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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수 받은 '승민본색'…새누리당의 본색 될 수 있을까

[취재파일] 박수 받은 '승민본색'…새누리당의 본색 될 수 있을까
● "너나 잘해" 막말이 난무하던 교섭단체 대표연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대표급 의원들이 하는 연설이라는 형식에 비해서, 기자들에게 인기 있는 행사는 아니었습니다. 연설 시간은 40분정도로 꽤 긴데, 뽑아 쓸 만한 메시지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설이 끝나면 상대당의 원색적인 비판이 바로 나오기 때문에, 뻔 한 틀로 그저 그런 메시지를 담아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미만 없으면 다행인데 가끔 싸움이 나기도 합니다. 1년 전, 안철수 새정치연합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면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기초공천 폐지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한 것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왜 원내대표가 사과 하냐며, "그게 충정이냐, 월권이냐"고 비꼬았습니다. 그러자 최경환 원내대표가 참지 못하고 "너나 잘해"라고 막말을 해버렸습니다. 국회 분위기는 엉망이 됐고, 여야는 서로에 비난전을 벌이며 진흙탕을 뒹굴었습니다. 이럴 때면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여야가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또 다른 정쟁을 부르는 싸움장에 불과했습니다.

● 세월호 실종자 호명 '파격'…"노무현 전 대통령 높이 평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파격으로 시작했습니다. 국회 본희의장 방청석에는 세월호 희생자 유족 30여 명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세월호 실종자 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시작했습니다. 분명 기존 교섭단체 대표 연설과는 달랐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기술적 검토를 마무리 짓고, 가능하다면 온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하자고 주장하며 거침없이 치고 나갔습니다. 이를 통해 마지막 한사람까지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을 지키고, 가족들의 한을 풀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인양비용에 대해서도 정부가 국민의 이해를 구하면 동의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부 가족들이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눈에 띄는 대목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통찰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습니다.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에 여와 야가 따로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를 위해 새누리당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야당 의원들도 호감을 갖고 연설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공무원연금 개혁하자"

 정치권에서 진영 논리는 손쉬운 공격 무기입니다. 상대당의 정책이 맞아도 보수, 진보로 편 가르기를 하고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종북 좌파’, ‘꼴통 보수’라고 말하는 순간 이성적인 논리가 사라집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런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자는 것을 자신의 연설 제목으로 뽑았을 정도로 강조했습니다. 당장 공무원 연금 개혁부터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서 시작하자는 얘기였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해 ‘꼭 해야 하는 개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득표에 도움이 안 되는 인기 없는 개혁이다 보니 정치권이 그동안 외면해왔지만, 사실 공무원연금개혁은 이념의 문제도,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공무원연금개혁에 합의해 준다면, 국민들이 경제정당의 진정성을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공약 가계부 지킬 수 없게 됐다"…돌직구 비판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청와대와 대선공약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자기반성이었습니다. 134.5조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됐다며, 새누리당이 반성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 부족이 22.2조원이었다며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됐다고 돌직구 비판을 날렸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에 대한 깨알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저성장이 고착화된 경제에서 국가재정을 동원해 단기 부양책을 쓰는 것은 의미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장기적 시야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키우는데 모든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쯤 되면 여당 원내대표의 연설인지, 야당 원내대표의 연설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여당 의원들도 숨죽이며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야당은 북한 핵미사일 막을 대안 있나"

 국방위원장을 역임했던 유승민 원내대표는 국방 문제에 대해서는 매파로 분류됩니다. 원내대표가 되기 전 대정부 질문을 통해 사드 도입이 필요하다고 명료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우리가 이미 북한의 핵미사일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안이 있냐고 야당에 반문했습니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본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 야유와 비난 대신 야당에서 터져 나온 박수

 국회 본회의장의 반응은 분명 기존과 달랐습니다. 문재인 대표도 자리에서 진지하게 연설을 들으면서 원고를 들여다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교섭단체 연설이 끝나도 상대당에서는 보통 아무 반응이 없거나 야유와 비난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야당에서도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야당 원내대변인은 "새누리당의 놀라운 변화, 유승민 대표의 합의의 정치 제안에 공감한다"는 논평을 내놨습니다.

● 복잡한 여당의 속내…"당의 방침이 아니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이 연설을 두고 새누리당의 반응이 야당보다 복잡 미묘하다는 것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아주 신선하게 잘 들었지만, 당의 방침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대표적인 친박계 의원으로 분류되는 이정현 의원도 라디오 방송에 나와 "당내 조율이 끝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며, ”그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을 난타한 아군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묻어있는 발언입니다.

● '승민 본색'은 '새누리 본색'이 될까

 새누리당은 오랜 집권의 경험 때문인지 권력 의지가 높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집안싸움이 벌어지기 보다는 일사분란하게 선거에 최적화된 조직으로 재정비 됩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당명도 바꾸고, 당 색깔로 진보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빨간색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불리한 여론을 만회하기 위해 석고대죄 퍼포먼스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새누리당이 대통령 집권 3년차에 즈음해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로 택했다는 것은 분명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됐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뻔 한 새누리당 의원을 내세웠다가는 선거에서 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당일 새벽 1시쯤 원고를 마무리 했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본인의 발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데, 이번만큼은 더 오랫동안 공들여 자신의 생각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취지로 들렸습니다. 연설에서 드러난 유승민 원내대표의 본색은 새누리당을 진보진영 쪽으로 외연을 급격하게 확장하겠다는 선전포고로 들립니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하지 않았던 일이거나, 하는 시늉만 했던 걸 제대로 해보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유 원내대표는 효과적으로 새누리당을 변신시킬 수도 있고, 당내 반발로 상처를 입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과연 변화할 수 있을지, 그럴 만큼 유승민 원내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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