 후원을 해주고 세계적 코치의 지도를 받게 해주면 성적은 분명히 향상될 것이다. 하지만 김연아 레벨까지 가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김연아 캡쳐_640
쉽게 말하면 김연아는 한국 피겨 입장에서는 일종의 ‘로또 복권 당첨’과 같다는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려면 복권을 사야 하는 노력은 기울여야 되지만 당첨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 피겨가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김연아 같은 선수를 바로 배출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김연아가 정말 ‘돌연변이’인지 아닌지를 단정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여자 피겨는 종목 특성상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인도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아사다 마오와 안도 미키 이후에도 뛰어난 선수들이 현재 계속 배출되고 있습니다. 한국 피겨도 저변을 넓히고 어린 유망주를 조기에 발굴하고 이들이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면 세계적인 수준에 오를 수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은 스포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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