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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3년 기다려온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2분 만에 처리 연기

4월 국회에서는 어떻게 될까

[취재파일] 13년 기다려온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2분 만에 처리 연기
- 담뱃갑에 흡연경고그림을 의무적으로 넣도록 하는 법안 처리가 또다시 연기됐다. 2월 임시국회 처리는 무산됐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허탈할 지경이었다. 이번엔 법안 처리 절차에서 거의 마지막 '게이트 키퍼'라 할 수 있는 법제사법위원회가 발목을 잡았다.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월 3일, 국회 법사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는 오전 10시 25분에 시작됐다. 안건은 10개, 1항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김영란법)을 비롯해 2항 영유아보육법 일부개정법률안(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7항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의무화) 등이었다.
 
먼저 주로 논의했던 건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 네트워크 카메라 설치까지 허용하면 보육교사의 권익을 침해한다며 여야 의원들이 법안심사 소위원회 회부를 요구했다. 논의 끝에 소위에 회부하지 않고 이 조항을 삭제한 뒤 수정 가결처리하기로 했다. 이날 처리하기로 여야 지도부가 합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날의 핵심 법안이었던 '김영란법' 논의는 아직 시작도 못한 상황이었기에 법사위원들은 마음이 급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인 2항을 비롯해 3, 4, 5, 6, 7항까지를 모두 일괄 수정가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아래는 이의를 제기했을 때부터 회의에서 오고 간 발언들이다.

이상민 위원장 "7항(담뱃갑 경고그림 도입법안)이요?"

김진태 의원 "네"

위원장 "7항도 2소위로 넘겨요?"

김 의원 "네. 7항도 넘겨야겠습니다."

위원장 "잠깐만요… 그럼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2, 3, 4, 5, 6항은 전문위원 검토 의견을 위원회 안으로 받아들이고 수정한 부분은 수정한 대로, 기타 부분은 원안대로 하되, 다만 2항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네트워크 카메라 부분을 삭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땅땅)

위원장 "다음에 7항과 8항,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 위원회 안, 8항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 대안은 보다 심도있는 심사를 위해 법안심사 제2소위에 회부하고자 합니다. 이의 없으시죠?"

00 의원 "7항은 이유가 안 나와 있는데요?"

김 의원 "편의상 얘기 안했는데요, 시간관계상. 제가 2소위 가서 얘기하면 되는 거예요."

위원장 "특별히 이걸 빨리해야 할 상황이 아니면… 그렇게 하시죠. 7항과 8항은 심도있는 심사를 위해서 법안심사 제2소위에 회부하고자 합니다. 이의 없으시죠? 네,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땅땅땅)


7항에 대한 이의 제기부터, 법안심사 2소위에 회부하기로 결정하는 데까지 2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이후 법사위원들은 김영란법 논의를 시작했다.(이어진 본회의에서,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은 부결됐다. 김영란법은 가결됐다.)
담배 캡쳐_640

- 그리하여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법안은, 법사위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소위를 통과해야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할 수 있고 이를 역시 통과해야 국회 본회의로 갈 수 있다. 어린이집 CCTV 법안처럼 본회의에서 부결될 수도 있다. 2월 국회는 3월 3일 본회의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다음 국회는 4월 임시국회, 여야는 아직 의사 일정에도 합의하지 않았다. 

- 담뱃갑 경고그림을 도입하자는 관련 법안은 16대 국회에서 2002년 11월 처음 발의됐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 이근진 의원 등 52명이 발의했고 5명이 찬성했다. 이때부터 관련 법안이 11번이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 복지부는 작년 9월 금연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담뱃값 인상이라는 가격정책과 경고그림 도입이라는 비가격정책을 대표적인 대책으로 제시했다. 12월 국회에선 예산안에 끼워넣었다는 이유로 처리가 안됐고, 2월 국회에서도 다른 사안에 치이면서 처리가 불투명했다. 그러다 여야 복지위원들이 진통 끝에 합의를 이뤄냈고 2월 26일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합의 사안인 만큼 3월 3일 법사위, 본회의까지 통과할 것으로 기대됐는데 뜻하지 않게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힌 것이다.

