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오른손이 없는 게 행운'이라는 피아니스트

'한 손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매카시와의 유쾌한 인터뷰

[취재파일] '오른손이 없는 게 행운'이라는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매카시(Nicholas McCarthy)란 피아니스트를 아시나요? 많은 분들에게 아직은 좀 낯선 이름이지만, 영국에서는 꽤나 알려진 피아니스트입니다. 1989년생으로 올해 27살 청년인데, 태어날 때부터 장애로 인해 오른팔의 팔꿈치 아랫부분이 없었던, 이른바 ‘한 손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교육과정으로 유명한 영국왕립음악대학 130년 역사상 최초의 한 손 연주자 졸업생으로,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BBC 방송에도 출연을 하고, 지난 런던 페럴림픽에서는 폐막식 때 피아노 연주를 맡기도 하면서 영국 내에서 유명세를 탔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공연을 위해 이번 주 한국을 찾았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그를 인터뷰하고 짧은 연주를 청해 들으며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밝고 활기찬 에너지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다가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면 금세 눈빛을 반짝이는 이 젊은 피아니스트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까지 절로 활기차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요리사를 꿈꿨던 소년은 14살 때 베토벤의 곡을 연주하는 친구를 본 뒤 그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반해 직업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이나 친척 중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14살은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는 우려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연주할 수 있는 손이 ‘왼손’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클래식 음악계의 사람들이 그의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아 상처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의 그런 시선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믿고 부단히 노력한 끝에 그는 차츰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고, 마침내 영국왕립음악대학에 입학해 직업 피아니스트로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운이 좋다고 말합니다. 원하던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좋아하는 연주활동을 하며 전 세계를 여행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게 된 것도 무척 흥미롭다고 말합니다. '안녕'이란 인사를 건네고, 런던에서 알게 된 다양한 한국 음식들을 매일 하나씩 시도해보겠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첫 한국방문에 대한 설렘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운이 좋다고 말하는 그의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이 없는 것 또한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잘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현재 그가 연주하는 곡은 대부분 ‘한 손 연주’를 위해 편곡된 곡들인데, 이 곡들이 대부분 오른손이 아닌 왼손 연주를 위한 만들어진 겁니다.

왼손을 위한 연주곡들은 과거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들이 자신의 탁월한 기교를 뽐내기 위해 일부 만들어졌습니다. ‘나는 왼손으로도 이렇게 연주를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죠. 그러던 것이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한쪽 팔, 그것도 총을 다루는 오른쪽 팔을 잃게 된 피아니스트들이 여러 명 생기나게 됐고, 그들을 위해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한 손 연주를 위한 곡은 대부분 오른손이 아닌 왼손 연주를 위한 곡들이 된 겁니다. 매카시는 이런 환경 덕분에 자신에게는 새롭게 도전할 좋은 연주곡들이 아직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며,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 있어 행운이라고 말을 한 겁니다.
▶ [생생영상] 한 손의 연주, 두 배의 감동…소름돋는 선율

그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 제 머릿속의 그는 '역경을 이겨낸 한 손 피아니스트'였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나오는 길엔 어느새 '자신의 일을 즐기는 멋진 청년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신체적 장애는 니콜라스 매카시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데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특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한 말처럼, 우리는 '그가 무엇을 할 수 없는가'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드러내게 되는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SBS 카메라가 담은 니콜라스 매카시의 짧은 연주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이 작곡한 ‘The Man I Love’란 곡으로, 얼 와일드(Earl Wild)란 피아니스트가 왼손 연주를 위해 편곡한 버전입니다. 눈을 감고 그의 연주를 들고 있자면, 그 모든 선율이 왼손 하나로 연주되고 있다는 걸 떠올리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그래도 이 '운 좋은' 피아니스트가 그동안 자신의 꿈을 위해 바친 땀과 열정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 한 손 피아니스트, 두 배의 감동을 연주하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