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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머리 둘 달린 BIFF(부산국제영화제)의 불안한 미래

-영화인들이 뿔 났다?

[취재파일] 머리 둘 달린 BIFF(부산국제영화제)의 불안한 미래
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17일 오후 늦게 부산시에서 한 장의 보도 자료가 발송됐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서병수 부산시장을 만나 조직 쇄신안을 제출했다는 겁니다. 그 핵심 내용은 집행위원장을 추가로 한 명 더 영입해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로 하겠다는 겁니다. 이 위원장이 영화 전반을 책임지고 새 집행위원장이 영화산업을 맡는 쌍두마차 체제입니다. 이 위원장은 서 시장을 만나기 전 영화제 핵심 관계자와 이 같은 쇄신안을 마련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서 시장은 이 안에 OK 사인을 냈고 급히 보도 자료로 전달됐습니다.
 
다이빙벨
사실 이 위원장은 올 초부터 부산시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 왔습니다. 그 원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지난해 영화제 때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 상영을 놓고 서 시장과 BIFF 간 첨예한 갈등을 빚은 데 따른 보복조치란 의견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부산시는 부인했지만, 이 위원장을 포함한 인적 쇄신을 요구했고 공공연히 BIFF를 문제 있는 조직으로 거론했습니다.

더구나 안팎의 내분에 시달린 조직위는 올해 20주년 국제영화제 행사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년 같으면 벌써 초청 대상 작품과 영화관계자 등 선정 작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특히 올해는 20주년 성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는 의미 부여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착실한 준비를 해 명실상부한 국제영화제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결의가 있었던 터였습니다. 영화제 조직위로서는 "영화제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국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 쇄신안은 이러한 파동의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머리 둘 달린 집행위 체제에 대해 영화인들은 황당하다는 분위기입니다.

우선 부산시의 입맛에 맞지 않는 새 집행위원장이 임명될 가능성은 희박할 겁니다. 오히려 시 입장을 대변할 위원장이 선임될 가능성이 훨씬 커 보입니다. 영화제 전반에 대한 감독과 지휘가 불가피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도권 다툼까지 나올 수 있는 국면입니다. 영화인들이 우려하는 작품 선정에서부터 간섭과 통제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구나 조직 구성원 간 두 집행위원장 사이에 줄 서기라도 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산국제영화제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될 게 뻔합니다. 새 집행위원장이 담당하기로 한 영화산업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듭니다. 조직위는 영화제를 위한 조직이고 영화제 성공을 위해 전력질주를 해도 벅찬데 영화산업까지 맡는다는 게 능력과 취지에 맞는 것일까요.

이러한 복잡 미묘한 상황에서 새 집행위원장을 물색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영화제 조직위와 부산시가 모두 인정할 수 있는 A 감독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A 감독은 고사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또 부산시에서 선호하는 모 대학 교수는 조직위에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나름 신망 있는 영화인을 영입하려 해도 대부분 거절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파동을 겪으면서 이 위원장은 자존심이 몹시 상해 물러나고 싶어 한다는 게 조직위 관계자들의 후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위원장 올해 20주년 영화제를 끝내고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고 내년에 단독 집행위원장 체제로 복귀하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습니다.

BIFF의 곤혹스런 상황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조직위 관계자를 따르면 올해부터 부산시가 지원하는 예산 60억 원을 한꺼번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매달 나누어 지급기로 했다고 합니다. 매달 지출 계획서를 제출하면 그 액수만큼 나누어 지급한다는 겁니다. 조직위는 일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견해지만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습니다. 대신 주 거래은행으로부터 신용 대출 규모를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상향 조정해 긴급 상황에 대비키로 했습니다. 또 부산시로부터 BIFF가 영화 영상 관련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강력 요구받고 있다고 합니다. 25일 열린 BIFF 총회에서는 부산시의 이러한 의중을 반영해 조직위가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아시아 필름시장 기간에 투자자 배급사 제작사의 취업설명회를 열기로 한 것인데 내부에서는 취지는 좋지만, 조직위가 이런 부대사업까지 떠맡아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송성준 취파
최근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25일 BIFF 총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BIFF 의 산 증인인 배우 강수연, 임권택 감독 강우석 감독 등이 이례적으로 참석했습니다. 이유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지지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부산의 24개 영화단체로 구성된 부산영화인연대는 지난 23일 영화문화의 자율성과 영화제 독립성 보장을 위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부산의 영화인들이 공동의 목소리를 낸 것은 4년 만입니다. 부산영화학과 교수협의회 김이석 회장(동의대 영화학과)은 "BIFF 정기총회를 앞두고 부산 영화계가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음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성명을 발표하게 됐다."라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1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영화단체 74곳이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 영화인 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검열의 시대' 회귀 조짐에 한목소리를 낸 겁니다. BIFF 사태와 함께 최근 벌어진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상영 등급분류 면제추천 규정 개정'과 '예술영화 전용관 지원 축소 시도' 등의 사태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정부와 부산시의 최근 일련의 움직임은 분명히 정치적 외압으로 비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그 근저에는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 다원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렸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최소화한다.'라는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기본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은밀한 'BIFF 흔들기'가 지속할 때 지난 19년간 쌓아 온 아시아 대표영화제로서의 위상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최근 중국이 '상하이국제영화제'를 BIFF 예산보다 10배 넘게 투자하며 아시아 대표영화제로 키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국제영화제의 속성상 한번 무너지면 그 위상을 되찾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현재의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는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BIFF의 붕괴는 서병수 시장의 정치적 위상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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