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화장실 안 가려고 물도 안 마셔요"

[취재파일] "화장실 안 가려고 물도 안 마셔요"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서 반년 남짓 지냈습니다.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한 상하이지만, 여전히 낯선 모습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화장실입니다. 휘황찬란한 고층 건물에도 쭈그려 앉아서 용변을 봐야하는 변기가 많았습니다.
학교화장실 캡쳐_6
사전을 검색해보니 이렇게 이용하는 변기를 화변기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저 역시 어릴 적 화변기를 이용하고 살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이용하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더군요. 이제는 어느덧 앉아서 용변을 보는 좌변기에 익숙해져버렸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더 이상 서울에선 이 화변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생각은 틀렸습니다. 서울에서도 화변기는 여전히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딜까요? 바로 학교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매일매일 생활하고 있는 학교엔 화변기가 생각보다 '훠얼씬' 많았습니다.

지난해 8월 31일 현재, 전국에 있는 모든 초등학교에 있는 변기 숫자를 헤아린 자료를 찾았습니다. 전체 17개 광역단체 초등학교에는 총 380,501개의 변기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234,488개가 좌변기, 146,013개가 화변기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니까 양변기 비율이 61.6% 정도인데, 변기 5개 중 3개가 좌변기, 2개가 화변기라는 것입니다.

제주도 같은 경우엔 변기 총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는 합니다만, 전체 변기 4,555개 중에 4,572개가 좌변기, 99.6%, 대부분이 좌변기입니다. 대전시 초등학교 92.9%로 그 다음이었고, 세종시(86.4%), 충남(86.9%), (전북 81.4%), 강원(73.4%), 부산(73.1%), 경기(65.4%) 등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좌변기 보유율을 나타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떨까요? 서울시내 초등학교에 있는 변기의 수는 모두 79,628개 였는데, 이 중 좌변기가 41,112개, 화변기가 38,516개로 조사됐습니다. 좌변기 보유율로 따지면 51.6%로 전국 평균보다 정확하게 10%p 낮은 수치였습니다. 조사 결과가 다소 의외라고 생각한 건 저 뿐일까요?

어쩌면 태어나서 한번도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는 이 화변기를 지금 초등학교 아이들은 과연 잘 이용하고 있을까요?

서울시내 학교를 어렵게 어렵게 섭외해 교장 선생님의 허락을 얻은 뒤 학교 화장실 입구를 볼 수 있는 관찰 카메라를 설치해봤습니다. 이 학교 여학생 화장실엔 한층마다 10칸의 변기가 있었는데, 2칸에만 좌변기가 설치돼 있고, 8칸에는 화변기가 설치돼 있습니다. 서울시내 초등학교 평균보다 화변기 숫자가 많은 학교였습니다.
화장실_640
관찰 카메라에 담긴 모습을 보니, 화장실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이 2칸 밖에 없는 좌변기 칸으로 몰렸습니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 1,2학년 아이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좌변기 칸을 이용했습니다. 다른 칸이 텅텅 비어 있는데도 발을 동동구르며 기다렸다가 좌변기가 있는 칸을 이용하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도 고학년 학생들은 이제 좀 익숙해졌는지, 좌변기 칸이 아닌 화변기 칸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많은 아이들이 좌변기 칸을 이용했습니다.

왜 화변기 이용을 꺼려하냐는 질문에 저학년 아이들은 써 본 적이 없어서라고 답했고, 고학년 아이들도 사용에 불편하고, 비위생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대변기를 이용할 일이 적은 남자 아이들은 불편을 느끼는 정도가 여자 아이들보다 적은 듯 보였는데, 남자 아이들은 아예 학교에서 좌변기나 화변기 자체를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교에서 화장실을 아예 안 가려고 무조건 용변을 참는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몹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화장실을 안 가려고 물을 마시지 않는다."
"자리에서 가능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체육 시간이 문제다. 뛰고 들어오면 물을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안 가려고 이렇게까지 한다는 학생들 말을 듣고 두 딸 아이의 아빠로서 미안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은 올해부터 쾌적한 학교 화장실 만들기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20년 이상된 오래된 학교의 화장실을 뜯어고치는 작업을 시작한 겁니다.

이 사업을 위해 올해 교육청 예산 50억 원에다 서울시가 100억 원을 보탰고 거기에 민간에서 더 모금을 해서 학교 화장실 200동(1동이란 남녀 화장실 한 세트을 말하는 단위입니다) 정도를 수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분들 말을 들어보니 화장실 한 동을 부분 수리하는데는 5천만 원 정도, 완전 수리하는 데는 8천8백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하네요. 개인적으론 꼭 필요한 일이고,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돈입니다. 서울시만 해도 1,300개 학교가 있고, 그 학교 안에 있는 화장실 동이 13,000동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수준의 예산으로 매년 꼬박꼬박 200동씩 수리를 한다해도, 13,000동이면 몇년이 걸리는 겁니까? 물론 13,000 동 전부를 고칠 필요는 없겠지만 단순 계산만해도 65년이 걸리는 일인데, 그렇다면 고친 화장실 또 고쳐야겠네요.

저는 지금 수준의 돈으론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거죠. 문제는 돈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냐고 하실텐데, 이 문제는 단순히 정부 예산만 갖고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민간 기업에서도 적극 나서야 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 문제에 대한 보도를 하게 된 것도 단순히 예산 부족을 지적하기 보다는 이런 실태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보탰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용변 보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현실, 이거 어른들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 아닐까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