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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연의 썸풋볼] '4스날'이라는 과학은 없다

[한범연의 썸풋볼] '4스날'이라는 과학은 없다
아스날을 두고 '4스날'이라고들 한다. 시즌이 끝나고 보면 순위표의 네번째 자리에는 아스날이 있다는 의미다. 아스날을 폄하하고 싶을 때는 “잘해 봤자 4위”라고 말하며 응원할 때는 “못해도 4위”라고 한다. 이제는 ‘4스날은 과학’이라는 표현을 기사에서도 볼 수 있다.

사실 최근 10년의 아스날의 성적은 어려움 속에서도 꽃을 피웠다는 말로 수식하기엔 부끄러웠다. 우승을 다툴 정도였다가 급격한 추락을 하거나, 우울한 시작을 딛고 힘겹게 4위를 사수할 때도 있었다. 한 시즌을 이끈 영웅이 탄생하면 어김없이 다음 시즌 부상에 시달렸고 주장이자 에이스인 선수들은 상처만 남기고 떠났다. 늘 다른 이유로 3-4위에 머문 아스날을 설명하기에는 과학이라는 단어는 조롱에 가까웠다.

올 시즌 아스날은 '마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사실 아스날은 발전을 보여 주리라 예측하기 어려웠다. 지루보다 더 좋은 스트라이커를 구하지 못한 채 웰백을 급하게 사들여야 했고, 외질은 팀에 의욕적으로 녹아 들지 못하는 듯 보였다. 예상치 못한 수비 붕괴가 덮쳤으며 노쇠한 아르테타가 부상으로 빠지면 플라미니는 소위 말하는 '생각 없이 부지런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벵거 감독은 여전했다. 그는 시즌마다 조금씩 변화된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랜B가 없다고 비판 받는 것은 늘 예상 가능한 출전 명단을 제출하며, 상대의 예상에 노출 되었을 때의 대비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여전함'과 '꾸준함'은 다르다. 급변하는 승부의 세계에서 전자는 큰 미덕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아스날의 위기는 영웅을 만들었다.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었지만, 산체스가 힘겹게 쌓아 준 승점은 발판이 되어 주었다. 산체스가 힘이 떨어지자 카솔라가 팀을 지탱해 주었으며 이제는 외질이 팀을 이끌고 있다. 마라톤에 비유되는 서른 여덟 경기의 리그를 끌어 나갈 때 한 명의 외로운 원동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올 시즌 아스날은 적절한 순간 새로운 영웅들이 자리를 메워 주고 있다.


1. 달라진 선수 층 두께

이는 아스날 선수 층의 두터움에서 비롯되었다. 벵거 감독 시대의 아스날은 이처럼 두터운 스쿼드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잉글랜드의 미래로 여겨 지는 체임버스, 웰백, 월콧, 윌셔, 체임벌린이 모두 벤치에 앉거나, 때로는 벤치에 자리를 찾지 못할 때도 있다. 베테랑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팬들에게 아르테타와 로시츠키가 손을 흔들어 주며, 다음 시즌 드뷔시가 부상에서, 또 젠킨슨이 임대에서 복귀할 경우 오른쪽 수비는 전쟁터가 된다.

변화의 기폭제는 베예린과 코클랭이다. 단숨에 수비형 미드필더의 고민을 지워 주고 오른쪽 수비를 잠재적인 전쟁터로 바꿔 버린 둘의 등장으로 인해 아스날의 전력은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전력이 안정되자 일부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고, 부상 선수 복귀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합쳐 져 며칠 전 아스날은 부상 중인 선수가 한 명도 없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물론 리버풀과의 경기 직전 슈체스니가 부상당하며 환희에 찬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 도중 부상을 우려해 코시엘니와 램지를 차례로 빼주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상황 자체가 아스날로서는 큰 변화일 수 밖에 없다.)
부상자 관리도 한 몫 했다. 지루는 부상 이후 오히려 업그레이드 되어서 돌아왔고, 육안으로도 확연히 달라진 상체에 힘입어 외질은 거친 견제 속에서도 꿋꿋하게 활약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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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벵거 감독이 달라졌어요

