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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드' 갈등…3국 외교장관회의까지 번질라

[취재파일] '사드' 갈등…3국 외교장관회의까지 번질라
한중일 외교장관회의가 오는 토요일 서울에서 열립니다. 세 나라간 외교장관회의는 아베 정권 등장 이후 중국과 일본이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2012년 5월 이후 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의장국인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중재로 약 3년 만에 재개된 겁니다.

우리 정부도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부터 3국간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 의제가 많았는데, 그간 한일, 중일 간 갈등으로 인해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중국과 일본의 외교장관들을 서울로 불러들인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3국간 협력체제를 복원시키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희망사항입니다. 이번 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 '3국 협력의 장' 직전 불거진 한중 갈등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회의를 목전에 두고 그간 아무런 문제가 없던 한중 간에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 의 한국 배치와 관련된 논란 때문입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그간 정부는 " 요청을 받은 것도, 협의를 한 것도, 결정된 것도 없다"는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습니다. 지난 달 25일까지만 해도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요청한 바도 없고, 따라서 미국과 협의한 바도 없고 도입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바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부터입니다.

여당 중진들이 먼저 사드 도입 공론화에 나섰습니다. 지난 8일 원유철 당 정책위의장은 " 미국은 1차적으로 주한미군과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사드를 도입하려고 한다"면서 " 당연히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의원총회를 열어 사드 도입 논의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국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던 지난 16일, 외교부를 방문한 중국 류젠차오 외교부 부장조리가 작심한 듯 중국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 중국의 관심사도 중시해달라", " 미국과 한국이 타당한 결론을 내달라"면서 사실상 사드 도입을 반대한다는 뜻을 내비친 겁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 날인 17일 외교부를 찾은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차관보는 " 아직 배치되지도 않은, 이론상의 문제일 뿐인 안보시스템에 대해 제3국이 그렇게 강한 표현을 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제 3국이라고 했지만 당연히 중국을 겨냥한 발언입니다.

같은 날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도 " 주변국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대해 나름대로의 입장은 가질 수 있지만, 우리의 국방안보 정책에 대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중국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한미, 中 동시 비판…中 외교부장의 입 주목

김민석 대변인의 이날 발언은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는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추정을 낳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군다나 한미가 같은 편에서 중국을 비판한 모양새가 되면서, 한중 갈등까지 번지는 상황이 됐습니다.

물론 국방부에서는 "중국의 발언이 도를 넘었기 때문에 원칙적인 대응을 한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일 류젠차오의 발언을 우리 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행위로 볼 수 있다면, 러셀 차관보의 발언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완곡하긴 했지만 이날 러셀 차관보도 결국 사드 도입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입장을 말한 겁니다. 마지막에 한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 북한의 탄도 미사일 위협에 한미가 노출돼 있고, 그로부터 한국민과 미군을 보호할 시스템을 강구할 책임이 있다고 한참 말한 뒤였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들도 류젠차오의 발언이 외교적인 결례 수준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의 입에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물론 3국 외교장관회 자체가 사드나 AIIB와 같은 현안을 다루는 성격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류젠차오나 러셀의 경우처럼, 기자들 앞에서 사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힐 수는 있습니다. 과거 다자회의에서 왕이 부장은 기자의 질문을 피하기보단, 굉장히 적극적으로 응대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미국이 한국과 함께 중국을 비난했다고 받아들였다면, 왕이 부장은 어떤 식으로든 중국 입장을 밝힐 것으로 관측됩니다.

● 섣부른 공론화…외교적 부담만

3국 외교장관회의가 '협력'이 아닌 '갈등'으로 얼룩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겁니다. 왕이 부장의 발언에 따라 다음 날 신문 지면은 '사드'와 '한중 갈등'으로 도배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어렵사리 3년 만에 외교장관회의를 성사시킨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애초 정부 여당의 대처가 아쉽습니다. 러셀의 말마따나 그야말로 '이론'에 불과한 사드를 여당에서 도입해야 한다면서 섣불리 공론화에 나섰을 때부터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사드 도입 문제는 섣불리 자기 패를 보여줘가며 떠들썩하게 풀어선 안되는 사안입니다. 더군다나 경제 협력을 강화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중국과의 갈등이라는 짐만 얹게 됐습니다. 그 짐을 덜어내려면 언젠가 눈물을 머금고 더 큰 '양보'를 해줘야 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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