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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 중앙지검 수뇌부, 판·검사 성추행 사건 뭉갰다

-제 식구 성범죄 봐주는 검찰, 4대악 척결 가능할까

[취재파일] 서울 중앙지검 수뇌부, 판·검사 성추행 사건 뭉갰다
● 그 많던 성추행 법조인 사건은 어디로?

 “증거 충분하고 자백까지 확보했으니 늦어도 1월 내 기소합니다.”

이른바 성추행 판사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당시 황은영 부장검사) 관계자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대학교 여자 후배를 불러내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 모 판사 사건은 당시 일행(목격자)도 있었고 그들의 진술까지 일관됐습니다. (▶ [단독] 현직판사, 여대생 성추행으로 고소 당해)

또, 피의자인 유 판사도 범행을 사실상 자백했기 때문에 수사팀에서는 범행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것입니다. (▶ 현직 판사, 성추행 혐의 시인…"피해자 진술 맞다") 유 판사는 피해자와 합의했고, 전도유망한 젊은 법조인에 일정 부분 관용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수사팀의 고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사회 고위층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서는 엄벌하는 것이 수사팀의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  지검 수뇌부, 이진한 성추행 의혹 사건 뭉개기 지시

- ‘성추행 검사’ 봐주려 ‘성추행 판사’ 사건까지 늑장 처리 


하지만 수사팀의 기소 의지는 무참히 꺾였습니다. 수사를 마무리 한 후 석 달이 지났지만  수사팀은 해당 사건을 기소하지 못한 채 인사 발령을 받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새로운 수사팀 역시 해당 사건에 대한 기소 방침이 불투명합니다.

이와 관련해 서울 중앙지검 수뇌부가 ‘이진한 서울고검 검사 성추행 사건’에 대해 ‘기소유예’ 방침을 세우면서 ‘유 판사 성추행 사건’까지 세트로 틀어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진한 검사 성추행 혐의 사건을 ‘불기소’하기 위한 지검 수뇌부의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입니다.

이진한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재직하던 재작년 12월, 송년회 자리에서 모 신문사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했지만, (▶ 검사 출신 성 추문 사건 '지지부진'…제 식구 감싸기?)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당시 정수봉 부장검사)는 1년 넘게 기소하지 않고 사건 처리를 미뤘습니다. 해당 수사팀도 이 사건을 기소하지 않은 채 인사 발령받아 각 지방검찰청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선 “지검 고위 관계자가 이진한 검사 성추행 사건을 불기소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서 세트플레이가 이뤄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검 고위관계자가 검찰총장에게 직접 대면 보고하는 자리에서 유 판사 건에 대해 불기소 의견을 피력했는데, 이는 유 판사 사건을 기소유예한 뒤 이 검사 사건도 같은 수순으로 마무리기 위한 선제 조치였다는 겁니다.

두 사건 모두 증거관계가 뚜렷하고 가벌성이 높아 '기소' 의견이 강해지자, 지검 수뇌부의 은밀한 '되치기'가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또 수뇌부의 이런 기류를 감지한 중간 간부들은 "수사가 덜 이뤄졌다"는 핑계를 무기 삼아 사건처리를 차일피일 미룬 뒤 인사발령을 받고 후임자에게 떠넘겼다는 얘기입니다.  

수사팀 관계자 역시 "'성추행 검사’를 봐주려고 ‘성추행 판사’ 사건까지 늑장 처리하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범죄 혐의가 같은데 유 판사만 기소하고, 이진한 검사는 불기소할 경우 비난 여론이 일 것을 의식해 지검 수뇌부가 ‘성추행 판-검사’ 사건을 동일하게 불기소 처리할 방침을 세웠다는 얘기입니다.

● 일반인 성추행 사건 89% 석 달 내 처리…검찰 ‘이중 잣대‘

지난해 11월, 한 홍보대행사 대표 A씨는 같은 회사 여직원 B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같은 해 6월 중순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노래방에서 여직원 B씨를 포옹하고 입을 맞췄는데, B씨가 퇴사한 후 고민하다 다섯 달 만에 경찰에 고소한 것입니다. 경찰은 한 달 만에 수사를 마무리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일반인들의 성추행(강제추행)사건은 대부분 한 달 정도면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고, 검찰은 통상 지체 없이 관련 사건을 재판에 넘깁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경찰은 전체 1만2천761건의 강제추행 사건 가운데 60%에 달하는 7천598건을 한 달 이내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전체 사건의 89% 수준인 1만1천369건이 석 달 내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오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6개월을 초과한 사건은 380건에 불과했습니다. ‘성추행 혐의 판-검사‘ 강제추행 사건이 얼마나 늑장처리 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 대검, '성추행 의혹' 검찰 간부 봐주기 논란)

● 고검장 출신 박희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檢, 벌금 구형했다 ’망신‘
'캐디 성추행' 박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캐디 성추행 사건에서도 검찰은 ‘봐주기 구형’을 했다가 망신을 당했습니다. 골프를 치던 중 20대 여성 캐디의 몸을 만진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의장에 대해 검찰이 벌금 300만 원을 구형했지만, 법원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고, 4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까지 수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검찰이 통상 비슷한 강제추행 사건에서 징역 10월~1년을 구형해 온 점을 볼 때 박 전 의장 사건에서의 벌금형 구형은 ‘봐주기’였던 셈입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기소를 두 달 가까이 미루고 비난이 거세지자 진술서만 챙긴 채 박 전 의장을 불구속기소한 검찰의 모습을 본 터여서 여론은 더 냉담했습니다. 또, 검찰의 이런 얼치기 수사의 배경에 “고검장을 거쳐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박 전 의장의 경력이 있다”고 꼬집는 말도 나왔습니다.  (▶ 김수창 기소유예·박희태 소환 안 해…봐주기 논란)

● 檢, 박근혜 대통령 ‘4대악 척결’ 가능할까

이 검사와 유 판사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지검 수뇌부의 불기소 처분 움직임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들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2가지입니다. 우선 지검 수뇌부가 직접 대면 보고하며 제시한 ‘불기소 의견’보고서 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유사 사건에서 보여준 '기소 의견' 보고서입니다. 비록 해당 보고서는 유 판사 1명에 대한 '기소' 또는 '불기소' 처분과 관련돼 있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진한 검사 사건과 맥락이 닿아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더 크게는, 검찰이 지금까지 외친 4대악 척결의 정당성, 그리고 앞으로 처리할 '4대악' 척결의 공정성 문제와 직결하고 있습니다.

이진한 검사는 서울고검으로 오기 직전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출근하고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도 다시 돌아온(?) 식구를 법대로 엄벌하기 부담스럽다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이진한 검사는 유 판사처럼 피해 여기자와 합의한 것도 아니어서 참작할 만한 정상도 없는데다 증거 관계도 명확하기 때문에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하더라도 법원에 재정신청하면 인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사회의 법치주의 확립 여부를 판단할 때 권력자에 대해 법이 얼마나 제대로 집행되는지가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이진한 검사 성추행 사건은 검찰이 권력자에 대해 법집행을 얼마나 허술하게 하는지를 재차 확인하게 한 사례이며, 이는 결국 사법 정의 실종, 검찰의 신뢰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진한 검사 성추행 사건 고소 대리인인 박주민 변호사는 “피해자가 조사받을 때 수사팀이 이진한 검사의 범죄 사실을 가볍게 기재하려고 해서 조서를 고쳤다”며 “제 식구의 성범죄는 봐주는 검찰이 어떻게 성폭력 등 4대악을 엄벌할 것이며, 사법 정의를 외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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