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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운상가 재생 사업 성공을 위한 핵심은?

지나친 낙관론 보다는 구체젝인 유인책을 내놓아야

[취재파일] 세운상가 재생 사업 성공을 위한 핵심은?
● '철거'에서 '재생'으로

세운상가는 판자촌이 있었던 자리에 1968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세운상가는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지만, 1990년대 부터 점점 쇠퇴하기 시작해 재개발 논의가 이어질 정도로 낙후된 상권이 됐습니다. 세운상가 재개발 논의는 1979년 세운지구 정비계획이 수립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정비계획의 핵심은 '철거'였습니다. 철거 후 전면 재개발한다는 전제하에 구체적인 계획이 논의됐습니다. 2007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하고 세운상가 주변 지역을 전면 재개발하면서 세운상가는 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세운상가 취재파일

위 그림은 당시 계획입니다. 정비구역을 8개로 나눴습니다. 사업방식은 각 정비구역마다 민간 사업자를 지역 조합원들이 선정해 재개발을 하는 방식입니다. 단, 서울시는 세운상가가 있는 자리에는 공원을 조성하라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이 계획이 완성되면 종묘부터 남산까지 연결하는 도심 속에 공원도 생기고, 낙후된 주변 지역도 개발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 철거 후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던 2007년 당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부동산 경기가 매우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1조 원에 달하는 개발 비용이 예상되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도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690억 원의 세금을 쏟아 부어 보란 듯이 세운상가 8개 건물 중 가장 높았던 현대상가부터 철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2007년 4분기 미국 리먼브라더스 쇼크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경제위기가 닥쳤습니다. 부동산 경기도 급속히 나빠졌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일었던 부동산 거품은 우리나라의 경제의 근간을 휘청이게 했습니다. 세운상가 재개발 사업도 직격탄을 맞게 됐습니다.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의 갈등도 불거져 나왔습니다. 문화재청도 문화재인 종묘 앞에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대규모 도심 재개발 사업은 서울시가 현대상가를 철거하고 조그만 공원을 만들며 사용한 690억 원이라는 매몰 비용만 남긴 채 멈춰버렸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세운상가 재개발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철거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습니다. 철거 대신 선택한 카드는 '재생'이었습니다. 세운상가를 그대로 보전하면서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서울시가 이 야심찬 계획을 실현시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계획부터 알아보겠습니다.

● 보행로만 정비한다고 사람이 모일까?
세운상가 취재파일

위 그림은 서울시가 제공한 세운상가 재생 사업 이후의 예시도입니다. 그림의 우측 건물은 세운상가입니다. 그리고 좌측 건물은 주변이 개발이 됐을 경우 새롭게 생긴 고층건물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깨끗하게 조성된 보행로가 보입니다. 그리고 우측 세운상가 3층에도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보행로가 보입니다. 이 그림이 서울시의 구체적인 계획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 3층에 있었던 보행로와 아래에 있는 보행로를 함께 정비해 걷기 좋은 보행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을 세운상가 재생 사업의 가장 구체적인 계획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아래 그림처럼 청계천을 만들면서 없앴던 세운상가와 청계상가를 잇는 보행교를 추가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였습니다.
세운상가 취재파일

도심이 슬럼화 되는 건 가장 중요한 원인은 더 이상 사람들이 그 곳을 찾기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는 건 더이상 그 곳에 갈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세운상가도 마찬가집니다. 용산 전자상가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전자상가를 사기 위해 세운상가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복잡하고 낡은 상가인데다 경쟁력마저 잃게 되면서 세운상가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겁니다. 따라서 세운상가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사람들이 다시 세운상가를 찾게 해야 합니다. 결정적인 유인책이 필요한 겁니다.

가장 간단한 유인책은 세운상가를 바꾸면 됩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지금 그대로 유지한다는 계획입니다. 겉모습만 유지한다는 게 아닙니다. 현재 있는 영세상점과 모든 시설, 환경을 그대로 둔 채 보행로만 새롭게 정비한다는 겁니다. 세운상가가 변하지 않고 보행로만 정비한다고 시민들이 다시 세운상가를 찾을 지는 의문입니다.

