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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한산 ‘야생 들개’는 어디서 왔을까?

[취재파일] 북한산 ‘야생 들개’는 어디서 왔을까?
최근 북한산 일대에서 ‘야생 들개’ 수십 마리가 발견돼 서울시가 긴급 포획에 나섰습니다. 5~6년 전만 해도 고작 한두 마리에 불과하던 이들 야생 들개는 야생에서 번식을 거듭하며 어느새 60여 마리까지 늘었습니다.

이들 야생 들개의 출현은 비단 북한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경기도 시화호는 물론, 제주도 한라산 등에서도 들개 개체 수가 급증하며 사회 문제로도 떠올랐습니다.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게릴라식으로 나타나 등산객과 가축을 공격하는 탓에, 야생 들개들은 소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과연, 이들 야생 들개들은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요?
 
● ‘야생 들개’로 돌아온 유기견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들 야생 들개가 처음부터 공격성이 강했던 건 아닙니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집에서 키우던 평범한 ‘반려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인에게 버림받고 야생을 떠돌며, 원래 가지고 있던 ‘공격성’을 다시 찾게 된 겁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개는 오래전 조상인 ‘야생 늑대’로부터 분화돼 진화했습니다. 이 때문에 개들은 빠른 몸놀림과 포악하고 공격적인 늑대의 습성이 유전적으로 잠재돼 있습니다.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무리 생활하는 특성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유기견들이 야생을 떠돌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순치되기 이전 상태 즉, 조상인 늑대가 가졌던 공격성을 되찾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 개의 조상은 야생성 강한 ‘회색 늑대’

개의 야생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개가 야생 늑대로부터 분화된 과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과학원과 스웨덴 왕립기술원은 지난 2002년, 전 세계 개 유전자 1천6백여 종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으로부터 약 1만 5천 년 전, 중국 장강 이남에 서식하던 ‘회색 늑대(Canis lupu)’가 개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리’나 ‘말승냥이’로도 불리는 ‘회색 늑대’는 수컷의 평균 몸무게가 45kg, 어깨높이가 1m에 달해 개과 동물 가운데서 몸집이 가장 큽니다. 성격도 사납고 난폭해 인간과 호랑이 정도만이 상대할 수 있는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분류됩니다.
 
이렇게 큰 몸집과 난폭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회색 늑대는 긴 시간 동안 여러 과정을 거치며 인간에게 길들어 왔습니다. 아마 인간도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혹한에 잘 견디고 빠른 발과 강한 체력을 가진 늑대가 필요했을 겁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1만 4천여 년 전, 인류가 베링해협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갈 때, 늑대 가운데 상대적으로 유순한 개체를 데려가 가축으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개, 온순한 성질의 유전자 가져

하지만, 늑대가 ‘개’라는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데는 유전적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러시아 동물학자 스티븐 부디안스키는 저서 『개에 대하여(THE TRUTH ABOUT DOGS)』를 통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늑대 무리 가운데 온순한 성격의 개체는 힘들고 어려운 사냥 대신 인간의 집 근처에 떨어진 음식을 먹으며 생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온순한 성격의 늑대들은 모여 살며 자기들끼리 교배했고, 그 자손들이 세대를 거치면서 '개'라는 새로운 종으로 분화했다.”

어려운 사냥보다는 음식을 주워 먹는 것이 더 편했을 것이고, 이렇게 편한 생활에 익숙해지며 다른 동물을 공격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또한,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공격성을 결정하는 유전자마저도 바뀌어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가축으로 진화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Tryptophan hydroxylase-2, Monoamine oxidase-A 등 공격성을 결정하는 유전자 16개를 발견했습니다. 이들 유전자는 기분을 좋게 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데 영향을 주는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령, Tryptophan hydroxylase-2 유전자에서 1,473번째 염기가 사이토신(Cytocin)일 때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들어 강한 공격성을 보이게 되지만, 염기 돌연변이가 발생해 사이토신(Cytocin)이 아닌 구아닌(Guanine)으로 대체되면 반대로 성격이 온순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야생 늑대들도 이런 유전적 변화를 거치며,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온순한 개로 진화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 야생 들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

결론적으로, 야생 늑대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며 점차 온순한 성격의 개로 바뀌었습니다. 사람 집 주변은 따뜻하고, 먹이를 구하기 쉬워 야생 늑대에게도 안락한 공간이었을 겁니다. 그런 안락한 생활에 적응하며 야생 늑대의 유전자는 더 온순한 방향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이처럼 한 번 온순해진 야생 동물은 그 성격을 후대에도 물려줍니다. 하지만, 그 야생 동물들이 처음부터 온순하지 않았고, 거친 야생에선 생존을 위해 내재돼 있던 야생성을 되찾을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개가 야생으로 돌아가 먼 조상이 가졌던 야생성을 되찾는 건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야생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반달곰이 지리산에 방사돼 ‘건강한 야생성’을 되찾아 가는 것과 개들은 북한산에 버려져 ‘유해한 야생성’을 가지는 건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계획된 ‘방사’는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인위적인 ‘유기’는 생태계를 파괴할 뿐입니다. 그리고 파괴된 생태계는 부메랑처럼 우리 인간에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야생 들개’로 변한 유기견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사진=연합뉴스/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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