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측이 이우일 사외이사의 재선임을 반대한 이유는 바로 현대차그룹의 한전 부지 매입과 관계가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높은 비용을 들여 주주가치에 손해가 갈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아무런 검토없이 사내이사에 전권을 위임했다는 게 재선임 반대 이유입니다. 기업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사외이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본 거죠.
비록 주주총회 표결 끝에 이우일 사외이사 재선임안은 통과됐지만, 연기금이 본격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 의결권 행사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네덜란드 공무원연금이나 미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같은 해외 연기금의 경우 자신들이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의 경영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왔는데, 우리 연기금은 그동안 주로 거수기 역할만 해왔던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국민연금의 이번 의결권 행사는 아직은 많이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비록 독립적인 기금운용본부의 결정이었다고는 하나, 어정쩡하게도 정작 기업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 사내이사에 대해선 경영활동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보장해줘야한다는 명목으로 판단을 유보하고, 이를 감시 감독하는 사외이사에게만 칼을 댔기 때문입니다. 또 함께 의견을 같이할 우호 세력을 모으지않고, 단독으로 반대해 결과적으로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말고도 우리 주주총회 문화는 아직 보완해야할 점이 많습니다. 지난 13일만 보더라도 현대모비스 말고도 삼성전자와 현대차, 포스코, LG디스플레이 등 모두 68개 기업이 주주총회를 열었는데요, 시가 총액으로 따지면 이들 기업은 코스피 시장 전체의 40%나 차지하지만, 이들은 모두 마치 약속이나 한듯 대부분 9시에 주총을 열었습니다. 동시에 참석하는 게 불가능한 주주들 입장에선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받은 셈이죠. 물론 다른 나라도 여러 기업들이 주주총회를 동시에 여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만큼 심하진 않다는 게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나마 13일 주주총회에서 눈여겨볼만한 성과 중 하나는 현대자동차 주총에서 국내 기업 최초로 가칭 '주주권익보호위'라는 기구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나온 건데요, 이사회 내부에 주주 권리 보호를 전담으로 하는 별도 기구를 설치해달라는 주주의 요청에 현대차측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하면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비록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런 움직임들이 우리 기업 전체에 확산되는 게 주주를 위해서도 또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기업문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