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법정에 부활한 피카소…"선물이냐 절도냐"

[월드리포트] 법정에 부활한 피카소…"선물이냐 절도냐"
“1970년 어느 날 밤이었다. 평소처럼 나(피에르 르 궤넥)는 프랑스 남부 칸 근처 무쟁이라는 곳에 있는 피카소 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 해 피카소를 처음 만났고, 전기기사로서 집사로서 그의 집을 관리해 주는 게 내 일이었다. 그날은 경보기를 설치했던 기억이 난다. 일을 마쳤을 때 복도에서 피카소의 부인 자클린이 내게 상자를 건넸다. “자, 당신 겁니다. 집에 가져 가세요.”라고 했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고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소묘, 콜라주, 구겨진 종이들이 들어 있었다. 아내가 뭐냐고 묻길래 피카소가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얼핏 봐서 특별해 보이지 않아 다 살펴보지도 않고, 상자를 차고에 넣어 두었다. 이게 내 이야기의 전부다”
 
1973년 피카소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피에르는 자클린이 숨진 1984년까지 피카소 집에서 더 일했다. 피에르도 은퇴했고 올해 나이가 75살이다. 피에르는 나이가 들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됐고, 피카소의 선물을 자녀에게 남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선 그게 진품인지 가치는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졌다. 피에르는 2010년, 그러니까 40년 만에 차고에 잠자고 있던 작품 271점을 꺼내 파리에 있는 피카소 재단에 감정을 의뢰했다. 얼마 안 있어 진품이라는 감정 결과가 전해졌다. 며칠 뒤 경찰이 집에 들이닥쳐 작품을 압수하고 궤넥 부부를 체포해 절도와 장물 보관 혐의를 따져 물었다. 조사를 받고 부부는 풀려났지만, 몇 달 뒤 피카소 상속인들이 궤넥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이번 주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은 기억과 기억의 싸움이 되고 있다. 선물이라는 명확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원고와 피고 모두 누가 더 생전의 피카소라는 인물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 묘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법정에선 죽은 피카소가 부활한 듯 하다. 
          
월드리포트
피고인 피에르는 선물을 받을만한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피카소가 전적으로 자신을 신뢰했고 자신을 사촌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친구라기 보다는 가족 같았다는 주장이다. 마지막까지 피카소를 돌본 비서는 법정에서 “피카소는 매우 너그러웠고, 창의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일꾼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피에르가 성실한 사람이어서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걸 옹호하는 듯한 증언이다. 원고측도 이를 인정했다. 피카소의 손녀 캐서린은 원고 가운데 유일하게 궤넥 부부를 잘 알고 있다. 캐서린은 법정에서 “피에르는 할아버지 피카소와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로 볼 때 일단 피고에게 유리한 정황이 확보된 셈이다.
          
하지만, 양측은 생전 피카소의 독특한 캐릭터를 근거로 내세우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유족들은 피카소가 작품을 선물하거나 팔 때 반드시 작품에 서명을 했는데, 피에르가 받은 작품에는 서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피카소가 무더기로 작품을 선물한 경우도 없었다고 말했다. 피카소가 작품을 아끼고 신중히 처리하는 성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피카소의 아들 클로드는 "아버지가 길거리에 사탕을 뿌리고 다니지 않았다”며 선물이라는 피고의 주장이 피카소의 평소 모습이 아니라고 말했다.
          
월드리포트
피고도 반론을 폈다. 피카소는 엄청난 기억력을 갖고 있었고, 작품들을 '요새' 안에 보관했기 때문에 작품 하나라도 빼돌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선물이 아니고서 그 많은 작품을 훔쳤으면 그때 발각됐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 명의 피카소를 놓고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또 자신이 보관한 작품을 감정을 해보니 10개 정도가 가치가 있고, 나머지는 보잘것 없었다면서 아마도 피카소가 팔 마음이 없어서 서명도 없이 선물로 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프랑스 언론은 이번 사건이 국제적인 예술작품 세탁 과정의 일환이라는 원고측 주장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누군가 피카소의 작품을 훔쳐 보관하고 있다가, 궤넥 부부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말하라고 시켰다는 시나리오다. 피에르가 피카소와 친했다는 점을 악용해 작품을 피에르 소유로 만들어 나중에 이득을 보려 했다는 것이다. 원고측은 피고가 예술에 별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작품 리스트를 만들고 어떤 작품은 피카소의 1915년작과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에르 배후에 누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40년 만에 공개된 피카소 작품은 1900년에서 1932년 사이에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작품들의 가치는 최대 1억유로(1254억 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피에르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녀에게 큰 선물을 남기겠지만, 장물 보관 혐의가 인정되면 징역 5년에 벌금 37만5천유로(4억7천만원)의 중형에 처해질 수 있다.

▶[모닝와이드] 피카소 집 수리하던 전기공의 '수상한 그림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