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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물',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사람들에게

[리뷰] '스물',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사람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던 때가 있었다. 1990년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의 라틴어)이 수많은 이들의 다이어리 머리글을 장식했던 것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하나의 주문처럼 젊은이의 가슴에 파고 들었다.

그러나 2015년 이 말은 "그때가 좋을 때다"라는 어르신들의 말처럼 모호하기 그지없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삼포(연애, 출산, 결혼 포기)세대 아니 오포(연애, 출산, 결혼, 내집 마련, 인간관계) 세대라 명명할 정도로 청춘의 성장통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금, 이 문장은 궤변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금 시대에 '청춘'이라는 말은 수혜가 아닌 고행의 동의어에 가깝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이병헌 감독의 영화 '스물'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반기를 드는 영화다. 세 남자 주인공은 아프기만 한 건 청춘이 아니라는 걸 몸과 마음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가 반가운 것은 무게잡지 않고, 젠체하지 않는, 날 것의 활력으로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잘생긴 외모에다 자유로운 영혼까지 갖춘 치호(김우빈 분)와 집의 가세가 기울어 하루아침에 애어른이 된 동우(이준호 분), 공부밖에 모르는 숙맥 경재(강하늘 분)는 고교 동창이다. 학교 퀸카 소민(정소민 분)을 좋아하면서 경쟁 관계로 만난 세 사람은 어느 덧 둘도 없는 친구가 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10대 후반과 20대의 대소사를 함께 헤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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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은 세 청춘스타의 매력과 개인기에 감독의 차진 대사발을 더해 완성한 코미디 영화다. 우리가 익히 봐온 청춘 영화와는 다르다. 온몸이 오글거리는 유치한 행동과 깃털처럼 가벼운 언어 유희를 즐기다 보면 어느덧 120분이 훌쩍 지나있다. 

영화는 진지한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캐릭터들은 대부분 나사 하나 빠진 인간들처럼 붕 떠 있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이나 고난, 실패에 대해서도 즉흥적으로 반응한다. 아프면 아픈데로, 기쁘면 기쁜데로 말이다.    

모든 청춘 영화가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고 진지한 담론을 펼칠 필요는 없다. 물론 그런 영화들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진지하지 않다는게 진실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스물'의 세 주인공은 각자의 방식대로 성인의 관문을 지나갈 뿐이다. 

스물이라는 관문만 지나면 모든 게 저절로 해결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치호, 동우, 경재 역시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극 중 "사람들은 우리보고 좋을 때다 그러는데 애매하게 뭐가 없어. 힘들고 답답하고. 그런데 어른들은 배부른 소리라 그러지"라는 경재의 말처럼 막상 당도한 그 길엔 더 많은 물음표가 있을 뿐이다. 

영화가 가진 장점은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청춘 그 자체로 빛나는 순간에 대한 영화다보니 '스물'은 거대한 판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20대가 세상사에 이리 쿨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면에서 '스물'은 청춘의 아픈 성장통을 다룬 리얼리즘 영화보다는 환경과 관계를 초탈한 영역의 판타지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쓴물 빠진 청춘 영화는 가볍다"라고 할 수 있지만, 코미디에 방점을 찍은 청춘 영화로서 '스물'의 개성은 충분히 빛난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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