서울시도 고민 끝에 내놓은 유인책이 있습니다. 그 유인책으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시했습니다. 지역 활동가 20여 명을 중심으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보행로에서 운영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서울시는 보행로와 연결돼 있는 일부 공간을 매입하거나 임대해서 산업 지원센터와 예술가를 위한 중소규모의 공방이나 작업실을 마련한다는 계획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리를 하면 보행로를 문화예술의 거리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지역이 슬럼화가 심했는데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면서 이 지역에 다시 활기가 되살아낸 사례를 기대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와 뉴욕에서 예술가들이 같은 환경과 처우를 받으며 살고 있을까요? 세계 문화와 예술의 중심이라고 불리고 문화와 예술이 존중받고 인정받는 미국과 우리나라가 같은 조건일까요? 다시말해 미국에서 성공사례가 있다고 해서 그대로 가지고 온다고 성공할 수 있을까요?

최근 자생적으로 살아나고 있는 지역인 이태원 인근에 있는 경리단길도 문화 예술인 사람들로만 사람들을 끌어 모은 것은 아닙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맛집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작지만 특색있는 음식점들이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문화와 예술이 함께 접목되면서 '핫 플레이스'로 변한 겁니다. 단순히 예술가 몇 몇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서울시는 낙관적인 꿈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소 서울시는 세운상가 보행로 정비사업을 마무리하면 인사동과 청계천을 비롯해 주변 명소와 축제를 연결시켜 시민들이 오게 하겠다는 복안도 내놓았습니다. 이 복안은 시민을 더 많이 모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지만, 당장은 세운상가 자체만으로는 시민들을 유인하는 데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세운상가는 이곳들과 직선거리로 1km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직선거리 1km지만 도심을 걸어서 이동하려면 최소한 20~30분은 걸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낙후된 도심을 20~30분 걸어서 세운상가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세운상가 주변 개발이 없는 상황에서 가능할 지는 의문입니다. 세운상가는 도심에 있으면서 주변 1km 정도가 낙후된 상업, 공장 지역이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곳의 재개발이 필요한데, 서울시의 계획은 세운상가의 활성화를 통해 민간의 인근 지역 재개발을 유도하겠다는 데 있습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 보행로를 정비하고 보행로에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이 모이면 주변 건물들의 개발도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세운상가 주변 지역 개발은 세운상가에 시민들이 많이 온다는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울시 계획만으로는 과연 얼마나 사람들이 모일지, 사업성이 있을 정도로 관심을 끌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 박원순 시장표 도시 재생 사업의 '실험대'
세운상가 취재파일

"중·고등학교 때 세운상가는 나에게 wonderland 같은 곳이었지"

1980년대 청소년 시절을 보낸 회사 선배는 세운상가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서민들은 중고 음반을 찾기 위해 세운상가를 찾았고, 세운상가를 가득 채웠던 각종 전자제품들은 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또  가끔은 은밀히 다가와 유혹하는 불법 영상물의 유혹도 세운상가를 추억하는 또 하나의 조각"이라고.

서울시는 이런 추억을,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라는 건축학적 의미를, 개발 시대의 상징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며 세운상가를 유지하며 지역을 활성화 시키겠다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앞서 야심차게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내놓으면서 도시 재생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내놓은 사업이 세운상가 재생 사업입니다. 박 시장의 도시 재생 사업의 실험대는 세운상가 재생 사업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 사업은 같은 도시 재생 사업이지만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은 일단 사람을 모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에서 부담이 덜 합니다.

서울역 고가 바로 아래에는 엄청난 유동인구가 있는 서울역이 있습니다. 남대문 시장과도 바로 연결됩니다. 서울역 고가 공원은 기존에 있던 인프라로 인해 구축된 유동인구가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는 구조인 겁니다. 따라서 서울역 고가 공원은 주변 거점을 연결해 주는 통로만으로 충분히 도시 재생 사업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인근 주민과 상인의 일부 반대도 있지만 이해관계도 복잡하지도 않고 상대적으로 사업의 규모도 작습니다.

하지만, 세운상가는 상황이 다릅니다. 사업 규모 자체도 큽니다. 지역 주민들과의 이해관계도 복잡합니다. 그리고 서울역 고가와 달리 보존하면서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찾기에도 어려워 보입니다. 도시 재생과 더불어 인근 지역 개발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도시 재생이 성공하면 상권 재편에 따른 부작용도 감당해야 할 문제입니다.

세운상가 재생 사업의 성공 여부는 앞으로 우리나라 도심 활성화 정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재개발에서 재생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주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가 세운상가 재생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유인책을 내놓아 하는 게 최우선 과제입니다. 서울시가 발표한 계획에서 유인책은 정비된 보행로를 채울 프로그램입니다. 서울시는 5월에 보행로 정비 설계를 마무리 하고 보행로를 채울 프로그램을 내놓겠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서울시가 내놓을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이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 서울시 "보행로 연결해 세운상가 살린다"
▶ '공중 다리' 만들어 흉물 된 세운상가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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