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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집으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 "8일 걸렸어요"

[월드리포트] 집으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 "8일 걸렸어요"
우리도 명절을 맞아 고향에 다녀오면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10시간이 걸렸니, 12시간 넘게 걸렸니 하며 진저리를 칩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리 길이 막혀도 대략 반나절이면 끝납니다. 적어도 만 하루를 넘기지는 않습니다.

대륙이라 불리는 중국은 다릅니다. 비행기 표를 구할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루를 넘기기가 태반입니다. 이동 거리가 워낙 길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서울~부산 수준이면 '멀다'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합니다. 한반도 몇 배를 종횡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춘제 기간 기차표를 사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직통으로 가는 기차가 보통 없습니다. 몇 번 씩 차에서 기차로, 또 다른 기차로, 다시 차로 갈아타고 가야 합니다. 환승할 때마다 시간을 딱딱 맞추기란 불가능합니다. 싸구려 여관에서, 때로는 기차역 대합실에서 밤을 지세는 것도 여사입니다.

그러니 중국인들의 춘제 귀향기는 우리와 차원이 다릅니다. 기차만 만 이틀을 탔느니, 집으로 가는데 사나흘이 걸렸니 합니다.

그런 무지막지한 귀향기들 가운데서도 올해 중국인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준 것은 한 젊은 아가씨의 사연입니다. 날짜로는 8일이 걸렸고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던 시간만 80시간, 사흘을 훨씬 넘습니다.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여장부'라는 인증을 받았습니다.

아가씨의 고향은 충칭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시골입니다. 일하던 곳은 먼 서북쪽 신장, 그 중에서도 키르키스탄과의 국경선에 거의 다 가야 있는 아커쑤라는 도시입니다. 고향으로 바로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약혼자의 집이 있는 후베이 당양시를 들러 왔습니다. 후베이는 중국 대륙에서 살짝 남동쪽으로 치우친 지역입니다. 중국 서북쪽 끝에서 남동쪽으로, 다시 서쪽으로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지금부터 그녀의 귀향길을 따라가 보죠.

귀향
올 22살인 왕창청씨는 2년 전 친구의 권유로 신장 아커쑤에 일하러 갔습니다. 고향인 충칭에서는 직선거리로 따져도 우리나라 부산~신의주의 거의 5배에 가까운 먼 곳입니다. "그저 바깥 세계를 구경하고 싶었어요." 당찬 아가씨입니다.

지난해 춘제에는 비싼 비행기 표를 구해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남자 친구와 함께 기차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3일 밤 9시 35분 아커쑤 역을 출발했습니다. 미끄러워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만큼 눈이 많이 온 밤이었습니다. 첫 목적지는 산시(섬서)성 바오지라는 도시입니다. 지도로 보시면 그 광대한 신장을 북쪽 우루무치를 거쳐 반원을 그리듯 횡단해서, 용처럼 길쭉한 간쑤성을 완전히 가로지르는 여정입니다. 중국 대륙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의 반을 넘는 어마어마한 길이입니다.

한밤에 출발한 왕씨와 남자 친구는 피곤해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편한 3등 좌석에서 자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불편했습니다. 서로의 머리와 어깨에 기댄 채 이틀 밤, 이틀 낮을 비몽사몽으로 보냈습니다.
5일 오후 드디어 바오지시에 도착했습니다. 남자 친구는 뛰다시피 역 대합실로 가서 산시(섬성)성의 성도 시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기차표를 구했습니다. 그날 저녁 시안까지는 2시간여 만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여정에 나설 수 없었습니다. 가는 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안의 싸구려 여관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이른 아침 다시 출발했습니다. 12시간 만에 후베이성 당양시, 남자 친구의 고향에 도착했습니다.

예비 며느리를 만난 남자 친구의 부모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30살이 넘은(중국 지방에서는 20대 후반만 되면 노총각, 노처녀 취급을 받습니다.) 아들이 혼기를 놓칠까봐 전전긍긍하다 한시름 놓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저를 잘 아끼고, 돌봐주는데요. 술이나 담배, 도박은 손도 대지 않아요." 8살 많은 남자 친구의 자랑 끝에 왕씨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릅니다.

왕씨는 남자 친구를 아커쑤에서 만났습니다. 같은 농민공이다보니 서로 기대고 의지했습니다. 함께 작은 방을 구해 이미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안에 결혼할 예정입니다.

남자 친구의 고향 당양시는 귤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당양의 귤은 모양이 예쁘고, 과육이 부드러우며, 즙이 많기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남자 친구 집에서 이틀을 머문 뒤 떠나면서 왕씨는 커다란 상자 가득 귤을 가져가야 했습니다. 남자 친구의 부모가 장래의 사돈댁에 보내는 선물이었습니다. 정성을 가득 담다보니 무게가 40킬로그램에 달했습니다. 이미 왕씨의 가방에는 신장 특산 대추가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가녀린 처녀의 몸으로 먼 길도 부담스러운데 막중한 짐까지 더해진 셈이었습니다.

귀향
8일 밤 남자 친구와 눈물의 이별을 한 뒤 충칭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남자 친구가 특별히 하루에 한 편 밖에 없는 침대차 표를 구해줬지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년 만에 만날 부모와 고향 생각 등 상념이 너무 많아서였습니다.

9일 낮 12시 드디어 충칭 북역에 도착했습니다. 80시간에 걸친 기차 여행을 끝낸 것입니다.

"그래도 집에는 내일이나 도착할 수 있어요." 왕씨가 충칭 북역에서 만난 지역 신문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아니 왜요? 같은 충칭시 안인데 어떻게 하루 가까이 걸려요? "여기서 첸장구까지 가면 오후 4시가 넘고요, 그러면 우리 집까지 가는 차는 끊어져요. 할 수 없이 충칭시에서 하루 밤을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합니다. 차로 세 시간쯤 가니까 내일 오전이면 집에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나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절에 고향을 찾는 풍속이 있으니 중국인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납득 불가능하다는 표정입니다. 매년 춘제 때 13억 인구가 한꺼번에 고향을 찾아 가느라 그렇게 고생하고 비용을 들여야 하나? 남들 안가는 계절에 맞춰 휴가를 내서 편하게 가지? 형편이 안 되면 4~5년에 한 번만 가지? 요즘 화상 전화도 발달했는데 스카이프로, 페이스 타임으로 얼굴을 보면 되지?

우리나 중국처럼 수천 년의 전통이 없다면 어떻게 알겠습니까! 고향에 온 가족, 친척이 다 같이 모여 나누는 정을.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하면서 느끼는 감동을. 내 살던 고향 산천을 1년에 한 번이라도 꼭 보고 싶은 욕구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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