단순히 숫자 상만이 아닌, 질적으로도 두터워 진 스쿼드는 벵거에게 큰 힘이 되었다. 사실 벵거 감독은 선수 한 명 한 명의 역할을 바꾸며 변화를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차라리 포메이션 자체를 손보거나 선수를 바꿔 넣으며 변화를 가하는 쪽. 더군다나 그 동안 벵거 감독은 주전에 대한 의존이 심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하는 기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고 있는 중에도 한 두 명 밖에 교체를 하지 않는 등 플랜B를 가져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벵거 감독에게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이 포진된 스쿼드가 주어지자 드디어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벵거 감독이 최근 가장 내세우는 무기는 적극적인 스위칭과 외질의 힘이다. 리버풀 전에서 아스날은 램지-외질-카솔라가 수시로 위치를 바꿔 가며 상대를 압박해 기회를 이끌어 냈다.(이는 코클랭에 대한 믿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전방에서 네 명에서 다섯 명이 지속적으로 강한 압박을 건 대신 그들과 코클랭 사이에 큰 공간이 비는 순간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코클랭과 수비진이 다행히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 잘 막아 주었다. 전방에서의 압박과 스위칭 양쪽 모두 아쉬움을 남기는 월콧이 벤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외질의 활약이다. 경기 전 반드시 6-7번 연습을 한다는 위치에서 성공시킨 프리킥도 놀랍지만, 그보다 경기장 전체를 아우르는 그의 장악력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수비 가담과 빌드업 조력까지 이루어 내며 이제 흠 잡기도 어려운 플레이메이커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외질에 대한 비판은 그야말로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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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밝은 내일? 글쎄요.

아스날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코클랭과 베예린은 자신들이 꾸준할 수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벵거 감독 아래에서 자라 온 어린 재능들이 발을 헛디디는 '자만심'이라는 구덩이도 경계해야 한다.

벵거 감독 스스로 역시 더 세밀한 승부수를 준비하지 않으면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여전히 약세를 면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리그 역시 강팀과의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공수 전반에 걸쳐 세밀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벵거 감독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리그가 끝났을때 그들이 차지하고 있을 위치이다. 첼시의 수비 라인에 부상 파도가 밀어닥치지 않는 한 사실상 우승 다툼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고, 챔피언스 리그 티켓 경쟁도 대부분 윤곽이 드러났다. 그러나 아스날에게 있어 지겹게 따라 붙었던 3-4위의 꼬리표를 떼어 내는 것은 다음 시즌을 맞이할 선수들에게 큰 동력이 될 것이다. 특히 '무리뉴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하면 다음 시즌도 기약하긴 쉽지 않다는 점에서 4월 말 첼시와의 일전은 매우 중요하다. 첼시와의 격차를 줄이고, 경쟁 관계를 유지시켜야만 다음 시즌 그들을 끌어내리려는 열망이 강해 질 수 있다.

후반기 상승세를 유지해 2위를 차지해 낸다면 불만 가득한 벵거 감독 경질 요구의 목소리는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이는 3년 이내 우승을 목표로 내건 벵거 감독의 성공적인 재계약 첫 해를 뜻할 뿐만 아니라 구단의 지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4스날'은 조롱의 표현일 뿐이다. '잘해봤자 4위'는 놀림이고 '못해도 4위'는 자랑이 아니다. 고착된 이미지가 과학이라는 조롱 섞인 단어를 들을 정도까지 나아간다면, 무언가 큰 변혁이 있어야만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 단추는 곧 다음 시즌의 첫 단추가 들어갈 곳을 보여 준다. 시즌 끝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 과학을 가장한 선입견을 헤쳐 나오는 것은 결국 본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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