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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③

[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③
▶[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①
▶[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②

나는 기자다. 내가 족발집 주인을 찾아가 만난 것은 11일이었다. 족발집 주인이 사기를 당한 지 5일째. 관련된 당사자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래도 뭔가 해결방법이 있지 않을까? 족발집 주인과의 대화 스크립트를 다시 보고, 서울보증보험과 금감원에 대화를 거듭하면서 나의 이해도 조금씩 넓어졌다.

12일 서울보증보험 측에 이런 방안을 얘기해 봤다. 어차피 정** 씨의 계좌는 보이스피싱 신고로 지급정지된 상태다. 서울보증보험이 압류한 계좌에 돈(족발집 주인의 것)이 들어왔지만 어차피 그 돈을 회수할 수는 없다. 서울보증보험이 압류를 풀고 곧바로 족발집 주인에게 ‘전기통신 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의 환급 절차를 밟게 하는 것이다. 행여 정** 씨가 그 돈을 찾아 잠적이라도 하는 일은 벌어질 수 없다.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는 계속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보증보험 측은 몇 시간 뒤 그런 방안을 받아들였다. 자신들도 그런 쪽으로 검토 중이었다고 했다. 전향적이다. 곧이어 서울보증보험은 족발집 주인에게 연락했다. 우선 압류 해제 요청서를 정식으로 내달라고 했다. 연락을 받은 족발집 주인은 한걸음에 서울보증보험으로 달려갔다. 압류 해제 요청서를 제출했다.

앞으로는 이렇게 될 것이다. 서울보증보험이 압류를 푼다. 족발집 주인은 ‘피해구제 신청서’를 제출한다. 정** 씨 계좌가 있는 우체국은 금융감독원에 예금채권에 대한 소멸 공고를 요청한다. 금감원은 예금채권 소멸 공고를 낸다. 공고 기한은 2개월. 이 계좌의 명의인, 즉 정** 씨가 공고 기한 내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정** 씨의 예금채권은 소멸한다. 서울보증보험에 채무가 있는 정** 씨는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라고 한다. 이의제기를 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그럼 족발집 주인에게 피해금이 환급된다. 서울보증보험은 곧바로 정** 씨의 계좌를 다시 압류한다. 여기까지 3개월 정도 흐를 터다. 이렇게까지 진척된 건 12일 저녁이다. 족발집 주인을 만나고 만 하루가 걸렸다.

족발집 주인의 경우 자신의 부주의로 470만 원을 3개월 정도 묶이게 됐다. 그래도 돈을 날리거나, 돈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 수고를 들여 민사소송을 내는 일은 피했다. 서울보증보험 측은 압류를 풀고, 다시 압류를 걸어야 하는 수고와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려 한다. 앞으로의 과정이 순조롭다면 3개월쯤 뒤에는 2월6일 이전과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다.  

족발집 주인의 잘못은 보이스피싱에 속은 것 뿐. 서울보증보험의 압류 담당자는 빚을 갚지 않은 사람들을 종일 상대해야 하는 고된 일과 속에서 본인의 업무 범위, 본인의 법률적 지식에서 벗어나게 행동하지는 않은 듯하다. 족발집 주인의 민원전화를 받은 금융감독원 직원도 평소처럼 법률구조공단을 안내해 줬을 뿐인 것이다.

다만, 압류 담당자가 압류 계좌에 들어온 돈에 대한 법적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족발집 주인이 민원부서의 안내를 받게 했다면, 금감원 민원담당 직원이 압류나 특별법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조금만 더 고민해 줬다면, 족발집 주인의 상심이나 난감함은 덜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다시 통화한 족발집 주인은 더 이상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서울보증보험 측으로부터 특별법에 대한 절차도 상세히 안내받은 듯했다. 희한한 보이스피싱 사건 취재는 이렇게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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