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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명품불패'는 이제 옛말?…값 내린 샤넬

[취재파일] '명품불패'는 이제 옛말?…값 내린 샤넬

신승이 기자 seungyee@sbs.co.kr

작성 2015.03.23 07:4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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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샤테크’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샤넬'과 '재테크'가 합쳐진 말로 대표적인 고가의 수입 패션 브랜드인 샤넬의 핸드백으로 재테크를 한다는 뜻입니다. 샤넬 핸드백 가격이 계속 오르기 때문에 일단 사 놓으면 나중에 중고 시장에 내 놓으면 이윤이 남아 재테크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고급 이미지 구축을 위해 해마다 가격을 높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명품 수요는 줄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샤넬이 최근 이례적으로 제품 가격을 낮춘다고 발표하면서 앞으로는 ‘샤테크’가 국내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샤넬은 지난 17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핸드백 등 패션 잡화 가격을 최대 20%까지 내렸습니다. 빈티지, 클래식, 보이샤넬 등 샤넬 핸드백의 대표 제품들이  많게는 150만 원까지 가격을 낮췄습니다.

가격 인하 소식이 알려진 직후 오후 한 때 시내 한 백화점 샤넬 매장에는 샤넬백을 구매하려고 온 사람들과 이미 구입했다가 차액을 환불받으러 온 사람들로 긴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가격이 내렸다고 해도 여전히 5백 만 원에서 6백50만 원 정도로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그동안 '노세일'과 지속적인 가격인상 등 콧대 높은 정책을 펴 온 명품 브랜드들의 태도를 고려하면 작지 않은 변화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샤넬은 이번 가격 인하에 대해 “유로화 약세로 인해 유럽과 아시아 시장의 제품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조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명품 잡화의 아시아지역 가격은 유럽에 비해 보통 30~40% 높은데 최근 환율 변동으로 이 차이가 50%에서 최고 80%까지 커졌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프랑스 파리 현지로 명품 구매 원정을 오는 아시아 소비자들이 늘고, 일부는 구매한 물건을 자기 나라에서 되팔면서 비공식적인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업체들이 자사의 글로벌 유통망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한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매출 성장세가 커 효자 노릇을 해 오던 아시아 시장의 매출이 그만큼 타격을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명품 업체의 새로운 가격 정책은 비단 환율 문제 뿐 아니라 국내 소비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국내 백화점 매출은 0%대 성장을 보였습니다. 여성 정장, 의류는 마이너스 4~10%까지 매출이 떨어지며 큰 부진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매출 충격 속에서도 해외 고가 수입 패션 브랜드, 즉 명품 제품만큼은 전 분기 대비 오히려 27%나 매출이 증가하며 '나홀로 성장‘을 했습니다. 이후에도 매 분기 적게는 10%대에서 30% 가까이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불황에도 명품 소비는 줄지 않는다는 이른바 ‘명품불패’ 신화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2013년 들어 백화점 명품 매출이 5.6% 줄기 시작하더니 하락폭이 11.3%까지 커졌습니다. 시점마다 약간의 등락은 있지만 지난해 4분기 -3.5%에 이르기까지 명품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 수치로 드러납니다.  샤넬 가방 캡쳐_6매출 규모 뿐 아니라 매출 내용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명품 매출이 줄어들었던 것은 주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제품의 가격대가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핸드백을 사도 조금이라도 가격대가 낮은 것을 사거나 핸드백 대신 지갑을 구매해 대리만족을 하는 식입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구매 단가를 낮추는 것은 물론 아예 소비의 횟수와 구매자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가 엿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의 함승희 선임연구원은 “여성의류에서 시작된 소비 합리화 바람이 점점 명품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성 의류 시장에서는 낮은 가격과 다양한 디자인을 내세운 패스트패션, SPA 브랜드들이 이미 빠르게 규모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패션 액세서리 분야 역시 과거 '가방 하나쯤은 비싸고 유명한 제품을 갖고 싶어하던' 분위기가 많이 약해지고, 대신 합리적인 가격에 개성을 살리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백만 원짜리 수입 제품을 구매하는 대신 더 낮은 가격대 제품을 여러 개 구입하는 편을 택하거나, 브랜드 이름보다는 좋은 소재, 독특한 디자인 제품을 선호하고 누구나 다 아는 제품보다는 보기 힘든, 희소성 있는 제품을 선택하는 게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달라진 소비패턴 때문인지 몇몇 명품 업체들은 핸드백의 크기를 줄이는 방식으로 가격대를 낮추며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대형 로고가 박힌 명품이 오히려 촌스럽다는 인식 때문인지 로고를 거의 강조하지 않은 명품 가방들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웬만한 불황에는 영향을 받지 않던 명품업체들도 위축된 소비 시장과 실속을 중요시 하는 소비 트렌드로 인해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에 와 있는 듯 합니다. 

▶ [김범주의 친절한 경제] '샤테크' 옛말…샤넬 가방 가격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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