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①

[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①
나는 족발집을 한다. 동대문구 장안동 주택가 골목에서. 2월6일 금요일이었다. 가게 컴퓨터의 즐겨찾기에 저장된 우리은행 인터넷뱅킹 사이트에 들어갔다. 우리은행 사이트 위에 갑자기 팝업창이 뜬다. 금융감독원 어쩌고 돼 있다. “뭐지?” 이상했지만 사이트에 써 있는 대로 입력하던 차에 배달할 음식이 나왔다. 인터넷뱅킹은 잠시 접어둔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나갔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가는데 전화가 왔다. 1566-27**로 된 번호다. 금융감독원인데 큰 일이 났단다. 내 개인정보가 노출됐으니 신분 확인과 개인정보가 필요하단다. 비밀번호, 보안카드를 묻는다. “대체 무슨 일이?” 뒤에 실은 배달음식은 식고 있다. 마음이 급해졌다. 얼떨결에 묻는 정보를 불러줬다. 그러자 통신사의 GPS에 문제가 생겼단다. 잠시 전화를 꺼놓으란다. 10분 뒤에 다시 핸드폰을 켜면 다시 연락을 준단다. 오토바이는 계속 배달할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10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문제가 해결됐으니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면 된단다.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 아차! 싶었다. 혹시 보이스피싱? 확인해 보니 내 통장에서 벌써 돈이 빠져 나갔다. 235만 원씩 두 차례, 모두 470만 원이다. 통장 잔액은 3만 원. 우리은행에 연락을 했다. 보이스피싱에 당한 것 같단다. 어쨌든 지급정지는 해 놓겠단다. 경찰서에 가서 신고도 하란다. 했다. ‘사건사고 사실 확인원’이라는 것을 발급받았다. 경찰은 이런 경우 사기범들이 벌써 돈을 빼내갔을 테니 큰 기대는 말란다. 보이스피싱 사기범은 잡기 어렵다면서.

내 돈이 이체된 곳은 ‘정**’라는 사람 명의의 우체국 계좌다. 2월9일 월요일. 우체국에 알아봤다. 이런 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체된 내 돈이 그대로 있단다. 서울보증보험에서 압류를 걸어놓은 통장이었던 것이다. 압류가 걸려 사기범들이 돈을 빼가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우체국에서는 서울보증보험에서 일시적으로 압류를 풀어주면 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보증보험에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대전지사 소관이라더니, 이리 바꿔주고 저리 돌려준다. 두세 시간 만에 압류 담당자와 연결될 수 있었다. 내 사정을 설명했다. 압류를 일시적으로 풀어서 내 돈을 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온 답은 ‘안 된다’였다. 압류를 한 자신들에게 그 통장에 든 돈에 대한 우선권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내가 녹음한 대화내용이다.

(전략)
-  범죄로 인해서 그 돈이 지금 거기에 들어간 거예요. 제 돈인데 제가 지금 되찾을 방법이?
= 아, 안 되죠.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 씨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중략)

- 제가 지금 억울한 상황인데...
= 그러시겠네요. (중략) 선생님 돈이든 정** 씨 돈이든 우리는 모르니까요. 어쨌든 간에 정**씨 통장에 있는 돈은 우리가 압류를 했으니까요. 법률적으로.(중략)

- 그럼 어떻게 해야 돌려줘요?
= 사실 여부가 밝혀져야 되겠지만 법률적으로 백 몇 만 원은 우체국에서 우리한테 돈을 줘야 합니다. (중략)

- 제가 제 돈을 도로 가져갈 수 있게 잠깐 동안 압류를 풀어줄 수 있냐 이거예요.
= 선생님이라면, 우리가 정** 씨한테 돈을 받아내려고 정** 씨 통장을 압류했는데 선생님이 ‘이 것은 내 돈이니까 당신이 풀어주세요’라고 하면 풀어주겠습니까? 안 풀어주지요.(중략)

- 제가 사기 통장으로 신고를 해 놨어요.
= 신고를 했더라도 재판을 받아야죠.

- 제 명의로 그 돈이 들어간 명백한 증거가 있잖아요.
= 어쨌든 간에 재판을 하든지, 정** 씨하고 해결을 하시던지 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이해할 수 없었다. 엄연히 내 통장에서 넘어간 기록이 남아 있다. 경찰서에서 ‘사실 확인원’까지 받았다. 사기범들이 이미 인출해 버려서 돈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우체국 계좌에 내 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돌려받을 수 없다니.

여기저기 알아보다 금융감독원에 전화했다. 법률구조공단에서 도움을 받으란다. 법률구조공단은 신청이 밀려 상담을 받으려면 한참 기다리란다. 답답한 마음에 청와대 신문고에도 내 사정을 올렸다. 얼마 뒤 문자가 온다. 금융감독원에 나의 민원이 배정됐다는 것이다. 금감원에 또 전화를 하면 법률구조공단에 알아보라고 할 터였다.

470만 원. 당장 월급을 줘야 할 가게 아주머니가 자꾸 눈에 밟힌다. 당장 내일도 족발집을 열려면 고기도 끊어 와야 하고 식재료도 사야 한다. 하지만 통장에는 3만 원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나의 부주의가 결부된 보이스피싱이라는 불행은 계좌 압류로 사기범들이 돈을 인출해 가지 못하는 조그만 행운으로 변했다. 하지만 다시 내 돈을 당장 찾아 쓸 수 없는 불행으로 되돌아갔다. 

▶[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② 
▶[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③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