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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첫 돌 갓 지난 아기에게 매독 검사, 왜?

[월드리포트] 첫 돌 갓 지난 아기에게 매독 검사, 왜?
20년도 넘은 일입니다만, 아직도 가끔 고개를 갸웃 거립니다. 대학생 시절 독한 장염에 걸렸습니다. 본래 장이 썩 좋지 않아 때때로 고생합니다. 그래도 사나흘 죽을 먹고 조심하면 나아졌는데 그 때는 영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처음 가본 곳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경력을 슬쩍 보니 외과 전문의였습니다. '내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괜찮을까? 장염 정도야 별 문제 없겠지.' 중년의 의사는 문진을 하고 청진기를 대보더니 갑자기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염이 아니라 더 큰 병인가?' 더럭 겁을 먹었습니다. 그저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 거의 전신을 찍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판독기 가득 제 엑스레이 사진을 붙여놓고 의사는 설명했습니다. "자, 전체적으로 보면 알 수 있죠. 척추가 이렇게 휘었습니다. 몸의 골격이 바르지 않으니 장기에 필요 없는 압력이 가해지고 장염에 걸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 달 정도 골격을 바로 잡는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장염 치료약이라기에는 턱 없이 많은 종류의 약을 받았습니다. 전신 엑스레이에 약까지 한 가득이다 보니 애초 어림잡아 들고 갔던 돈으로는 진료비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급히 집에 돌아가 돈을 더 갖고 다시 와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할 수록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결국 다음날 내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또 다른 의원에서 장염 치료를 받았습니다. 전날 비싼 돈을 주고 받아온 약들은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 후 당시 일을 떠올릴 때마다 궁금해집니다. '그 의사의 말을 믿고 척추측만증 치료를 받았다면 다시는 장염에 걸리지 않고 더욱 건강한 삶을 살았을까? 아니면 그냥 단순한 과잉 진료에 바가지를 썼던 것일까?'

과잉 진료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에 사는 한살 반짜리 여자 아기 퉁퉁과 그 가족도 이와 비슷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난달 17일 오후 1시 유아원에서 놀던 퉁퉁은 그만 넘어져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꽤 큼지막한 혹이 생겼습니다. 깜짝 놀란 퉁퉁의 아버지 옌씨는 당장 퉁퉁을 데리고 시내에서 제일 큰 아동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병원 의료진은 CT 촬영과 함께 채혈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퉁퉁을 신경외과에 입원 시켰습니다.

19일 아침 옌씨가 치료비 계산서를 받아들었습니다. 하루에 3천 위안, 우리 돈 약 53만원이 청구됐습니다. 그 가운데 절반이 조금 넘는 1천5백여 위안, 약 27만 원쯤이 채혈 검사 비용이었습니다. 옌씨는 생각보다 훨씬 비싸다 생각하며 검사 항목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그러다 한 항목에 눈길이 꽂혔습니다. 매독 감염 여부 검사.
아니 이제 겨우 1년 5개월 된 아기 퉁퉁에게 매독 검사라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담당 간호사에게 연유를 따져 물었습니다. "원래 수술을 받거나 수혈을 받는데 대비해 하는 기본적인 검사입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퉁퉁은 며칠 뒤인 23일 퇴원했습니다. 수술도, 수혈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옌씨의 의심은 더욱 짙어졌습니다. 치료비를 부풀리기 위해서 필요도 없는 매독 검사를 한 것 아니야?
과잉 진료

SNS를 통해 이 일이 알려지면서 지역 언론에서 취재에 나섰습니다. 도대체 1년 5개월 된 아기에게 매독 검사가 왜 필요한가?

"신경외과에 입원한 모든 환자에게 매독 검사는 의례적, 아니 필수적으로 행합니다. 처음에는 괜찮아 보이다가도 언제 뇌 등에 출혈이 발생할지 알 수 없고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때는 관련 검사를 시행할 시간이 없습니다. 수술이나 수혈 과정에 매독에 감염 됐을 때 사전에 매독이 있었는지를 미리 확인해둔다면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담당 의료진의 설명입니다.

관계 당국에 문의했습니다. "관련 규정에는 외상에 대한 검사에서 A형과 B형 간염, 에이즈, 그리고 매독에 대한 검사를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외부적인 출혈이 전혀 없고 내부 출혈만 의심되는 상처에도 앞서 열거한 검사가 필요한가요? "그 경우에는 앞서의 규정에 딱 들어맞는다고 말씀드리기 어렵겠네요. 다만 그렇다고 의료진의 규정 해석이 심각하게 잘못 됐다고 평가하기도 어렵습니다. 좀 애매한 상황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1년 5개월 된 아기에게 매독 검사를 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으로 보이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일종의 방어 진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확률적으로 제로에 가깝겠습니다만, 매독에 감염된 아동 환자일 경우 자신이 그에 대한 책임을 억울하게 지게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아가 매독 검사를 아예 필수 과정에 넣어두면 필요한 상황에 깜빡 잊고 하지 않는 실수를 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해는 갑니다. 다만 이런 식이라면 의료진은 자기 보호를 위해 백만분의 일, 천만분의 일이라도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해 검사를 하려 들 것이고 이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 측이 져야하겠네요. 바람직하다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과잉 진료

의료는 대표적으로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서비스입니다. 우리가 옷을 사는 경우라면 판매업자가 이런 저런 옷을 권할 때 주체적으로 따지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는 그렇지 못합니다. 의료진이 권하면 대부분의 경우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전문가인 의료진에 비해 비전문가인 소비자에게 해당 서비스에 대한 정보는 일방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래서 소비자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급자가 정말 필요하기 때문에 제공하는 것인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불필요한 데도 강매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불신을 떨치기 힘든 구조입니다. 따라서 의료 서비스 공급자는 소비자의 이런 심리까지 책임질 필요가 있습니다. 불신을 사지 않도록 최대한 합리적인 공급을 제안해야 합니다. 첫돌을 겨우 지난 아기에게 매독 검사까지 실시하는 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 장염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에게 다짜고짜 전신 엑스레이를 찍으며 척추측만증 치료부터 권하는 것이 어떤 느낌을 줄 지까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문가가 비전문가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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