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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빌어먹을 독일"…'손가락게이트' 진실 공방

[월드리포트] "빌어먹을 독일"…'손가락게이트' 진실 공방
상대에게 가운뎃손가락만 세워 보이는 행동은 서양에선 “Fuck You”에 해당하는 심한 욕이다. 한 나라의 장관이 상대 국가를 상대로 그런 행동을 했다면 정말 큰 문제이다.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든 4분짜리 동영상을 감상한 뒤 전후 사정을 따져보자.  

(독일 공영방송 ZDF 방송 제작 동영상)

이 동영상은 독일 공영방송 ZDF의 풍자 프로그램 제작진이 만들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잔잔한 음악이 깔리면서 “우리는 독일사람이다”라는 외침이 들린다. 독일인은 정직하고 부자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난데없이 가죽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탄 인물,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공포스럽게 변한다.

장관은 눈에서 광선을 뿜어 EU 상징물을 불 태운다. 장관을 “협상은 안 하고 걷어차기만 한다”고 비유한다. 이를 드러내며 기괴하게 웃는 모습이 나오더니 장관을 “살아 있는 빚더미”, “방탄 얼굴”이라고 비하한다. 다시 “(독일인을)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뮤비’는 끝난다. 나랏돈이 없어 유럽에서 돈을 빌리러 다니면서도 너무도 당당한 그리스 장관을 풍자한 것이다.

뮤비 다음에 장관의 과거 연설 장면이 나온다. 바루파키스가 장관이 되기 전인 2013년 한 행사에 참석해 유럽의 재정 위기에 대해 연설한 화면이다. 그는 “2010년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지 말고 아르헨티나처럼 파산을 선언했어야 한다. 독일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자, 당신네 혼자서 이 문제를 풀 수 있겠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하면서 바루파키스는 왼손 가운뎃손가락을 세웠다 내린다. 동영상은 이렇게 끝난다.

독일의 또 다른 공영방송 ARD가 지난 15일 황금 시간대 토크쇼에서 이 동영상을 틀면서 쇼를 진행했다. 당시 시청률이 18%를 넘었고, 520만 명이나 시청했다고 한다. 독일인들은 문제의 장면을 사실로 받아들이며 그리스인들을 염치없다며 실컷 비난했다.

캠처

이에 대해 그리스의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손가락을 들어 욕하는 제스처를 평생 취해본 적이 없다"며 "조작된 화면”이라고 반박했다. 파문이 커지자 동영상 제작진은 방송 사흘 뒤 화면을 조작했다고 해명했다. 그리스를 바라보는 독일인의 불편한 심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손가락을 촬영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했다는 것이다. 조작설이 나오면서 일명 ‘손가락게이트’로 비화했다. 제작자는 바루파키스 장관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런데, 다음날 토크쇼 제작진은 "조작이 아니라 풍자"라며 다른 말을 하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더구나, 2013년 연설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행사 주최측은 원본 그대로라며 조작된 것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즉, 바루파키스가 당시 연설때 손가락을 올린 게 사실이라는 것이다. 진실 게임이 벌어진 것이다. 기자가 직접 확인해보니 원본엔 손가락 욕이 들어 있었다.

손가락 욕을 했든 안했든 독일인들은 조작을 큰 문제로 여기는 것 같지 않다. 화면 조작이라면 잘못이지만, 바루파키스 장관이 독일에 대해 말한 부분은 육성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수백 조 원의 빚을 지고 유럽 여러 나라를 돌며 채무 연장이나 재조정 협상을 하고 있다. 독일은 그리스에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나라이다. 독일 입장에서는 돈을 빌려간 주제에 그리스가 너무 당당하게 구는 것이 못 마땅하다.

최근엔 그리스 치프라스 총리가 나치 독일의 전쟁 배상 문제를 다시 거론해 독일을 자극했다. 독일은 전쟁의 고통에 대한 도덕적 책무는 잊지 않고 있지만, 1960년 서독이 그리스에 배상금을 지불했기 때문에 경제적 책임은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독일은 그리스가 채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의 상처를 건드리고 있다고 본다.

독일은 또, 그리스 정부가 최근 빈곤층의 전기요금 면제 등 지원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리스가 채권단에게 재정을 악화하는 조치는 일방적으로 하지 않기로 약속해놓고 또 복지를 늘렸다고 보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한 쪽이 도와주면 다른 한쪽은 개혁을 실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올 초 선거에서 승리해 집권한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선거로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면, 선거가 왜 필요한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독일의 주문대로 긴축을 했더니 경제난이 가중됐다며 “사회와 경제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자신의 공약을 지켜나가겠다”고 맞섰다.

돈을 빌렸으면 고개를 숙이라는 독일. 긴축이 아닌 성장을 생각해보자며 고개를 쳐든 그리스. 한 판 대결이 벌어졌고 힘의 논리로만 보면 독일의 승리가 예상된다. 그리스가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바루파키스 장관이 말한 그것이다. "그리스가 파산을 선언하고 독일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자, 당신네 혼자서 이 문제를 풀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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