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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화장' 소설 vs 시나리오 vs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취재파일] '화장' 소설 vs 시나리오 vs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인 '화장'이 모레(9일) 개봉합니다. 지난 2004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의 단편 소설을 1시간반 짜리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올해 만 80세이신 임 감독이 영화제작 현장에서 직접 연출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큰 화제였는데요. 노장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영화 '화장'은 개봉 전 시사회 때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먼저 보고, 뒤늦게 김훈 작가의 소설 '화장'을 찾아 읽었습니다. 큰 줄거리는 대기업의 50대 임원이 암환자인 아내와 매력적인 여직원 사이에서 고뇌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작품을 이런 싸구려 문장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훨씬 묵직하고 심오한 작품입니다. 특히 소설 '화장'은 표현이나 어휘도 문학적인데다가, 서술 구조 자체가 일반 소설과 달랐습니다. 그만큼 영화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영화 제작자에게 소설 원작은 늘 매력적인 소재이지만, 실제 영화로 만드는 일은 많은 리스크가 따릅니다. 원작과 비교되기 때문이죠. 화장이 10년만에야 영화화된 것도 그동안 자신있게 영화로 만들어낼 제작자나 감독, 배우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제작사인 명필름이 임권택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취재파일] 화장
  그럼, 과연 소설은 어떻게 영화로 바뀌었을까요? 화장의 시나리오를 구했습니다. 각본은 송윤희, 각색은 육상효라고 적혀 있습니다. 두 분을 소개하면요. 각본가인 송윤희 씨는 지난 2011년 국내 병원들의 부당한 의료시스템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을 연출했던 의사이자 영화 감독입니다. 2001년 의대생 시절 휴학을 하고, 6개월간 독립영화협회 워크숍을 다녔다고 하는데요.

이 정도 경험만으로 직접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 극장 상영까지 이끌어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송 감독은 '하얀 정글' 이후 좀 더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등록합니다.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었던 송 감독은 소설 '화장'에 나오는 암 환자 아내에 주목했습니다. 산업의학과 전문의로서 환자 이야기를 좀 더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송 감독의 시나리오를 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전격적으로 영화화를 결정합니다. 이후 시나리오를 좀 더 손 본 각색가는 육상효 감독입니다. 육 감독은 '달마야, 서울 가자'(2004), '방가?방가!'(2010) 등을 연출했습니다.

  당연히 소설과 시나리오에는 비슷한 대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위쪽이 소설, 아랫쪽이 시나리오입니다.
[취재파일] 화장
[취재파일] 화장
[취재파일] 화장
[취재파일] 화장
   소설이나 영화를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지장이 없는 정도만 공개합니다. 그럼, 영화는 어떨까요? 시나리오와 같을까요? 아닙니다. 위 두 번째의 시나리오 문장에는 '오상무(V.O)' 라고 표시돼 있죠? V.O는 voice over의 약자로 '장면에 나레이션 목소리만 입힌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실제 영화에 이런 장면은 없습니다. 반드시 시나리오대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시나리오의 장면 설명과 실제 영화 장면도 비교해보겠습니다. 위쪽이 시나리오, 아랫쪽이 해당 장면입니다.
[취재파일] 화장
[취재파일] 화장
  시나리오에는 배우 안성기 씨의 목소리나 표정, 화면의 구도, 병실 복도의 조명 등이 세세하게 적혀 있지 않습니다. 영화제작사들은 시나리오를 좀 더 이미지로 구현한 일명 '콘티북'을 만드는데요. 아래와 같은 것이죠.
[취재파일] 화장

   영화 촬영은 현장에서 시나리오와 콘티북을 함께 참고하면서 이뤄집니다. 하지만, 콘티북에도 배우들의 표정 연기나 몸의 움직임, 목소리 톤, 동선 등이 자세히 적혀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배우의 진짜 연기, 감독의 진짜 연출이 더해지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해당 영화의 진정한 분위기와 색깔이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영화 '화장'에 임권택 감독의 연륜이 배어나온다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임 감독은 현장에서 많은 장면을 바꾸고, 시나리오를 쓴 송윤희 감독도 현장에 나와 임 감독과 많은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메이킹(making) 영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임 감독(왼쪽)과 송 감독(오른쪽)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2) 서로 대화를 나누는 배우 김호정 씨와 임 감독 사이 책상 위에 '시나리오'가 놓여있군요. 
[취재파일] 화장
[취재파일] 화장
  [소설 원작->시나리오 각본->각색->콘티북->촬영 연출->영화]의 과정을 대충 살펴봤는데요.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와 지휘자마다 다른 색깔의 음악을 하듯이 시나리오와 콘티북이라는 뼈대에 실제 영화의 모습을 입히는 것이 바로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인 듯합니다. 

영화 '화장'. 액션 스릴러 사극 중심의 오락 영화가 장악하고 있는 우리 영화계에 이런 정통 극영화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내신 임권택 감독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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