- 사실 3월 3일 통과했더라도 문제가 있는 법안이었다. 경고그림과 경고문구를 합쳐 담뱃갑 앞뒷면의 50% 이상이어야 하고 경고그림은 30% 이상이어야 한다는 내용까지는 괜찮지만, 유예기간을 무려 1년 6개월이나 뒀다. 3월 3일 통과됐다고 해도 이후 정부로 이송돼 3월 안에 공포된다면 내년 9월에나 시행된다. 2015년 1월 1일부터 담뱃값은 2천원 올랐는데 이로부터 1년 8개월 뒤에야 경고그림이 도입되는 것, 이래서는 시너지 효과가 나기 어렵다. 그런데 더욱 늦어지게 된 것이다.

- 최근 언론진흥재단은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내놨다. 2014년 12월까지 담배를 피웠던 흡연자 1천 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32%는 올 들어 담배를 끊었고 36%는 담배를 줄였다는 답변이 나왔다. 담뱃값 인상에 맞물려 새해 들어 담배를 끊거나 줄였다는 거다. 여기에 담뱃갑 경고그림까지 함께 시행됐다면? '흡연율 감소'라는 목표를 놓고 보면 꽤 고무적인 성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 법안에 제동을 건 김진태 의원은 "경고그림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입증되지도 않았다, 흡연권을 침해하는 과잉입법이기 때문에 조금 더 논의해서 처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문제 제기한 이유를 밝혔다. 또 "담배를 피울 때마다 끔찍한 그림을 봐야 하는 건 흡연권과 행복추구권 침해"라며 아예 반대 의사까지도 드러냈다. 

- 복지위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김 의원과 같은 당인 새누리당 김현숙 의원, 그리고 새정치연합 김용익, 최동익 의원이 공동 성명을 냈다. 아래는 성명의 주요 내용이다.

... 금일 국회 법제사법위가 전체회의에서 흡연경고 그림 의무화 법안을 법안소위로 회부시키며 2월 국회통과를 무산시킨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지난 26일 국회 보건복지위 위원들은 긴 고심 끝에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한 결단의 일환으로서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넣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2월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아 위원회안으로 심의 의결한 바 있다. 그런데 법사위가 해당 소관 상임위에서 심사가 끝난 사항에 대해 법리적인 검토에 대한 대체토론조차 없이 법안소위로 회부시키며 무산시킨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다.

... 법안에 대한 체계 자구 등의 법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해당 상임위의 의견 존중하는 것이 우선이다. 더 이상 법사위가 정책심사를 자처하거나 혹은 단순한 의견 개진으로 주요 법안들의 통과를 무산시키며 사실상의 상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담뱃갑의 흡연경고 그림 도입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심사가 이루어져 국회 보건복지위 여야 의원들이 합의한 법안의 취지가 살려져야 한다. 추후 국회 법사위의 법안심사에 대한 월권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회 차원에서의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할 것이다. 


- 김진태 의원이 우려했다는 부분은 이미 복지위에서 논의가 됐던 부분이다. 경고그림의 효과에 대해선 외국에 이미 무수한 선행 연구들이 그 효과를 입증했고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용역을 맡겨 서강대 연구팀이 수행한 '한국형 담배 경고그림'에 대한 연구도 보고서가 나와 있다. 김 의원을 비롯한 법사위원들은, 이런 논의를 무시하거나 혹은 몰라서 처리를 미뤄버렸고 그렇게 법안 처리가 무산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복지부-복지위 관계자들, 금연운동단체들의 공통된 반응은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것이다. 2002년 이후 13년을 기다려왔는데 단 2분 만에 미뤄버린 상황이라니.

- 담배 경고그림 도입 문제는 이제 4월 임시국회로 넘어갔다. 그때는 과연 이 법안이 우선 순위로 논의가 될까. 김영란법이든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에 밀렸던 것처럼 다른 법안에 밀리지는 않을지 지켜볼 일이다. 전망은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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