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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태생적 상극 '아베 -오키나와'… '갈등' 첨예화

역사 수정주의 행보를 걷고 있는 일본 아베 총리가 미국에 준비한 '선물'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이고, 다른 하나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줄 선물인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아베 정권과 오키나와현이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단순한 자존심 싸움을 넘어 서로 '액션'으로 옮기는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1. '예산 삭감' 對 '기지 이전 허가 위반 조사'

지난 12월 오키나와현 선거에서 미군 기지 이전 반대파인 오나가 씨가 승리했습니다. 오나가 지사는 취임 첫 일성으로 '아름다운 바다를 매립하는 헤노코 기지 건설을 그만두기 바란다'고 아베 정권에 포문을 날렸습니다. 전임 지사가 승인한 '후텐마->헤노코 미군 기지 이전'을 사실상 무효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여기에 맞서 아베 정권은 '푸대접'과 '예산삭감'으로 맞대응했습니다. 취임 인사차 도쿄를 방문한 오나가 지사를 만나 주지도 않았고, 오키나와현의 진흥 예산도 4.6% 삭감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 예산을 삭감한 것은 5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오키나와 주민들과 지사는 행동으로 아베 정권에 대항했습니다. 지난 22일 주민 3천명이 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열었고, 오나가 지사는 26일 기지 이전 관련 공사의 위법성 여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매립공사를 추진하는 방위당국이 시민단체가 공사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게 수상에 부유물을 설치했는데, 이 부유물을 고정하기 위해 바다에 투입한 콘크리트 블록이 산호를 훼손하지 않았는지 오키나와현이 조사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오나가 지사는 산호가 훼손됐을 경우 공사 허가를 취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 미국과 일본은 주택가 주변에 위치한 미군 기지인 후텐마 기지를 이전한다는 데 지난 1996년 합의했지만, 주민의 반대 속에 이전 작업을 진행하지 못했다가, 전임 지사인 나카이마의 협조 속에 비로소 이전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러자 오키나와 주민은 지자체 선거를 통해 이전 예정지인 헤노코의 시장은 물론 오키나와 지사도 모두 이전 반대파를 당선시켰습니다.

2. '오키나와 - 아베' 태생적 '상극'

우익 정치가인 아베 총리와 전쟁의 상흔이 뼛속까지 서려 있는 오키나와 주민은 본디 서로 친하려야 친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4월부터 2달여간 오키나와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개전 후 첫 일본 영토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오키나와 주민 12만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본군 전사자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주민에게도 자살을 명령했습니다. 주민들은 수류탄을 터뜨려 집단자결하기도 하고, 가족끼리 서로 목을 졸라 숨지기도 했으며, 절벽에서 뛰어내리기도 했습니다. 일본 교과서에는 '오키나와전'이라는 제목 아래 주민의 피해를 기록하고 있는데, 아베 정권은 '일본군의 강요에 의한 집단자결은 없었다'며 발뺌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키나와 주민은 전투가 끝난 6월 23일을 '위령의 날'로 정해 매년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평화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반면 아베 총리는 태평양 전쟁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전범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와 아베 총리는 '물과 기름'일 수밖에 없습니다.

3. '오키나와' 독립운동

오키나와가 일본 땅이 된 것은 1879년 메이지 정권의 강제병합에 의한 것으로, 그 이전까지는 독립국가 '류큐왕국(1429~1879)'이었습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미국에 패한 뒤에는 미국 지배에 놓였다가, 1972년 5월에야 다시 일본 땅이 됐습니다. 남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온 시기는 불과 150년, 그보다 오랜 450년을 자신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일구며 살아온 겁니다. 이런 오키나와의 독립 움직임이 최근 구체화한 것은 2년 전 '류큐 민족독립종합연구학회'의 등장입니다. 이 단체는 독립문제를 연구하고 전 세계에 오키나와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2007년 류큐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은 20%에 불과했지만, 아베 정권이 등장하고 오키나와 차별론이 부각되면서 '독립론'이 조금씩 주목받고 있습니다.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가 생겨났을 때, 중국 인민일보는 '오키나와 영유권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에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환구시보는 '오키나와 독립세력을 중국 인민이 적극 지원해야 한다'라는 사설을 게재하기 도 했습니다.

오키나와는 일본 땅의 0.6%에 불과하지만, 일본 내 미군기지의 70% 이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군에 의한 사건,사고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불과 70년 전에는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이 전쟁의 광기아래 '집단자결'이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베라는 이름의 총리는 그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의 크게 다르지 않은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키나와 주민은 일본 본토에 저항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를 선거를 통해 뽑았습니다. 오키나와 주민과 아베정권의 갈등이 쉽게 해결되거나 봉합될 성질의 것이 아닌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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