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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저승사자에게 잡혀가는 순간의 천태만상

[월드리포트] 저승사자에게 잡혀가는 순간의 천태만상
탐관
요즘 중국에서 '탐관'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속된 말로 '인생 종'칩니다. 그동안 악착 같이 쌓아온 권력과 명예, 부가 티끌처럼 사라집니다. 형량도 어마어마합니다. 징역 10년형 이상은 기본이고 사형도 어렵지 않게 선고됩니다. 그러니 갑자기 나타나 동행을 요구하는 중국 공산당 기율위원회 요원들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귀에 '종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최근 중국 언론에서 이런 순간의 모습을 정리해 보도했습니다. 잡아가는 방식, 이에 대응하는 태도가 천태만상입니다. 과거와 달리진 '트렌드'도 있습니다.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가 막 폐막한 지난 15일 낮 12시쯤입니다. 윈난성 전국인민대표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머물던 호텔 문을 막 나설 때였습니다.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나가던 윈난성 공산당 부서기 츄허와 마주쳤습니다.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츄 부서기님, 어디 외출하십니까?" 츄 부서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직후에 츄 부서기의 비서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들고 황급히 뒤를 쫓았다는 목격담도 나왔습니다. 무슨 일일까? 윈난성 인민대표들의 궁금증이 커져가던 1시간 뒤쯤 중국 공산당이 전격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츄 부서기가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모처에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츄 부서기는 이번 양회에서 전체 회의는 물론 거의 모든 소조 회의에도 참석했습니다. 각종 토론에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다만 발언에 앞장서던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고 합니다. 시종일관 어두운 낯빛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고 다른 전인대 대표들은 전했습니다. 가끔은 회의 중에 슬쩍 밖으로 나가 부하 직원이 가져온 문서를 들여다봤다는 말도 나옵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나보다 생각했어요." 동행자들의 증언입니다.

츄 부서기가 자신에 대한 기율위 내사 사실을 알아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기율위에서 양회에 앞서 조용히 데려갈 만 했습니다. 양회에 참석하지 않아 불필요한 소문이 돌 것을 우려했다면 윈난성으로 돌아간 뒤 몰래 잡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굳이 양회가 끝나자마자 동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검거했습니다.

과거에는 차관급(성 부서기면 차관급) 정도의 당 간부를 잡아 갈 때 남들의 눈을 피했습니다. 한참 모습이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일까?' 흉흉한 소문이 몇 차례 돌고 나면 그제야 '구금' 소식을 전했습니다. 당 간부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한 일종의 배려였습니다. 아울러 공산당 간부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야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습니다. 오히려 츄 부서기와 같이 공개된 장소에서 보란 듯이 잡아갑니다. 해당하는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탐관
광둥성 광저우시의 완칭량 서기는 회의 중에 많은 시 간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잡혀 갔습니다. 회의 자리에 있던 완 서기에게 기율위 요원들이 찾아와 둘러쌌습니다. 10분 안에 중국 SNS에 소식이 돌았고 30분 만에 언론사 인터넷 홈페이지는 관련 기사로 도배됐습니다.

공상총국 쑨훙즈 부국장은 더 극적입니다. 상사제도 개혁 간담회를 위해 공상총국의 과장급 이상 간부가 다 모였고 쑨 부국장은 연단에 앉아 있었습니다. 기율위 요원들이 연단까지 올라왔습니다. 그 뒤 공상총국에서 쑨 부국장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홈페이지의 간부 소개 명단에서도 쑨 부국장의 이름은 사라졌습니다.

장쑤성 난징시 양웨이저 서기는 회의 개회 선언을 한 직후 성 위원회로부터 급히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시작한 지 몇 분만에 정회를 하고 부랴부랴 성 청사로 달려갔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기율위 요원들이었습니다. 양 서기는 잠시 담배를 피게 해달라고 휴게실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창문 쪽으로 달려가 투신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기율위 요원들이 더 빨랐습니다. 어느새 달려와 어깨를 잡아끌어 제압했다고 목격자들이 SNS를 통해 알렸습니다.

"충격과 공포 요법이죠." 전직 기율위 간부의 설명입니다. "이제는 어차피 모든 부패 관리들의 처벌이 공식적으로 이뤄집니다. 잡혀가는 것을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공직자들이 보도록 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입니다."

공항이나 기차역에서 잡혀가는 부패 관리들도 심심치 않게 목격됩니다.

위에양시 부시장 천쓰하이는 기차역에서 막 기차를 올라타려다가 붙잡혔습니다. 그 과정을 다른 승객들이 모두 지켜봤습니다. 광둥성 정협 주석 주밍권은 해외로 가기 위해 광저우시 비행장에 갔다가 연행됐습니다. 직후 인터넷에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는 평이 속속 올라왔습니다.

중국과학협회 당 서기 션웨이천은 난징 출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도착 출입구 앞을 지키던 요원들이 앞을 막아섰습니다. 션 서기를 마중 나온 협회 직원들과 가벼운 충돌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비행장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이런 추세에 대해 전직 기율위 간부는 이렇게 풀어 말합니다. "아무리 기밀을 유지하고 천의무봉한 그물을 치더라도 빠져나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출장을 간 상황이라면 몸을 빼기가 더욱 좋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역에서부터 기다리는 것이죠." 철저합니다.

탐관
물론 개인 사무실이나 집에서 잡혀가는 경우도 여전히 많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대응을 잘못해 공개적인 망신을 사기도 합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류테난은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기율위 요원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태연한 척 말합니다. "무슨 일인가요? 잠시 옷을 갈아입을 테니 아파트 로비에서 기다리시오." 하지만 동행한 무장 경찰은 문을 억지로 뜯고 쳐들어갔습니다. 이 소란에 아파트 주민들이 몰려나와 지켜봤습니다. 쏟아져 들어오는 기율위 요원과 경찰 앞에 류 주임은 '쾅' 소리가 날 만큼 무릎을 꿇더니 온 몸을 벌벌 떨며 용서를 빌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습니다.

우리 돈 수백억 원의 뒷돈을 챙겨 공식 '슈퍼 파리'에 이름을 올린 마차오쥔 수도 공급회사 간부는 한 술 더 떴습니다. 큰 소리를 질러대며 기율위 요원들이 제시한 영장을 박박 찢어버렸습니다. 게다가 각목을 휘두르며 반항했습니다. 얼마 못가 요원들에게 제압당하고 끌려 나갔습니다. 이웃 주민들에게 그런 굴욕적인 모습을 봐달라고 초청장을 보낸 셈입니다.

인생이 끝나는 마당에 잡혀가는 '폼'을 신경 쓸 인사는 아무도 없겠죠. 아울러 중국 지도부도 더 이상 부패 공직자의 '폼'을 배려해줄 뜻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아니 오히려 공개적인 '개망신'을 줌으로써 당사자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하고 주변인들에게 충격을 선사합니다. 그러니 이런 끔찍한 순간을 겪지 않으려면 결국 부패에 빠지지 않는 수밖에 없습니다. 공직자들이 그 사실을 깨달아야 중국의 인민들이 이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광경을 더 이상 목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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