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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산가족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취재파일] 이산가족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설 연휴 기간 동안 다섯 번에 걸쳐 이산가족 시리즈를 보도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점차 잊혀져 가는 옛 이야기처럼 치부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됐지만 사회적인 파장은 생각만큼 크지 않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요.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이산가족들이 돌아가셨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정부에 등록된 이산가족 12만여 명 중, 올해 처음으로 사망자 수가 생존자 수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 생존자 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측에 부모나 배우자, 자식 등 1, 2촌을 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 세월 흘러도 이산 아픔 그대로

실향민 촌인 속초 '아바이마을'에서는 북측에 부모나 배우자, 자식을 둔 연세가 있는 분들을 '실향민 1세대'라고 부르더군요. 1세대 상당수가 돌아가시면서 한국사회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우선순위도 점차 밀리고 있습니다. 상당한 세월이 흐른 만큼, 이산가족 분들의 아픔도 이젠 많이 희석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실향민들은 가족과 고향 얘기만 나오면 금세 눈물을 울컥 쏟아냈습니다. 그 아픔과 세월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런 모습이 순간적으로 무척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60년이 훌쩍 지났지만 가족과 헤어졌을 때 맺힌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마르지 않았던 겁니다.

그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세월호 가족들을 떠올렸습니다. 분단에 의해서건, 사고에 의해서건, 가족과 생이별한 아픔은 세월도 지울 수가 없는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만일 수십 년 후에 세월호 유가족들을 인터뷰한다면, 지금 앞에 있는 실향민 어르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분들을 위해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남북 관계에 오락가락하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에만 목매기에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부모형제 끝내 못 보나…안타까운 아바이마을


● 유전자 채집사업 속도 높여야

이런 상황 때문에 시작된 것이 바로 '이산가족 유전자 채집사업'입니다.이산가족 2만 1천여 명이 이 사업에 응하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시범사업을 통해 1,200명의 유전자가 채집됐습니다.
이산가족 유전자 채
정부는 올해 3,000명 채집을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속도로 가다간 사업을 완료하는 데에만 7년이 걸린다는 겁니다. 생전에 안되면 사후에라도 가족을 찾겠다고 사업에 응한 분들은 대부분 80대입니다. 매달 200~300명씩 돌아가시는 상황에서 7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깁니다.

더군다나 7년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산술적인 계산 결과입니다. 지난해 시범사업을 담당했던 다우진유전자연구소에 따르면, 본인이 사업에 응했다고 해도 이후 자식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혹은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해서 거부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업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다는 것이겠죠.

따라서 일각에서는 남북협력기금을 좀더 투자해 사업을 조기에 마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매년 국회에서 남북협력기금으로 책정되는 액수는 1조 원이 넘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크게 악화된 2010년 이후, 남북협력기금의 실제 집행률은 사실상 한 자릿수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차피 쓸 곳이 마땅치 않다면, 남은 이산가족의 한을 푸는 데 사용하는 것이 이 기금의 취지에 맞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죽더라도 이산가족 찾겠다" 유전자 채취 봇물


● 남북간 재산 교류 논의도 시작해야

이산가족들의 고령화로 유산문제도 부각되고 있습니다. 많은 이산가족들이 얼마가 됐든 유산을 북측 가족에게 주고 싶어합니다. 물론, 남측에 와서 꾸린 가족들 때문에 이 문제가 공공연하게 알려지진 않고 있지만, 언젠가 이 문제가 크게 부각될 수 있습니다.

이미 북한 거주민이 남측 가족에 대해 친자확인 소송을 벌여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바 있고, 탈북민이 상속권을 인정 받은 첫 사례도 이미 지난해 나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추후에 관련한 법적 분쟁이 잇따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남북관계가 상당한 단계까지 개선되지 않는 한, 남북간 상속이 현실화되긴 힘듭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가칭 '남북가족 신탁청'을 설립해 이들의 상속 재산을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남측 가족이 신탁청에 재산을 맡기면, 사후에라도 상속이 가능해지는 시점에 북측 가족을 찾아서 이를 전달해준다는 구상입니다.

이산가족들은 남북간 상속 논의가 곧바로 시작되기 힘들다면, 경조사비 같은 소액 교류라도 신탁청을 통해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012년 도입된 남북상속특례법에 따라, 지금도 급한 생활비 정도의 소액은 법무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전달할 수 있지만 그 범위를 확대해달라는 겁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있습니다. 북측 가족의 생사 여부와 소재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함께, 남북간 생사확인과 편지왕래 허용 등이 반드시 이뤄져야 이산가족 문제가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유산이라도 주고파" 이산가족의 마지막 소원

● 또 다른 이산가족 '탈북민'
명절 탈북민 캡쳐_
분단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처지는 탈북민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탈북민은 이해와 배려를 받기는커녕 차별과 멸시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남북하나재단에서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적 있다는 응답률은 25.3%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남한 사람들과는 다른 말투나 생활방식 등 소통방식 때문에 차별을 당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남한 사람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또는 소득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무시당했다는 응답도 많았습니다.

특히 한 탈북민은 "부족한 일자리를 뺏아간다"며 노골적으로 냉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의 경기 악화로 인한 고통이 중국 동포나 동남아 출신 근로자에 대한 증오로 돌변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중국동포, 동남아 근로자에 대한 차별 문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기라도 했지만, 탈북민 문제는 그렇지도 못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인권 운동을 주도하는 진보진영이 탈북민 문제에 대해선 소극적인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보도를 접한 한 인권운동가는 "진영논리가 문제"라며 고민을 잠시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기자들도 탈북민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북한 문제라는 성격 자체가 그렇지만, 남북 대치라는 첨예한 상황에서, 관련 보도가 자칫 '인권' 본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비화하거나 악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내 탈북민 수가 8년 만에 10배나 늘어 2만 7천명을 상회하고 있고,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감안할 때, 탈북민 문제를 마냥 미뤄둘 수 없는 시점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내 일자리 뺏긴다" 냉대에 눈물짓는 탈북민
▶ 삐딱한 시선에…"탈북보다 취업이 더 어려워"

● <국제시장> 천만 돌파…공감은 가능하다

설 연휴에 영화 '국제시장'이 누적관객 1,362만을 돌파해, 영화 '아바타'를 누르고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산가족 한 분 한 분이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 못지 않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기사에서 인터뷰했던 허갑섬 교수만 해도 그렇습니다. 허 교수는 흥남철수 당시 어린 소녀로 혈혈단신 내려와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서울 유수대학 교수로 퇴임했습니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을지, 또 얼마나 이를 악물었을지, 저는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들었습니다.

이산가족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는 건,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그 분들의 고난과 아픔,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닐 겁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극심한 좌우 대립과 세대 갈등, 이런 문제들을 푸는 열쇠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공감'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절대 흘러간 '옛 이야기'로만 치부되어선 안됩니다.

분단 70년을 맞은 올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생사 확인, 편지 왕래, 물적 교류에 대한 남북간 대타협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남북 당국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이산가족들의 삶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공감'한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해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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