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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야권 지도자 피살 사건 배후 논란 증폭

러시아 야권 지도자 피살 사건 배후 논란 증폭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 인근에서 총에 맞아 숨진 유력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55) 피살 사건의 범인이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사건 당시 정황들이 경찰 조사와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범행 배후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2일(현지시간) 유력 일간 '이즈베스티야'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조속한 범인 색출을 지시한 상황에서 중대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연방수사위원회와 내무부(경찰청)는 최고의 전문가들로 합동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사 당국은 범인 검거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에게 300만 루블(약 5천400만원)을 보상하겠다고 거액의 현상금도 걸었다.

수사팀은 목격자들의 진술을 듣는 한편 사건 현장의 CCTV 자료, 넴초프의 컴퓨터 등 개인 자료·전화 통화 내역 등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범인들이 넴초프를 저격한 뒤 타고 달아난 승용차의 소재지 파악에도 주력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범인들이 이용한 차량은 러시아제 소형 승용차 '라다'로 원주인은 러시아 남부 캅카스 지역의 북오세티야 공화국 출신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차량은 지난 2011년 이미 등록 말소된 상태였다.

◇ 경찰 조사 등으로 드러난 사건 정황 범인 가운데 1명은 27일 저녁 11시 30분(현지시간)께 크렘린궁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다리 위를 걷고 있던 넴초프에게 접근해 옛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 6발을 발사한 뒤 곧이어 뒤따라온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

6발의 총탄 가운데 4발이 넴초프의 가슴과 머리에 맞았다.

이 광경을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목격한 한 청년이 곧바로 넴초프에게로 달려갔지만 그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 목격자는 범인이 키 170~175cm 정도의 짧은 검은색 머리를 한 남성이었다고 진술했다.

범인은 넴초프와 함께 걷고 있던 23세의 우크라이나 여성 안나 두리츠카야는 건드리지 않았다.

모델 출신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한 고급여행사에서 고위인사 수행 안내 서비스를 해온 것으로 파악된 두리츠카야는 최근 넴초프와 교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에도 넴초프는 키예프에서 날아온 두리츠카야와 저녁 10시께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의 한 카페에서 만나 약 1시간 동안 시간을 보낸 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자신의 집으로 가기 위해 붉은광장과 연결된 모스크바 강 위의 다리를 건너다 총격을 받았다.

두리츠카야는 심리 치료를 받은 뒤 경찰 진술에 응했으나 충격으로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모스크바 시내 넴초프 지인의 집에 머물며 경찰의 특별 보호를 받고 있는 두리츠카야는 모스크바 주재 우크라이나 영사를 통해 귀국 의사를 밝혔으나 러시아 수사당국은 그녀를 상대로 조사를 계속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TV 방송 '테베첸트르'가 확보해 공개한 CCTV 자료에는 사건 당시 제설차량 1대가 넴초프 옆으로 서서히 접근한 모습이 포착됐다.

제설차량이 사건 현장을 가리면서 범인이 총을 발사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았고 총성도 크게 들리지 않았다.

제설차량 운전자는 두리츠카야가 자신에게로 와 도움을 요청했을 때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고 진술했다.

◇ 살해 청부 배후 두고 논란 야권은 사건 배후가 크렘린이란 주장을 거두지 않고 있다.

넴초프가 그동안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을 신랄히 비판해 온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야권 지지자 5만여명은 1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열린 넴초프 추모 거리행진에서도 크렘린의 정치 보복을 성토했다.

야권은 설령 푸틴이 직접 살해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언론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 등과 관련해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반역자'로 몰아간 크렘린의 선전전이 넴초프 살해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크렘린의 선전전에 부화뇌동한 극우민족주의 세력이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넴초프를 살해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친정부 성향의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애국주의가 고조돼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80%를 넘는 상황에서 크렘린이 굳이 별다른 실익이 없는 야권 지도자 살해를 시도할 이유가 없다며 크렘린 배후설을 반박하고 있다.

이들은 이달 1일로 예정됐던 야권의 반정부 시위에 대한 관심이 적고 애국주의 분위기 고조로 야권 지지자들이 이탈하는 상황을 만회하면서 저항 분위기에 불을 지피려고 야권 일부 세력이 넴초프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인 드미트리 올샨스키는 "넴초프를 살해한 자들의 목표는 러시아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었다"며 "특정 정치 세력이 푸틴 대통령과 크렘린을 넴초프의 피로 물들이고 1일로 예정됐던 야권의 반정부 시위에 불을 지르고 싶어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넴초프 피살은 푸틴 대통령 반대자들에게 이로운 것"이라며 "서방 언론이 사건 후 '푸틴의 비판자가 모스크바에서 살해됐다'는 제하의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단적인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최근 넴초프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현지 유력 정치인, 주요 기업인 등과 만난 점을 근거로 넴초프에게 자금을 지원해 러시아 내 혼란을 조장하려 했던 세력이 목표 달성이 여의치 않아 보이자 그를 제거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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