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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류인간' 신연식 감독이 밝힌 버드맨의 의미

[인터뷰] '조류인간' 신연식 감독이 밝힌 버드맨의 의미
궁극적으로 영화는 시각의 예술이다. 이야기가 영상으로 제대로 구현될 때 관객은 몰입감을 느낀다. 보는 즐거움이 읽는 즐거움으로 대체되는 마법, 신연식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2013년 9월에 개봉한 '러시안 소설'은 신연식이라는 시네아스트의 이름을 충무로에 각인시킨 역작이다. 제작비 3천만 원으로 3주 만에 완성한 이 영화는 '영상 문학'이라는 감독의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한 상징적 작품이다. 

관객들은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소설을 한 편 보고 나왔다고 말했다. 길고 복잡한 서사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영상에 의해 구현돼 깊이 있는 감동을 안겼다.

'러시안 소설'은 27년 간의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문학의 전설'이 된 한 젊은 소설가 지망생 ‘신효’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신연식 감독의 신작 '조류인간'은 '러시안 소설'의 신효가 쓴 소설 중 한편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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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간'은 새가 되고자 떠난 아내와 어느 날 사라진 아내를 찾아 나선 소설가의 이야기를 그린다. 새가 된 여자의 이야기라니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를 만큼 황당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버드맨일까?.

신연식 감독은 "나도 모르겠다. 왜 그리고 어떻게 새를 생각한 게 된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러시안 소설'의 신효가 썼을법한 소설이라면 이런 황당한 내용이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시작했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인간과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사는 다른 개체, 다른 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실제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적도 있지 않았나. 전자는 멸종하고 후자만 살아남은 거지. 새는 우리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지만, 인간과 다른 개체로 받아들여지는 존재다. 그래서 새가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했던 것 같다" 

'조류인간'은 신효가 쓴 습작이었다.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지만, 서사를 구축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신연식 감독은 다르다. 많은 감독이 이미지에서 이야기를 출발시키는 것과 달리 그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이미지를 완성한다. 

영화엔 사라진 아내를 쫓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더불어 새가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난 한 여자도 나온다. 새가 되고 싶었으나, 될 수 없었던 또 다른 여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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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여정은 모두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아내 한비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해 떠났다면 남편 정석은 아내를 찾으러 다니며 그녀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된다. 정석을 돕는 소이는 다시 한번 못다 이룬 꿈을 이뤄보려고 시도한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혹은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모든 갈등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자신을 부정하기도 하는데...진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며 사는 경우도 많다"

영화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드리려 하는 한비를 차분하게 담는다. 새가 되기 위해 한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수술을 위해 약초꾼을 만나러 간다. '조류인간'은 진화론적 관점으로 한 인간이 새가 되었다고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새가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수술을 받는다는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처음엔 진화론적 관점으로 한비의 이야기를 풀려 했다. 그러던 중 '러시안 소설'부터 함께 작업해온 조명감독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야기를 들었다. 불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남자가 여자가 되는 것은 사람이 새가 되는 것만큼 이해 안되는 이야기였다. 트렌스젠더가 수술을 받는 것은 삶의 유익을 위한 게 아니다.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결과다"

신연식 감독은 조명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성전환 수술의 과정을 새가 되는 과정에 치환시켰다. 심리 상담을 받고, 수술 적합성을 검사(화학적 검사 및 정신적 검사)받는 일련의 과정이 한비라는 인물에게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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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간'은 한비의 전사(前事)를 보여주지 않는다. 새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그녀가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또 어떤 자기 부정을 거쳐 숙명을 받아들이게 됐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더불어 영화는 수술 장면은 생략했다. 그리고 그 결과만 보여준 것에 대해 신연식 감독은 '영화적 허용'이라는 표현을 썼다.

"성 정체성도 수십 년이 지나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고통과 갈등의 원인이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정석은 아내가 왜 떠났는지를 궁금해했는데 정작 그녀가 누구였는지조차 몰랐다. 정석이 아내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엔딩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의 앞과 뒤에는 "여객기에 화물용 기름이 드럼통으로 얼마나 들어갈 것 같니?"라는 질문이 두 번 등장한다.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삼천 드럼. 정말 말도 안되는 욕심이지. 인간이 하늘을 난다는 게…."라고 말한다. 이 대사에는 정체성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인간의 욕망을 투영했다. 

"인간이 하늘을 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정체성과 반하는 행동을 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에는 얼마나 많은 리스크와 희생이 따르겠는가. 반대로 또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서도 꼭 해야만 하는 희생들이 있다. '조류인간'에는 새가 될 수밖에 없는 한비도 나오지만, 새가 되고 싶지만 끝내 될 수 없는 소이 같은 인물도 나온다. 내가 나답게 사는 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실상 그것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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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식 감독의 영화는 언뜻 보면 이 이야기를 했다가 저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시간의 흐름 순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구조는 선호하지 않는다. 이는 구조적으로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뭉뚱그리듯 지나쳐버리는 이야기는 없다. 인물과 사건이 얽히고 설킨 듯 보이지만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촘촘하게 엮여있다.

색감 역시 매우 독특하다. 흑백과 세피아톤의 영상은 몽환적인 느낌마저 든다. 신연식 감독은 "사람들은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사실 장비가 없고 제작비가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이 채택한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연출의 업무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해야 할 일과 안 해야 할일을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건 카메라와 장비 몇 대 뿐이다. 이것 가지고 쟁취할 수 있는 것만 재빨리 선택해야 한다. 안되는 걸 하려 하면 영화는 결국 망가질 수 밖에 없다"

신연식 감독은 '페어 러브' 이후 제작사 루스이소니도스를 설립했고 '조류인간'은 그가 직접 배급한 첫 번째 작품이다. 

다음 작품은 신연식 감독이 공동 제작과 각본을 맡고, 이준익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동주'다.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예술가의 이야기를 다루는 '예술인 시리즈'의 첫 신호탄으로 윤동주 시인의 삶을 그린다. 흑백 필름으로 제작될 이 영화는 신연식 감독이 시도하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실험이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사진= 루스이소니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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